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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Jan 22. 2023

구들장 같은, 마음을 나눈다는 것.

2막 3장 (번외편 - 졸업 공연 연습에 응원하러 사람들을 위한 글)

졸업 공연을 위한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내리니 시계가 11시 30분을 조금 넘어서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면서 응원 후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하자, 문득 어느 글 하나가 떠올랐다.

 

저는 사실 스윙댄스보다 스윙댄스를 하며 만난 사람들이 좋아서 계속하고 있는 게 조금 더 커요. 
저도 여러개의 가면 중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른 가면을 쓰게 되는 것 같은데, 그래도 꾸준히 하다보니 가면벗은 내가 되는 사람들을 점점 만나게 되는 것 같아요.
님도 저처럼 사람을 더 좋아하던 춤을 더 좋아하던 또는 다른 이유던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주말엔 습관처럼 자연스럽게 이 바(Bar)를 방문하는 날이 계속되면 좋겠어요.


두 달 전, 지터벅 수업을 마치고 쓴 글에 달린 댓글이었다. 저 댓글 중에서도 '스윙 댄스보다도 스윙 댄스를 하며 만난 사람들이 좋아서 계속하고 있는 게 조금 더 크다'라는 말이 잔상처럼 맴돌았다. 아마도 점점 나도 그렇게 되어 가고 있기에 그럴지도 몰랐다. 불과 몇 달 되지 않은 나조차 그러한데, 오랫동안 쌓아온 여러 관계와 마음들을 켜켜이 쌓아온 그녀는 오죽할까? 누군가 그녀에게 스윙하우스는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스윙 댄스를 멋지게 춘 기억 이상으로 이곳에서 함께 추억을 나눈 사람들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었다. 사람들이 좋다는 말은 그 사람들과의 좋은 추억이 있어야만 가능한 말이니까.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살아보니 세상에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많다는 걸 느낀다. 그러나 누군가가 진정으로 한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된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의 관계와 그 안에서의 상호작용, 그리고 적당한 시간이 맞물려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즉, '좋은 사람'은 ‘오래 두고 사귄 벗’과도 같아서, 잘 익은 와인처럼 좋은 조건과 적당한 시간이 필요하고, 관계를 맺고서도 어떤 형태(마음으로라도)로든 곁에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또래로 형성되거나 학교처럼 지속적이며 강제적으로 관계를 쌓아나가야 하는 집단이 아닌, '동호회'라는 집단에서 그러한 '오래 두고 사귄 벗'의 관계나 혹은 ‘사람이 좋아서 머무른다.’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무엇일까? 흔한 술자리도 있겠지만, 진정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졸업 공연 등을 위한 준비 과정이 아닐까 싶었다.


그녀가 남겨둔 『스윙 댄스를 하며 만난 사람들이 좋다』라는 말을 꼽씹다가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진짜 가치 있는 것들은 대체로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고생을 해야만 얻을 수 있고 혼자 힘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극히 드물다. 결국, 가치 있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동료’가 필요하며 함께 역경을 헤쳐 나가는 과정 속에서 ‘동료애’가 생긴다. 그렇다면,『스윙 댄스를 하며 만난 사람들이 좋다』라는 말은 동료애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까?'  


이 생각에 이르자, 문득 ‘동료’의 의미가 궁금해졌다. 국어 사전에는 ‘직장이나 같은 부문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 나와 있었지만, 그 한자의 의미를 추론해보면 좀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동료는 같을 동(同)에 동료 료 또는 예쁠 료(僚)를 쓰는 데, 이 ‘요(료)’자를 풀이해보면 사람 인(人)변에 횃불 료(尞)를 쓰고 있었다. 이는 횃불을 들고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일 텐데, 풀이해보면 함께(同) 있는 이를 위해 불을 밝혀주는 존재(僚)로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동료’라는 말이 영어의 ‘co-worker’ 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예쁘게 느껴졌다. 차라리 동료는 ‘band of brothers(전우, 형제)’에 더 어울릴 말이었다. 그러자 또다른 상념이 머릿 속을 맴돌았다. 


'고생 끝에 얻은 성취는 함께한 사람들을 더 끈끈하게 만들며, 그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물한다. 또한, 자신의 실력을 단기간에 발전시키며, 가면을 벗고 서로를 좀 더 이해하는 과정을 겪는다. 졸업 공연이라는 이름을 걸고 매일 저녁 함께 모여 땀에 흥건히 젖는다는 건, 감정이라곤 볼 수 없는 사전적 정의의 동료(co-worker)라는 의미를 넘어서 진정한 동료(band of brothers)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닐까?


스윙 댄스보다도 사람이 좋아 ‘계속’ 남아 있게 되기까지, 그 이면에는 아마 그러한 과정을 힘겹게 거쳐온 그녀의 노고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때로는 그 과정이 조금은 힘들 때도 있었을 것이고 마치 힘든 운동처럼 하기 싫지만 해야 할 때도 있었을 것이다. 필시 그러한 어려움을 알기에, 그녀와 같은 선배들은 이제 막 스윙을 맛보고 그저 ‘아는 사람’에서 동료애를 쌓기 시작한 이들을 찾아와, 과거에 고생했던 자신과 떠나간 동료를 떠올리며, 이러한 음식을 베풀고 응원을 아끼지 않을 수 밖에 없었으리라.'


음식을 베푼다는 것은 예로부터 정(情)을 의미했다. 그렇기에 할미는 손주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먹이려고 하고, 어머니는 매번 전화해서 밥은 먹었냐고 물어보고, 아끼는 후배들에게는 선배가 맛있는 음식을 사준다. 또한, 여기에는 내가 그렇게 누군가로부터 정(情)을 받았기에, 다음 사람들에게 정을 베풀고자 하는 마음도 생기게 된다. 일종의 호혜성의 법칙인데, 집단의 전통이나 끈끈한 유대는 어떠한 형태로든 개인이 아니라 집단 안에서 일방적인 것이 아닌 호혜적 관계가 지속적으로 형성됨에 따라 형성된다. 음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마음의 가장 좋은 표현 수단 중 하나이며 호혜적 관계를 위한 가장 기본 바탕이 된다. 


이 글을 쓰려고 마음 먹은 그 날, 함께 찍은 여러 사진을 하나하나 뜯어 보며 관계를 생각하고 이들의 마음(情)을 생각했다. 이는 내가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실로 나는, 그리고 우리는, 이 스윙 모임 안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분에 넘치는 애정을 받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시간을 내어 찾아온 이들과 음식들을 단순하게만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음식』은 '동료'로서 인정하고 애정으로 하는 마음이며 행복한 스윙 생활을 공동체 안에서 즐겁고 순탄히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저이들』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가면을 조금은 내려놓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 『저이들』 중 누군가는 없는 시간을 쪼개어 잠깐이라도 와서 그『음식』 건네고 가니 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일인가?'


그 날, 한 분께서 잠깐이라도 와서 떡을 두고 가셨다는 말에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글이 불현듯 떠올랐다. 〈가장 친한 친구가 보내준 축의금 1만 3천 원과 사과 한 봉지〉라는 글이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10년 전 나의 결혼식이 있던 날이었다. 결혼식이 다 끝나도록 친구 형주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정말 이럴 리가 없는데….’ 식장 로비에 서서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형주를 찾았다. 형주는 끝내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 형주 아내가 아이를 등에 업고서 토막 숨을 몰아쉬며 예식장 계단을 허위적 허위적 올라왔다.
"철환 씨, 어쩌죠. 고속도로가 너무 막혔어요. 예식이 다 끝나버렸네.”
초라한 차림으로 숨을 헐떡이면서 땀을 흘리며 나타난 친구의 아내가 너무 안쓰러워 보였다.
“석민이 아빠는 오늘 못 왔어요. 죄송해요.” 친구 아내는 말도 맺기 전에 눈물부터 글썽였다.
엄마의 낡은 외투를 덮고 등 뒤의 아가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친구의 아내를 통해 친구가 보내온 편지를 읽었다.
철환아, 형주다.
나 대신 아내가 간다. 가난한 내 아내의 눈동자에 내 모습도 함께 담아 보낸다. 하루를 벌어야만 하루를 먹고 사는 리어커 사과장수가 이 좋은 날, 너와 함께할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사과를 팔지 않으면 석민이가 오늘 밤 분유를 굶어야 한다. 철환이 너와 함께 할 수 없어 내 마음이 많이 아프다. 어제는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사과를 팔았다.
온종일 추위와 싸우며 번 돈이 만 삼천 원이다. 하지만 슬프진 않다.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너와 함께 읽으며 눈물 흘렸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기에 나는 슬프지 않았다. 아지랑이 몽기몽기 피어오르던 날 흙 속을 뚫고 나오는 푸른 새싹을 바라보며 너와 함께 희망을 노래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나는 외롭지 않았다. 사자 바람 부는 거리에 서서 이원수 선생님의 ‘민들레의 노래’를 읽을 수 있으니 나는 부끄럽지도 않았다. 밥을 끓여 먹기 위해 거리에 나앉은 사람들이 나 말고도 많다. 나 지금, 눈물을 글썽이며 이 글을 쓰고 있지만, 마음만은 너무 기쁘다.

“철환이 장가간다……. 철환이 장가간다……. 너무 기쁘다.”

아내 손에 사과 한 봉지 들려 보낸다. 지난밤 노란 백열등 아래서 제일로 예쁜 놈들만 골라냈다. 신혼여행 가서 먹어라. 철환아, 오늘은 너의 날이다. 마음껏 마음껏 빛나거라. 친구여……. 이 좋은 날 너와 함께할 수 없음을 마음 아파해다오.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다.

- 해남에서 형주가 -
편지와 함께 들어 있던 축의금 일만 삼천 원……. 만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세 장…….
형주가 어젯밤 거리에 서서 한겨울 추위와 바꾼 돈이다. 나는 겸연쩍게 웃으며 사과 한 개를 꺼냈다.
“형주 이놈, 왜 사과를 보냈대요. 장사는 뭐로 하려고…….”
씻지도 않은 사과를 나는 우적우적 씹어댔다. 왜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 것일까……. 새신랑이 눈물을 흘리면 안 되는데……. 다 떨어진 구두를 신고 있는 친구 아내가 마음 아파할 텐데……. 이를 사려 물었다. 멀리서도 나를 보고 있을 친구 형주가 마음 아파할까 봐, 엄마 등 뒤에 잠든 아가가 마음 아파할까 봐 나는 이를 사려 물었다. 하지만 참아도 참아도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참으면 참을수록 더 큰 소리로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나는 어깨를 출렁이며 울어버렸다. 사람들이 오가는 예식장 로비 한가운데에 서서…….


고마운 이가 잠깐 전달하고 떠난 저 '떡'이나 사정상 오지는 못했지만, 어떤 식으로는 음식을 전하려던 저 이름들의 마음속에는 한때, 내 마음의 한 곳을 아리게 했던 저 '형주'라는 친구의 마음과 비슷한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건 아니었을까?


분명한 건, 이런 마음들이 어떤식으로든 쌓여갈수록 우리 역시, '사람이 좋아 이곳에 남아 있다'라고 말하던 그녀의 습관처럼, 특별한 일이 없을 때면, 마음이 가는대로 추억이 담긴 이 비밥바를 방문하게 될 거라는 점이다. 그리고 호혜성의 법칙에 따라 그녀나 다른 누군가가 했던 것처럼 다른 이들의 행사 준비를 독려하는 존재가 될 거라는 점이었다. 


그때에 이르러, 누군가 나에게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고 묻는다면, 뜨겁진 않지만 적어도 새벽까지 은은하게 올라오는 연탄 구들장 같은, 그 마음을 나눈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기를……. 이들이 그랬듯, 우리 역시 시간의 바통을 무사히 넘겨받아, 미래의 동료에게 따스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게 되기를, 


그저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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