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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Mar 13. 2023

“Tomorrow is another day.”

3막 1장.

“Tomorrow is another day.” 


수요일 저녁, 집에 돌아가는 길에 어느 커피숍 창 쪽을 바라보니 갈색 조명 벽 아래에 눈에 띄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라는 번역으로 더 잘 알려진 문장이었다. 

‘그래. 내일은 오늘과는 다른 날이지.’ 

지터벅과 린디 합이라는 춤을 맛본 지 약 4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졸업 공연을 했던 날이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도 아득히 먼 옛날처럼 느껴졌다. 4개월 전을 생각하면, 내가 이런 것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내게도 역시 내일은 실상, 또다른 날(another day)가 아니었다. 나의 백수적 삶이 다른 이들에 비하여 다채로워 보인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크게 보면 반복되는 일상일 뿐이었다. 물론 그 삶이 무척이나 잔잔하고 안정적이었기에 싫지 않았다. 하물며 그 반복 속에서 숙련되는 나를 보면서 기쁘기까지 했던 나날이었다. 어떤 날은 해가 머리맡에서 뜨다가 발치에 이를 무렵까지, 그 모든 시간을 내 의지에 따라 통제한다는 느낌이 들었으며 이렇게 꾸준히 반복적으로 무언가를 하다가 죽어가도 나쁘지 않겠다 싶기도 했다. 그야말로 욕심도 없으며 감정 소모도 없는 나름 행복한 삶이었다. 

한 번은 친구가 이러한 내 삶이 어떠한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 질문에 "내 삶은 지극히 평범한 루틴으로 이루어져 있어. 아침에 일어나서 영어 공부를 좀 하고 운동을 다녀오고 점심을 먹지. 그다음에는 정해진 일을 하고. 주말을 제외하고 이 일상은 다르지 않아. 어디에 묶여 있지 않은 삶일수록 자신의 시간을 잘 통제하지 않으면 쉽게 무너지고 말거든."이라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떻게 인연을 만드는 지, 혹은 다른 사람은 안 만나냐는 질문에는 "예전에는 우연히 만날 기회가 있거나 어떠한 모임에 새롭게 소속되면서 만났다면, 이제는 뭔가를 통해서 일부러 찾으려 하기보다 평범한 일상 가운데에 들어온 사람과 인연을 맺는 거 같아. 이를테면 매일 운동을 하는 시간과 공간 속에 들어온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인사하고 알게되는 식인거지. 뭐, 그러다 보니 얼굴을 1년 봤다고 두터워지거나 하지 않지만, 상관 안해. 물론 좀 더 다가와주면 고맙겠지만." 

“네가 먼저 다가서야지. 관심이 있다면 말야.” 

장황하지만 실속없는 내 말을 듣고 친구는 늘 그렇듯 정답일 수 밖에 없는 답변을 건넸다. 당연히 나는 이 말을 여러 번 들었으며, 이미 그 답이 나올 것 예상하고 있었다. 다만, 그것에 대한 답변은 여전히 준비되지 않았기에, “그러게.” 라며 멋적게 웃고 말 수 밖에 없었다. 

내 이야길 하면 결국엔 이런 대화로 마무리 될 뿐이었다. 삶과 인연에 대해 두루뭉술한 대답 밖에 할 수 없을 뿐이며, 그 안에 구체적인 존재, 구체적인 사건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 누군가 관심 있는 사람이 있으며 어떻게 진전되고 있다는 말, 혹은 어떤 일을 겪었는데 그 일이 불쾌했다는 식의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설령 있다고 해도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은 말이었으며, 사실 흘러갈 일들이라 여긴 통에 며칠이 지나고선 잘 기억도 나지 않는 게 다반사였다. 내 삶은 친구들과 맥주와 땅콩을 씹으며 할만한 가십거리가 별로 없었다. 

삶의 뜨거운 자극과 극적인 변화는 젊은 시절에 많이 겪어야 한다고 여겼다. 30대 중·후반 이후부터는 변화를 추구하기보다, 용암처럼 뜨거우며 액체와 같이 요동치던 삶의 변화들이 점점 식고 굳어져 가는 시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어느 한 심리학자의 말대로 자기실현의 시기였다. 그 실현을 위해서 이제는 외적인 자극과 변화보다 내적인 탐색을 위해 노력해야 할 시기라고 여겼다. 그래서 일상의 변화보다는 정해진 일상 속에서 꾸준히 반복했을 때 얻어지는 힘과 능력을 믿으며 그 안에서 자신을 탐색해 나가기 시작했다. 난데없는 코로나까지 겹치며 실로 몇 년 동안 그렇게 침전하며, 나를 돌아보던 시기였다. 정말 안정적이며 마음의 폭풍 따위는 없이 잔잔한… 그 안에서는 계속 변화와 진화를 천천히 거듭하고 있지만, 멀리서 보면 하루하루가 더할 나위 없이 다를 바 없는… 그래서 누군가 어떻게 지내냐고 물으면, '늘 그렇지 뭐.'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누가 보면 지루하다고 할 만했지만, 어찌보면 지루할 틈이 없는 삶이었다. 그렇기에 내게 어제는 실로 ‘오늘’의 다른 이름이었다. 오늘 행복하면 내일도 행복을 기대할 수 있는, 오늘 불행하면 내일도 어떨지 예상할 수 있는 그런 삶. 제법 나는 삶과 마음을 잘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한평생 그런 삶이 반복될 것처럼 살았다. 그런 내게 이 스윙 댄스는 내 인생의 리듬이 a에서 a'나 a'' 로 반복되는 게 아니라, B라는 새로운 카운트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 새로운 시작은 흥분과 두려움만 있는 게 아니었다. 새로운 영역으로 발을 디딤으로써 만들어지는 수많은 관계의 사슬과, 깊어질수록 보이지 않는 감정의 파도나 소용돌이 등은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거쳐야 할 관문과도 같은 것이었다. 아카데미가 아니라, ‘동호회’라는 이름에서는 그 목적을 단순히 학습에만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얽히고설킨 관계의 수많은 선 중에서는 두꺼워지는 감정이 있는가 하면 얇아지는 감정도 있었다. 다행인 건, 4개월간 감정의 기쁨이 서글픔보다 더 많았다는 것이고 그렇기에 들뜬 마음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뭐, 어쩌면 충분히 감정의 자극에 둔감하게 받아들일 나이가 된 것일는지도 모르겠지만,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일조차도 경쾌한 스윙의 리듬처럼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도 한몫했을 게 분명했다. 


스윙 음악의 매력이란 무엇일까? 나는 스윙 음악과 댄스에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직 난 음악 자체에 대한 매력이나 어쩌면 스윙 자체에 대한 매력도 많이 느끼고 있지 못한 게 아닐까 싶었다. 두 차례의 입문 커리큘럼과 졸업 공연을 거치면서 느낀 건, 스윙 자체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과 주어진 시간 동안 꾸준하고 충실히 노력하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에 대한 만족이 더 큰 듯했다. 물론, 스윙 댄스 자체가 재미가 없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다만, 굳이 댄스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와 함께 뭔가를 배우는 것이라면 스윙을 대체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클라이밍 동호회가 될 수도 있었고 수영 동호회가 될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필시 인연은 사람들 사이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었다. 수많은 기회 중에서 우연히 내게 와 호감을 느끼게 되는 그 모든 것들은 보이지 않는 어떤 끈(緣)이 작용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이건 내 인생의 그 어느 선택지에도 존재하지 않던, 아니 단 한 번도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미지의 존재일 뿐이었다. 그저 그저 지금의 일상을 벗어난 뭔가를 하고 싶다는, 강렬하지도, 간절하지도 않고 그저 이따금 시장기처럼 느끼는 그러한 감정의 불씨가 가슴 깊은 곳에 꺼지지 않고 남아 있었을 뿐이다. 거기에 불을 지핀 게 봄이 지나 여름이 찾아올 무렵, 우연히 불어온 이 스윙이었을 뿐이다. 나는 여름을 그렇게 스윙과 함께 맞이했다. 

가을이 아니라, 여름이어서 실로 다행이었다. 낙엽이 지는 가을이었더라면, 나는 여름의 붕 떠오르는 기분으로 내 몸을 스윙에 기대지 못했을 것이다. 흔히 재즈는 가을을 닮았다고들 하지만, 내가 느끼는 스윙 재즈는 여름에 가까웠다. 아니, 모든 댄스는 여름의 자녀들이다. 그중에 스윙은 필시, 가을의 씨앗으로 태어난 여름의 자녀일 것이다. 

누군가 스윙 음악과 스윙 댄스의 매력을 묻는다면, 나는 그저 ‘스윙 재즈 음악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출 수 있어서 좋다’라는 진부한 이야기밖에 할 수 없다. 차라리 이성(異姓)과 춤이라는 매개로 교감할 수 있다는 말이 좀 더 솔직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 또한 스윙 음악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은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현재 최선의 답은 ‘가을을 닮은 여름이 느껴져서 좋다’라는 식의 표현이지만, 말로 전하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우며 가식적으로 느껴질 뿐이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답보다 잠깐의 침묵과 미소를 머금고는 그냥 ‘재밌다’, ‘신난다’라는 표현으로 둘러댈 뿐이다. 물론 어느 누군가가,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는 이유’를 묻는 것처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들여다보며 스윙 음악과 댄스의 매력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주기를 요구한다면, 나는 그 눈망울에 100번 입맞춤 하고픈 욕망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그 이유를 적어도 100가지는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는 “가을을 닮은 여름이 느껴져서 좋다.”라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간신히 찾은 첫 번째 이유를 댈 것이다. 


수업이 끝난 다음 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차분히 스윙에 대한 생각을 떠올렸다. 그러자 내게 처음 스윙이란 걸 알려준 형님의 얼굴과 목소리가 떠올랐다. 

“네가 춤을 잘 추기 위해선, 음악을 들을 줄 알아야 해. 그리고 스윙 음악에서의 8 카운트가 4번 반복되는 것에 익숙해 져야 해.”

그가 말한다. 형님을 비롯해 쌤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게 기억났다. 물론 형님처럼 스윙 째즈 리듬의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진 않았지만, '음악을 들어야 한다.'라는 말에는 구체적으로 그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파악하라는 말과 같았다. 그리고 훈련을 통해, 생각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게 되는 단계까지 가야 함을 의미했다.

 "음악을 들으세요! 상대와 주변을 보세요!" 

이제 형은 사라지고 쌤들이 말한다. 본다는 것, 듣는다는 것은 장애가 있지 않은 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무언가를 진짜 보고 듣는다는 건 익숙해지기까지 상당한 노력과 경험이 필요한 일이었다. 사실 이 말은  "깨우치세요! 파악하세요!"에 가까운 말이기 때문이다. 선현들이 그림을 본다고 하지 않고 읽는다고 했던 것처럼, 대상의 의미를 읽어낼 능력과 익숙함이 있어야 대체로 가능한 영역이다. 감각의 영역이 아니라 지각의 영역이며 앎과 훈련이 필요한 영역이다. 반복 훈련은 지각에 이르는 시간을 극도로 단축한다.

이런 생각에 이르자, 평상시에도 스윙 음악을 들어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음악에 익숙해지고 거기에 발과 몸을 입혀야 했다. 유튜브에서 ‘스윙재즈’를 검색하니 ‘들을수록 기분 좋아지는 스윙 재즈’라는 이름의 플레이 리스트가 있었다. 춤을 출 때 들었던 익숙한 음악들이 이어폰을 타고 흘러 들어왔다. 우선 한 음악의 카운트나 박자를 느끼면서 들어보기로 했다. 

'원투쓰리포- 파이브식스세븐에잇~! 투투쓰리포- 파이브식스세븐에잇~!'

듣다 보니 뭔가 익숙한 가락의 느낌이 든다. 초-중-고등학교 때까지 줄기차게 배운 사물놀이 장단이다. 사물놀이도 여섯 박이나 여덟 박으로 비슷한 음들이 3~4가락 진행되다가 다른 리듬의 가락으로 전환이 되는 것들이 많았는데 그것이 꼭 스윙 음악의 리듬과도 유사했다. 사물놀이도 정해진 박자 안에서 변주나 애드립이 존재했는데 째즈도 꼭 그러했다. 어린 시절에는 이따금 그 리듬을 송곳니를 딱딱거리면서 맞춰보곤 했는데, 그때 생각이 들어 듣고 있는 스윙 음악에 양쪽의 송곳니로 나름의 가락을 덧입혀 보았다. 나 자신이 그 재즈 음악의 일부를 담당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센 리듬에는 나도 강하게, 여린 부분에서는 좀 더 조용히 송곳니를 두드렸다. 엇박을 넣기도 하고, 한 음을 여러 박자로 쪼개어 두드려보기도 했다. 몰입감과 더불어 흥분이 몸을 점점 지배했다. 많은 사람들이 바에 모여 춤을 추고 있을 때 느껴지는 신나는 기분, 그 사람들을 보면서 직접 라이브로 곡을 연주하는 기분, 그리고 마치 영화처럼 이 둘을 교차하면서 점점 음악과 춤이 하나가 되는 듯한 고양감이 나도 모르게 몸을 들썩거리게 만들고 있었다. 

연이어 나오는 전보다는 느린 템포의 감미로운 음악! 이 음악에는 송곳니뿐만 아니라 다른 치아도 필요하다. 송곳니보다도 그 앞쪽의 이들이 좀 더 사용해야 어울리는 음악이다. 송곳니의 강한 음보다도 앞니를 두드릴 때 느껴지는 여린 음들이 좀 더 필요하다. 급기야 앞니와 옆 이빨 그리고 송곳니까지 활용하여 여러 변주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남들에겐 들리지 않지만 내 입안과 내 몸 안쪽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여러 음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런 음들이 귀로 들어오는 째즈 음악과 맞물려 버스는 서 있는 사람들의 흔들림마저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듯한 소공연장이 되어 버린다. 나는 그곳에서만큼은 핵심 연주자이다. 

어린 시절의 향수마저 어리는 ‘딱딱’거리는 음이 스윙 음악에 자연스럽게 덧 입혀지게 되자, 음악에 맞는 춤을 상상해본다. 어느 때는 턱턴이나 언더 암 턴으로 돌고 또 어느 때에는 스윙 아웃을 해본다. "스윙아웃 할 때, 4번과 5번 스텝에 좀 더 신경 쓰세요." 쌤들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온다. 

"고무줄의 탄성처럼 '띠용~' 하는 느낌이 있어야 해. 텐션 말이야. 팔 힘으로 잡아당긴다는 느낌보다도 서로가 적당한 텐션으로 무게감이 느껴져야 한단 말이지." 

형님의 목소리와 수업에서처럼 상대를 맞잡고 있는 쌤들의 포즈가 오버랩된다. 형님의 ‘띠용~’이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 때마다, 프로 레슬러가 로프에 몸을 부딪혔다가 반동으로 나가는 장면이 눈 앞에 그려진다. 4번과 5번 스텝으로 상대의 허리를 받칠 때, 몸을 돌리는 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관성을 그대로 받아 프로 레슬링의 로프 반동처럼 자연스럽게 반대로 나가는 것 같은 느낌 같다. 이윽고 내 몸이 원피스의 루피의 몸과 팔처럼 길어진다. 내 팔은 고무가 되어 내 옆을 지나는 상대의 허리춤을 손으로 받아 힘을 쓰지 않고도 ‘띠용~’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를 반대로 보낸다. 


여러 음악과 이빨의 딱딱거림 속에서 나는 한 음에 여러 박을 의식적으로 집어 넣어본다. 그러자 어디선가 들리는 목소리! "이런 변주도 있어요. 락 스텝을 이렇게도 밟아봐요! 따단따단~!" 쌤들이 락스텝의 2박의 리듬을 4박으로 쪼개자 내 송곳니도 '따닥따닥' 소리를 낸다. "락스텝을 이렇게도 할 수 있죠. '읏! 따단~!' 덩달아 내 이빨도 그 변주를 따라 '읏! 따닥!' 소리를 낸다. 턱의 위아래에 달린 이빨들로 여러 박자와 소리를 만들었다가, 눈앞에는 익숙해진 박자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나를 형상화 해보기도 한다. 이 부분에는 찰스턴이 어울릴 것 같다. 팔뤄의 손을 잡고 체이서에 이어 텐덤 찰스턴을 시도한다. 

"구음(口音)을 하세요." 

어디선가 들리는 초등학교 시절 사물놀이 선생님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다시 째즈 음악의 카운트를 입으로 중얼거린다. 

"원투쓰리포- 파이브식스세븐에잇! 투투쓰리포- 파이브식스세븐에잇! 쓰리투쓰리포- 파이브식스세븐에잇! 포투쓰리포- 파이브식스세븐에잇!" 

그러다가 다시, 

"덩덩덩덕쿵 덩기덩기덩덕쿵! 덩덕쿵 덩덕쿵 덩기덩기덩덕쿵!" 

그러다가 다시, 

"딱딱 딱다닥 딱따닥따 딱다닥! 딱다닥 딱다닥 따라닥따라닥딱따닥!" 

송곳니가 들썩거린다. 

'나는 뭐하고 있는 거지? 에라 모르겠다. 그냥 즐기자.'

버스 위 의자에 앉아 끊임없이 음악의 반복과 변주에 따라 내 이빨을 쉴 새 없이 두드린다. 음악의 박자에 따라 목이 위아래로 움직인다. 몸과 다리는 들썩거린다. 한적한 버스라 다행이다. 다시, 가수의 목소리에 따라 "원투쓰리포- 파이브식스세븐에잇! 투투쓰리포- 파이브식스세븐에잇! 쓰리투쓰리포- 파이브식스세븐에잇! 포투쓰리포- 파이브식스세븐에잇!" 치아만이 들썩거리는 게 아니라 급기야 조용히 나름의 스캣도 해본다. 나만이 들을 수 있는 조용한 소리로 비트박스처럼 숨을 내쉬면서 "투투" 들이마시면서 "쭈쭈" 소리를 내다가 양손의 엄지와 중지, 검지를 부딪쳐 또 다른 소리를 만든다. 그러다가 그 손은 양 장딴지에 가서 박자를 두드린다. 젬베를 치는 건지, 장구를 치는 건지 모르지만 나름 음악과 잘 어울리는 두드림이다. 그렇게 숫자를 카운트하는 건 또 까먹고 이어폰 안쪽으로 들리는 음악에 여러 소리를 덧 입힌다. 모든 것이 음악이 되는 순간이다. 어쩌면 그 순간만큼은 내 심장의 박동도 째즈 같지 않았을까 생각을 하면서. 

집에 돌아왔지만, 버스 안에서 시작된 공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 조용한 내 집은 거대한 춤판이 되어 버렸다. 보는 놈 하나 없으니 미친놈처럼 몸을 들썩거리고 듣는 놈 하나 없으니 어린 아이처럼 손에 잡히는 모든 걸 시끄럽게 악기화한다. 

봄이 끝나버렸구나 싶을 무렵, 서글픈 여름의 문턱에서 우연히 시작된 나의 잔치는, 이제야 시작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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