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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May 16. 2023

"월요일에 갈게."

3막 2장(번외편 - 졸업 공연 연습에 응원하러 사람들을 위한 글)


"공연 준비하느라 고생이지? 월요일에 갈게!" 


토요일 뒤풀이를 마치고 잠시 바람을 쐬며 걷는데 옆에서 누나가 말했다. 늦가을의 싸늘한 바람이 아닌, 선선한 바람이 조금은 상기된 얼굴 주변을 식혀준다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래요? 오! 알겠어요!" 


그 말에 반가운 듯 누나를 보며 말을 했다. 같은 말이라고 하더라도 따스함이 느껴지는 게 있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었다. 누나의 말과 웃음에는 따스함과 진정성이 녹아 있었다. 


'진정성이 안 느껴져.' 


진정성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자마자, 문득 아주 오래전, A가 내게 종종 하던 말이 떠올랐다. 반쯤은 장난으로 조금은 건조하게 한 답변에 A는 웃으면서 내게 그런 말을 건넸다. 그러고 나면 한층 과장된 말투와 크게 뜬 눈을 내보이며 이게 진정성이란 듯이 답변을 고쳐 다시 하곤 했었다.  A가 내게 진정성을 말하며 좀 더 따스하게 말해주기를 바라던 것도, 내가 그것에 반응해 장난을 치던 것도, 실은 이미 돈독한 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말하지 않은 모든 비언어적 표현과 의미들을 공유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 모든 말과 표정과 몸짓이 마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월요일에 갈게." 


이 말 한마디에서조차 마음은 표현되고 있었다. 호혜적 관계로서의 마음이나 행동이 아닌 귀찮고 번거로운 일일지 모르는 일을 기꺼이 해주려는 마음에 가깝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나 카톡 메시지로 남겨진 '갈게!' 도 마찬가지로 그 마음이 느껴지고 있었다. 실은 그게 비단 따스한 바람이 불어오던 새벽녘의 저 말 뿐이겠는가? 다른 날에 오는 이들도 누군가에게는 저 따스한 마음을 전하고 부담이 되지 않을 작은 선물을 들고 왔을 게 분명했다. 정작 왔는데, 누군가가 없어서 아쉬웠다는 말을 듣는 건 또 어떤가? (그럴 리 없겠지만,) 마음에 없는 빈말이라도 그렇게 말을 해주는 이에게 또한 온정을 느낄 것이다. 


마음을 숨기는 게 익숙해지고 이따금 자신이 가진 외로움조차 나약함으로 내비쳐질까 두려워하는 세상이다. 상처받을까 두려워 진짜 마음을 전하는 걸 꺼리는 세상이다. 그러한 세상에서 비록 직접 마음을 표현하진 않지만, 그 온정을 어떤 방식으로든 나누려 한다는 걸 그들의 말과 몸짓과 표정을 보는 순간 깨닫는다. 



언제부터 였을까?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해보려고 한 건…

어린 시절 우리 집은 기사식당을 했다. 가난한 살림에 시작한 식당이라 아버지와 어머니는 새벽부터 일어나 기사님들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고 저녁 늦게까지 손님을 받으셨다. 그러했기에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님이 참관할 수 있던 운동회나 기타 여러 행사에 그 분들은 단 한 번도 참여할 수가 없었다. 우습게도 그게 아무렇지 않을뿐더러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행사에 오지 않는다고 해서 내 부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지 않을 만큼 그분들에게 넘치는 사랑을 온몸으로 받았기 때문이었다. 나를 보는 눈빛과 말과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진정 나를 뜨겁게 사랑하여 이따금 미안한 눈빛을 보낸다는 것을. 열심히 일하는 내 부모가 자랑스러웠고 너무나 존경스러웠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를 찾아오지 않더라도 난 아무런 상관이 없고 이들이 나를 아끼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 그런데도, 누군가 나 또는 내가 속한 우리를 방문이라도 한다고 하면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는 그 행동이 너무나 고마워 동네 강아지처럼 꼬리라도 있다면 흔들어대고 싶은 것이? 




‘시간을 내어준다.’라는 말에 문득 어린 왕자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여우는 “누군가를 소중하게 만드는 건 네가 그 누군가에게 쏟은 시간이야.”라고 떠나갈 왕자를 향하여 말을 건넸다. 시간을 쏟는다는 것, 자신의 시간을 누군가를 위해 내어주는 것이었다. 왕이든 거지든 똑같이 주어진 시간을 다른 이에게 선뜻 주려는 마음이 저 말 한마디에 담겨 있던 것이다. 비록 네가 나에게 똑같이 하지 않더라도, 나는 기꺼이 너에게 시간을 주겠다는 마음. 그 마음이 어쩌면 흔한 저 단어들의 조합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기쁘게 만드는 것이다.





사실, 그 마음을 받았기에 이따금 두려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받은 만큼 주지 못하면 어쩌지? 곱씹을수록 그윽한 향기가 나는 말을 내게 건넸는데, 내가 무의식적으로 건넨 말이 곱씹을수록 불쾌한 악취가 나면 어떻게 하지? 마음이 커지고 관계가 깊어질수록 허전함도 커지는 법인데, 어느 순간 그런 울적한 기분을 감추기 위해서 모든 걸 내던져 버리고 숨어버리려 하면 어쩌지? 그러지 말자, 그런 생각일랑 말자….’ 심호흡 한 번으로 스스로 다잡아가면서도 그런 생각이 진흙처럼 버무려져 버리면, 나는 그 늪지대 위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좀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들어 버린다.  


그럴 때마다 다행스럽게도 날 붙잡고 끌어올리는 이들…. 반가움으로 깔깔 웃어댈 수 있는 이들로부터 나는 어떤 소속감을 느끼고 따스한 말 한마디에, 어쩌면 나처럼 진흙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이가 있는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피게 된다.




‘그날에 갈게.’ 


‘힘들지?’ 


‘수고했어.’ 


‘고생했어.’ 


‘고마워.’ 


‘미안해.’ 


‘나한테 말하지.’ 


'힘든 거 있으면 말해!'


‘이건 내가 할게!’ 


‘잘했어.’ 


‘으이그.’ 


‘파이팅!’ 




때로는 이러한 말로, 때로는 위안이 되는 눈빛과 토닥여주는 몸짓으로, 이들은 나를 끌어올리고 이곳이 실로 머물러 있을 만한 곳임을 느끼게 한다. 이런 이들과 함께라면….


물론 관계도 유통기한이 있어서 언젠가는 나를 위로해주던 이들과 멀어지고 결국 사라져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모든 관계는 허무하고 무가치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허무한 시기에서조차 나는 지금의 좋은 기억과 위안이 되던 이들을 떠올리며, 한숨 한 번 쉬고 다시 시작할 것이다. 인연이란 그런 것이니까. 그렇게 왔다가 가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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