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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Jul 10. 2023

"너는 너 자신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6막 n장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中>






내게는 5층이 그러했다. 더위가 시작된 6월 끝자락에, 긴 터널과도 같은 저 계단을 힘겹게 오르고 나면, 이윽고 가을의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빵빵한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은 여름과도 같이 빠르고 신이 났지만, 갈색의 바닥은 분명 가을이었다. 설국의 차분함과는 달리 이곳은 에너지가 넘치고 광염이 깃들어 있는 여름이며, 동시에 이윽고 떨어질 수밖에 없는 낙엽으로 뒤덮인 가을의 고장이었다. 오르기 전까지 다 부질없는 짓이라 여기다가도 결국 오르고 나면 몇 시간은, 세상과 단절된 채 꿈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만한 곳이었다. 그러나 오후 3시가 주는 특이한 느낌, 나로서는 저물어가는 하루라는 서글픔과 동시에 사막여우로부터 비롯된 아직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중첩된 그런 특이한 느낌 때문에, 오후 3시를 달갑게 느끼지 못했다. 온탕과 냉탕이 섞여 미지근한 물이라도 되었으면 좋으련만, 마치 그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었다. 때로는 오후 3시 이후에는 어디에도 행복이 없을 것 같이 느껴지다가도 여우의 말이 문뜩 떠올라,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것 같은 알다가도 모를 기대감을 주기 때문이었다. 내 감정의 파도는 중간이 없었다.


긴 터널 끝에 만난 스윙 댄스는 조금은 내게 사막여우와 같은 마음으로 살게 해주었다. 물론 만 1년이 되어가는 지금조차도 ‘토요일 오후 3시라는 애매한 시간에 5층 계단에 오르는 건 다 부질없는 짓이야!’라고 외쳐대는 마음의 소리와 홀로 눕기 좋은 소파의 유혹에서 잘 벗어나질 못해, 번번이 뭉그적대곤 하지만…. 그럼에도 오랜 세월 끝에 후회와 다짐을 반복하고 깨달은 어떤 믿음, 지금 삶이 비록 행복하지는 않더라도 공허하게 시간을 보내버리는 것보다는 발버둥 치는 게 낫다는 생각, 스스로 지정해 놓은 마땅히 해야 할 것들을 해 가면서 의미를 어떻게든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들이 결국 나를 문밖으로 밀어낸다. 누군가 3시에 나를 기쁘게 기다릴 것이라는 확신이 하나 없음에도, 2시부터 준비를 하고 늦을세라 부리나케 길을 나선다. 여우가 기다리는 행복 때문이 아니라, 마땅히 그래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것이 내가 이 삶에서 의미를 얻는 방식이었다.




“3시에서 5시까지 수업을 듣고 2시간 연습실을 빌려서 바로 복습을 하려고요.”


이번 두 달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 외부 요인에 방해받지 않는 충실한 연습이었다. 지난 두 달간 지터벅 도우미로 지내면서 집중하지 못했던 연습들을 충실히 하고 싶었다. 누군가의 성장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그것을 옆에서 도와주는 것도 값진 일이었지만, 그 마음이 깊어질수록 자신의 성장에 대한 욕망도 더욱 커졌기에 강습 등록 전부터 이러한 마음과 그에 따른 계획들을 세우고 있었다. 물론 그 계획의 큰 틀은 예전과 다른 바 없었다.


‘첫째는 기본기를 탄탄히 할 것, 두 번째는 복습에 충실할 것, 세 번째는 많이 웃고 동작이나 움직임을 게을리하지 말 것.’


이러한 세 가지 큰 목표들을 세우면서 다시금 예전부터 지켜오던 몇 가지 원칙들을 되새겨보았다.


‘스윙 댄스 역시 어떤 동작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자유롭게 사용하기까지의 배움의 방식은 주짓수나 다른 활동적인 스포츠들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처음에는 하나의 동작을 여러 개로 나누어 천천히 연습해가면서 다시 부드럽게 이어보고, 동작이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속도를 높여 가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잘하지 못하니, 동작들을 영상으로 찍어 보거나 그걸로 피드백을 받아보자.’


다행히 바운스와 트리플을 비롯한 여러 기본 동작들은 과거 많은 쌤들을 통해서 배우거나 꾸준히 하기 위해서 스스로 드릴drill처럼 만들어 둔 것들이 있었다. 그것들 하나하나를 시간이나 곡 수를 정해서 연습하고 그다음으로 배운 것들을 복습하면 좋을 듯했다.


저 목표들은 중에서 세 번째는 이번 강습을 듣기 직전에 린디홉 대회에 나가보고서, 그리고 첫날 수업 이후에 약간의 조언을 얻은 이후에 얻는 신선한 자극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물론 춤을 출 때, 웃어야 한다는 것은 그 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마치, 바운스가 필수인 것과 마찬가지로 웃음 또한 연습이 필요하며 필수 조건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물론 진정성을 담아야 하지만, 관점 자체가 기존에는 ‘춤이 즐거우면 미소가 자연스럽게 나는 것이다’라는 생각에서, 마치 춤에 없어서는 안 되는 일부가 바로 이 미소를 띤 표정임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나는 스윙 댄스라는 연기를 하고 있으며, 이 메쏘드 연기에 필요한 것은 미소이다.”


이 깨달음이 있자 춤을 추는 모든 순간이 웃음을 보일 수 있는 기회라 여기게 되었다.




‘장소와 시간, 계획과 원칙이 정해졌으니 이제 실행만 하면 된다.’


수업이 끝나고 몇 가지 이유로 연습실을 따로 잡지 않고 바에서 연습을 시작하게 되었다. 뜻이 맞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연습하려는데, 운영장님이 들어오셨다. 잠시 그와 함께 이야기하던 도중에 몇 가지 궁금증이 생겨서 물어보았고 그는 기본기 중 스윙아웃이나 여러 가지 기본 동작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팁을 주었는데, 그중에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이 들던 말이 있었다. 대략 이런 말들이었다.


“많이 움직여야 해요. 커넥션에서 스트레치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프레임이고 프레임을 잘 갖추려면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움직임이 게으르면 안 돼요.”


이 말을 들었을 때, 마치 중요한데 잊고 있던 것을 다시 찾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말은 실로 주짓수에서조차 도움이 될 말들이었다. 아니, 이따금 다른 친구들과 운동을 할 때 강조하는 것이기도 했다. “상대와 적절한 거리로 파고 들어가 프레임을 잘 형성하는 것이 상대를 잡고 있는 것보다 나아요.”는 이따금 내가 하던 말인데, 그 원리를 여기서도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난 어쩌면 동작을 대충대충 게으르게 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스텝을 스텝답게 밟지도 않고, 상대와의 간격에서 좀 더 발 빠르게 들어가 프레임을 잡고 움직였어야 하는 건데, 그냥 뭉개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지금 마주 잡은 상대와의 커넥션에 힘이 들어가는데, 좀 더 가까이 갔더라면 손에 들어가는 힘을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그의 조언 하나로, 할 수 있는 모든 동작을 다시 점검하기 시작했다.




“연습을 꾸준히 하고자 한다면, 함께 할 파트너가 있는 게 좋아요.”


그는 술자리에서 또한 이런 말을 했다. 스윙 댄스 역시 주짓수처럼 둘이 함께하는 일종의 스포츠이기 때문에, 파트너가 필요했다. ‘나는 고정적인 파트너가 없다. 그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연습 상대가 필요한 것처럼 상대도 연습 상대가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서로 친절해지면 되지 않을까? 내가 먼저 다가가 도움을 청하고 상대의 도움이 필요할 때 내가 적극적으로 도우면 된다. 다만, 리딩을 하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따라와주는 사람 사이에서 합을 맞추는 것이기에, 팔뤄의 도움 요청에 따라오려면 내가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또한, 마치 솔로 드릴처럼 혼자서도 연습할 방법들을 계속 찾아보거나 만들어 봐야겠다.’


역시 춤을 추는 모든 순간에 미소뿐 아니라 서로에게 친절해질 필요가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복습할 시간이 있다는 것은 수업 자체의 집중도를 끌어올려 줄 뿐 아니라, 조바심도 다소 줄여주었다. 다만, 역시 파트너가 없으니 처음에는 연습하기가 다소 어려웠다. 그러나 함께 수업을 듣고 있는 친절한 팔뤄 운영진분이 몇 번이고 쉼 없이 우리를 도와주었고 그 덕분에 우리는 자칫 어정쩡해질 뻔 했던 2시간을 풍요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이러한 개인 연습뿐 아니라 이번에는 도우미 분들이 따로 복습 모임을 결성해 월요일마다 함께 연습하였는데, 아쉽게도 그날 일이 있어서 참석할 수 없었다.




수업의 커리큘럼은 단순히 무엇을 배울지를 적어둔 게 아니라 궁금증을 자아내는 제목들이 가득했다. 가령 이런 식이었다.


“찰스턴! 기초부터 편견 없이!”, “Jazzy & Easy 들리는 대로 춤추기”, “초중급에서 가장 멋진 Move”


‘독특한 제목으로 궁금증을 유발하여 강습생의 참여도를 높인다’라는 전략이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또한, 강의 첫 주차가 찰스턴인 것도 흥미로웠는데, 찰스턴이 제일 돋보이는 분들이라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적 있기에, ‘가장 자신 있고 멋진 것을 먼저 하시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여하튼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이 마치 재즈의 자유로움과도 닮아 있는 듯해서 인상에 남았다.


쌤들의 모습에서도 젊음의 열기와 더불어 그러한 독특함이 잘 묻어나 있었다. 팔뤄 쌤의 톡톡 튀는 목소리는 그 전체의 인상과 비슷했고 마찬가지로 리더 쌤의 차분하며 지적인 목소리 역시 전체 인상과 닮아 있었다. 둘의 이미지를 곰곰이 지금 생각해보면, 손오공과 삼장법사 같기도 했다. 톡톡 튀면서도 발 빠르게 일을 처리하며, 변신에 능한 팔뤄 쌤과 온화하며 점잖지만, 전체를 아우를 줄 알며 신출귀몰한 손오공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게 리더 쌤의 느낌이랄까? 그 둘이 조화를 이루어 발산하는 색 또한 파스텔이나 청량감을 주는 색에 가까웠다. 마치 호크니의 그림과도 닮아 있었다. 뭐랄까, 이전의 쌤들의 이미지에서는 마티스적인, 조금은 고전적이며 중후한 세련미가 엿보였다면, 지금의 쌤들의 모습에서는 밝고 청량한 이미지가 좀 더 감도는 듯 했다. 나는 두 작가의 그림 스타일 모두 사랑한다.




수업의 성격 역시 기존의 실습 중심의 강습만 있는 게 아니라 2주 차에는 이론을 기반으로 한 강습도 이루어졌다. 강습의 내용은 스윙 음악의 구조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이었다. 클래식을 비롯한 여러 음악이 그냥 본능에 따라 듣는 것과 화성악이나 배경 지식 등을 알고서 듣는 게 차이가 있듯이, 이러한 이론적 배경을 이해하고 들으니 음악이 한층 잘 들리는 듯했다. 쌤들은 우리를 앉혀놓고 전지에 선을 그리고 그 주변에 숫자, 글씨를 써넣으며 스윙 음악의 구조와 “Jazzy & Easy 들리는 대로 춤추기”라는 강의 제목에 맞게 음악적 표현 방식 등을 이야기했다. 대략 이러한 이야기를 나눈듯하다.




“8 카운트 한 마디가 네 개가 모이면 프레이즈라고 읽고 각 프레이즈의 마지막에는 브레이크 구간이 있어요. 소셜을 하다가 브레이크 구간에 이르면 재즈 무브나 스탑으로서 음악이 끝났다는 것을 표시해 줄 수 있죠. 처음에 스윙 아웃 없이 이렇게 재즈무브만 할 수도 있어요. 스탑이나 재즈무브도 한 프레이즈 안에서 자유롭게 섞어 쓸 수도 있고요.”


쌤들은 음악에 맞춰 여러 동작을 보여주면서 음악을 표현하는 여러 방법을 직접 설명해 주었다.


“스윙째즈는 한 프레이즈가 보통 AABA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요. B구간에 뭔가 다른 느낌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제일 쉬운 방법은…<중략>… 프레이즈 마지막에서 서클 스탑을 하거나 부기 포워드로 마무리 할 수도 있어요. 일부러 이런 느낌을 낼 수도 있고요. 이거는 참고하시라고 보여주는 것이고 음악에 맞춰서 들리는 대로 자유롭게 얼마든지 더 확장해서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알고 있다고 여기는 부분이라고 해도 이따금 누가, 어느 시기에, 어떤 방식으로 말했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와닿듯, 나는 이분들이 언급했던 바로 2주 차의 이 말씀들이 커다란 충격으로 와닿았다. 그 시기에 내 마음이 ‘춤을 자유롭게 추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계속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단순히 스윙아웃이나 배운 패턴 일변도로 나아가는 것에 대해서 일종의 매너리즘을 느끼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이전 강습을 들을 때부터 했던 고민인데, 쌤들의 멋진 춤을 보다 보면 이따금 특별한 패턴이 없어도 마치 피카소의 '화가와 모델' 그림처럼 바닥에 곡선을 그리며 자유롭게 움직이는 듯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도 쉽지는 않지만, 지터벅 시간에 ‘마법의 고리’라고 불렀던 리더 손과 팔러 손의 커넥션이 이따금 거추장스럽게 느껴졌으나 서로 붙어 있는 이 고리를 떼어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런 와중에 음악적 표현에 대한 이론적 설명과 더불어 ‘음악에 맞춰서 들리는 대로 자유롭게 추셔도 된다.’라는 말이 마치, 그 커넥션을 떼어내고 음악이 이끄는 대로 웃으면서 춤을 추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처럼 느껴져, 고민하고 있던 것이 한순간에 뻥 뚫리는 느낌마저 들었던 것이다. 커넥션 뿐 아니였다. 음악을 들을 수 있고 그에 따라 음악을 탈 수 있다면, 스텝 역시 트리플에 구애를 받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예전에는 무조건 트리플을 밟아야만 하는 것 같이 느꼈는데, 지금은 조금 그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어요. 뭐랄까? 조금은 음악에 맞춰서 ‘지터벅 무브를 했다가 다시 트리플을 밟아도 춤이 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


어느 날은 빠닫을 하고서 뒤풀이 장소로 향하면서 운영장님께 요즘 느끼고 있는 생각에 대해 이야기하니, 그는 벌써 그런 생각을 했냐고 껄껄 웃으셨다.


이렇듯, 짐짓 안다고 여겼던 것들이 새롭게 느껴지고 몸으로 깨닫게 될 때, ‘내가 아는 것이 결코 아는 게 아니었구나!’라는 것을 느끼며, 겸손해야 한다는 걸 느낀다. 나는 무엇을 안다고 말하고 누구에게 이해한다고 말했을까? 허울뿐인 말들로 혹시나 누군가를 상처입히지 않았을까? 앞서 말한 경험들을 고백하면서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잠시 왔다가 스쳐 지나갔다. 그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이 춤이 좋은 까닭 하나는 바로 말이 없어도 교감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이해보다 앞선 교감, 끊임없이 머리가 아닌 몸과 경험으로 이해해보려는 시도와 노력……. 이 모든 것들이 스윙 댄스에선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친절한 파트너가 거울처럼 나를 비추고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웃어야 상대가 웃는다. 내가 움직여야 상대도 움직인다. 내가 행복한 듯 춤을 춰야 상대도 행복하다.’ 그전부터 어쩌면, 알고 있다고 여겼던 것들이 다른 말로 표현이 되어 다시금 마음에 이르렀다.




무언가 얻고자 하는 게 있다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었다. 연습 시간을 얻고자 하니, 쌤들과 이야기하거나 술 한잔 기울일 시간이 별로 없었다. 특히나 3~5시 연습이 끝나고 사람들끼리 오붓하게 모여 진솔한 이야기라도 나눌 시간에 나는 무리에서 떨어져 7시까지 연습을 하곤 했고, 빠닫을 하고 뒤풀이에 나가면 거의 막바지쯤이었거나 자리가 없어서 따로 테이블을 만들어 앉아야 했다. 쌤들과 조금 긴밀한 이야기를 진득하니 나누게 된 것은 MT를 대신한 출빠를 하고서 그날 저녁에 옥상에 모여 앉아 파티를 할 때였다.


쌤들을 처음 보았던, 대회를 위해 다른 바를 간 것을 제외하고 순수한 의도(?)로 출빠라는 것을 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간 곳은 빨간 커튼과 어두운 바닥 그리고 고풍스러운 의자가 있는 ‘소셜 클럽’이라는 곳이었다. 붉은 색이 감도는 이미지가 당혹스러웠고 안면이 아예 없는 이들과 춤을 춘다는 생각에 조금은 긴장이 되었다. 특히나 초반에는 대회에서 다들 나보다 잘 추는 듯하여 부족한 실력에 다른 사람에게 춤을 청하기가 민망했던 기억이 떠올라, 그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웠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함께 온 팔뤄들이 곳곳에 있었고, 그들에게 다가가 5층의 갈색 마룻바닥에서 춤을 청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손을 맞잡고 함께 춤을 추었다. 2곡, 3곡을 추고, 다리가 좀 풀리자 이내 다른 사람들을 찾아가 춤을 청하기 시작했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에 나오는 핏빛 같아 보이던 세상이 조금씩 마티스의 붉은 색의 조화처럼 느껴지기 시작하며, 그 안에서 다시 감각을 찾기 시작했다.




신나게 춤을 추고 옥상에 올라서자 이미 많은 동료들이 그곳에서 술을 한잔 기울이면서 웃고 즐기고 있었다. 그날 처음으로 쌤들을 가까이에서 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정이 넘어서까지 우리는 신나게 밝은 전등불 아래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출빠라는 것도 새로웠고 이렇게 옥상에서 자유롭게 춤을 추며 웃고 떠드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날, 우리가 있던 이곳도 역시 에너지가 넘치고 광염이 깃들어 있는 여름이며, 동시에 이윽고 떨어질 수밖에 없는 낙엽으로 뒤덮인 가을의 고장이었다. 이미 여름은 왔고 그날 밤은 내 마음에 한껏 뜨거운 불을 질러댔다.




강습 6주 차가 되자 슬슬 졸업 공연에 대해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학습은 매일 꾸준하게 하는 것이 우선이기는 하나, 어느 때에선 한계를 넘기 위하여 몰입적 경험이 필요하다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잠시 몰입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칙센트 미하이교수는 그러한 몰입의 구성 요소로서 도전과 기술의 조화Challenge-skill balance, 명확한 목표Clear goals, 구체적인 피드백Unambiguous feedback, 행위와 의식의 통합Action-awareness merging, 과제에 대한 집중Concentration on task at hand, 통제감Sense of control, 자의식의 상실Loss of self-consciousness, 시간 감각의 왜곡Transformation of time, 자기 목적적 경험Autotelic experience 이라는 9가지 요소를 제시한 바 있다. 이를 졸업 공연에 대비해 본다면, 왜 졸공이 나같은 초보자들의 댄스 학습에 효과적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이렇다.


수업에서는 조금 어려웠지만,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도전 과제들이 눈 앞에 있고, 졸업 공연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설정되어 있으며, 쌤과 돔을 비롯한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 연습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혼자 외롭게 추는 게 아닌 함께 춤을 연습하기 때문에 의식적 노력이 없이도 과제를 수행하게 되고, 연습 시간에 오로지 철저하게 졸공 과제에만 집중하며, 연습을 계속하면서 실력이 발전되어 감을 느끼어 돌발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통제감을 느낀다. 춤이라는 활동 그 자체에서 느끼는 만족감과 즐거움으로 인해 자아에 대한 인식은 잊어버리게 되고,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나갔나 싶게 느끼며, 단순히 졸업 공연 이상으로 그 과정 자체가 목적, 만족이 되어버리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이번에는 쌤들이 직접 안무를 짜주었기 때문에 안무를 짜는 과정에서 오는 진통이나 부딪히는 일이 없어서 강습생들의 학습 몰입이 깨지는 일이 적었다. 실로 처음에 안무를 보았을 때, 어렵기는 했으나 수업 때 했던 과제들이었기 때문에 도전 의식이 생겼을뿐더러, 안무 영상을 보자마자 이것을 숙달하면 우리의 실력이 한 단계 올라갈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그 때문에, 몰입을 깨뜨릴 어떤 불안감도 없었다. 오로지 잘하고 싶다는 욕망, 성장할 거라는 확신만이 있었을 뿐이다. 만약 안무가 제때 나오지 않거나 안무로 인해 진통을 겪게 되었다면, 강습생들의 학습 몰입이 이처럼 깊게 박히지 않았을 것이다.


안무가 다 나왔다는 안도감에선지, 혹은 쌤들이 짜준 이 안무의 퀄리티를 보고선 이걸 배우면 나처럼 능력치가 올라서겠다는 확신이 서서인지, 전에 없이 상당히 많은 인원이 졸업 공연을 하겠다고 신청했다. 적어도 문제지만 많아도 안무 대형을 구성하기가 어렵기에, 쌤들은 같은 안무를 각 5팀씩 A조와 B조로 나누어 선보이기로 했고 팔뤄쌤은 나에게 2번 다 공연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저는 2번도 상관없습니다. 어쨌거나 이런 연습을 통해 나를 조금 더 나은 린디하퍼로 만들어 줄 수 있는가가 중요한 거 같아요. 그리고 앞에 나가서 해보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 건데, 어쨌거나 공연도 많이 해보면 좀 더 자신감이 생기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실수하면 하다못해 반성이라도 하겠죠! 여하튼 하루 이틀만 하고 땡칠 거 아니니깐 함께 으쌰으쌰 합시다.”


아직은 안무에 따른 인원 구성이 확정되지 않아 우왕좌왕하고 졸공에 대한 두려움이 있던 초기 단톡방에서 나는 이런 말을 건넸다. 그때엔, ‘전보다 좀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는가?’ 오로지 그 목적 하나만 보고서 다른 건 생각하지 않기로 했기에, 나는 무엇이든 승낙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예상한 대로 이미 나와 있고 촘촘히 짜인 안무를 연습하는 그 시간은 정말 행복했다. 처음에 안되던 동작들을 나눠서 연습해 보고 서로 피드백해주고, 틀려도 웃으면서 다시 해보고, 허기질 때쯤이면 누군가 두 손에 한가득 마음이 담긴 음식들을 싸 들고 오고, 먹으면서 서로 이야기하다가 웃음꽃이 피고, 다시 춤을 추고, 끝나고 간단하게 뒤풀이도 하면서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에 관해서 이야기도 나누었다. 실로, 만족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오는 거라던 그 말이 딱 어울리는 시간이었다. 이런 기분이라면, 다음 강습에도 분명 공연을 할 것 같았다. 그만큼 진실로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이었다.




“안무를 졸업 공연 멤버들이 짜게 하는 것도 무조건 그렇게 하게 하기보다 상황을 보면서 해야 돼. 충분히 짤 실력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안무를 전적으로 그들에게 맡겨도 괜찮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짜주는 것도 나쁘지 않아.”


과거 어느 날 졸공 안무 관련 문제로 고민하며 친한 누나와 이야기했을 때, 그녀는 이렇게 자기 생각을 피력했다. 물론 구성원 스스로 안무를 짜게 함으로써, 그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킬 수도 있겠지만, 졸공의 목적이 구성원들의 단합과 협력, 그리고 졸공을 통한 실력 향상과 더불어 동호회에 대한 애정을 높이는 것이라면, 어쩌면 이렇게 안무가 이미 나와 있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싶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의 연습으로 느낀 바인데, 기존에 지금보다 더 초보 시절에 안무를 짜는 과정 중에 겪은 진통과 그로인해 구성원끼리 부딪히던 경험을 보고 난 후에는 ‘안무를 짜는 일은 어려운 일이며, 겪고 싶지 않은 일이다.’라고 여기던 생각이 송두리째 바뀌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어느 정도 레벨에 올라서고 즐겁게 졸공을 경험하고 나니, 나조차도 ‘안무를 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랄까?


‘졸공 멤버들이 누구인지, 안무를 잘 짤 수 있는지, 상황을 보면서 해야 돼.’라던 누나의 말이 ‘졸공 자체에 몰입할 상황이 되는지, 그로 인해 동호회에 애정을 더 가질지, 아니면 동호회와 동호회의 꽃인 졸업 공연에 스트레스를 받아 다시는 하지 않게 될는지, 그러한 상황을 보면서 안무를 짜주든지 말든지를 결정해야 돼.’로 들리는 까닭은 왜일까? 이 동호회에 그 누구보다 애정이 넘치던 그 누나는 분명, 그러한 의미까지도 내게 전달한 게 아닐까 싶었다.




이번 졸업 공연 준비의 인상을 키워드로만 표현하자면, 몰입, 조화, 그리고 만족이었다.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었고,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각자의 역할을 조화롭게 수행했으며, 결과에 이르기까지 과정 하나하나가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짜증 섞인 말투 하나 없이 어느 하나 웃음이 끊이지 않던 그 잊지 못할 순간들, 상대의 얼굴만 봐도 미소가 번지던 순간들이 넘쳤다.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무엇을 해도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이 파스텔처럼 번지는 순간들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좋았던 기억들의 많은 부분을 잊어버리겠지만, 이 파스텔 색상의 몽몽한 인상들은 오랫동안 달콤한 솜사탕처럼 남아 있을 것만 같았다. 뭐, 살다가 일상이 어그러지면, 그 추억의 솜사탕을 한 움큼 집어 먹으면 되겠지. 그렇게 이번에도 어김없이 말랑말랑하고 커다란 솜사탕 하나를 마음에 적립한다.




“우리도 옥상에서 파티를 열어봐요.”


지난번 출빠에서 경험한 옥상 파티의 경험이 강렬해서였는지, 바 사장님은 졸업공연 행사가 끝나자마자 약속대로 옥상 파티를 주최하셨다. 너나 할 것 없이 도움이 될 물건들을 가져오거나, 파티에 도움이 되려고 애를 썼다. 고기를 굽고 술을 따르고 노래를 부르면서 우리는 지난 2주, 그리고 2달간의 짧은 여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헤어짐의 시간을 대비하고 있었다. 여름날과도 같은 저녁, 지붕 없는 밤하늘 아래에서의 맞이한 이별의 시간은, 아쉽거나 서글프기보다 흥겹게만 살았던 20대 초반, 젊은 어느 시절에 가까웠다. 왁자지껄 떠들고 목이 쉬도록 노래를 부르고 무릎이 나갈듯 춤을 췄다. 우리 시대의 댄스 음악들을 들으며 깔깔 웃어댔고 어둠 속에서 빛을 받아 반사되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칠 때면, 뭐가 그리 좋은지 또다시 깔깔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1차를 마무리 짓고서 다시 5층으로 내려가니, 다른 팀들이 바 안에서 제각기 함께 옹기종기 모여 앉아 우리처럼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있었다. 우리가 만드는 행복한 추억만큼이나 이들도 저 나름의 행복했던 여정의 추억들을 다시 곱씹어가며, 이야기 나누고, 술을 기울이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하나의 큰 공동체 안에서 서로 다르지만 비슷한 체험을 하면서 우리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마지막을 완성해갔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불행한 기억 하나를 지우기 위해선 14번의 행복한 기억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말이 맞든 틀리든, 불행한 기억을 애써 들춰보며 힘겹게 지우려 하는 것보다, ‘행복한 기억을 많이 만들어 뒤덮어 버리는 게 좋다’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고 있다. 딱딱하고 차가운 돌멩이 하나가 가슴에 박혀, 떼어내려 노력해도 잘 떨어지지 않는다면,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솜사탕으로 뒤덮어 버리면 된다. 어쩌면 일순간 녹아 없어져 버릴지도 모를 솜사탕이지만, 행복이라는 게 뭐 그런 거 아니겠는가? 사라지고 채우고를 반복하는 것……. 가슴 한 가운데 돌멩이가 박힌 텅 빈 마음의 공간이 있다면, 다시 그 솜사탕과도 같은 기억으로 꾸준히 채워나가면 될 일이다. 솜사탕과도 같은 달콤한 두 달간의 기억이, 내게 남겨준 것이 바로 그러했다.




삶은 참 서글프면서도 재미있는 것이다. 인생의 한중간에 와서 이토록 발자국을 짙게 남겨, 돌아볼 수 있을 만한 추억들을 많이 만들게 될지 어찌 알았겠는가?




2주간의 졸공 연습과 두 달간의 여정을 다시 떠올리니, 문득 떠오르는 시가 하나 있어 적는다.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반쯤 깨진 연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

나를 끝 닿는데 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위에

지금은 인정머리없는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 얹고

아랫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 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 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이 벌겋게 달아 오르기를

나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눈에 빨갛게 불을 켜고

구들장 속이 얼마나 침침하니 손을 뻗어 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하여 푸근한 잠 자는 처녀의 등허리를

밤새도록 슬금슬금 만져도 보고 싶은 것이다



두 달간의 나의 토요일 오후 3시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에너지가 넘치고 광염이 깃들어 있는 여름이며, 동시에 이윽고 떨어질 수밖에 없는 낙엽으로 뒤덮인 가을의 고장에서, 연탄재에게마저도 아주 조금은 떳떳할 수 있는 시간을 보냈다. 언젠가는 ‘우리 앞에 서서 말하고 있는 저 두분처럼 좀 더 활활 타오를 수 있겠지?’ 싶은 순간들이 가득했던 나날들이었다.




끝으로, 조금은 긴 글을 마무리 하려니, 내 안의 또다른 내가 자신에게 묻는다.




‘너는 너 자신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아직은 희미해지지 않은 우리의 발자국들을 떠올리다 보면, 오늘은 저 연탄재를 함부로 발로 차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는 함께한 이들과 연탄불 위에서 고기를 구우며 앞으로도 함께 더 뜨거워지자고 고백해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쨌거나, 난 열정은 없지만 말이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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