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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Nov 22. 2023

또 다른 하루를 알리는 태양도 다시 뜰 것이다.

8막

“그게 아니라니까! 원, 투, 쓰리, 포, 파이--브, 식ㅅ, 세븐, 에잇! 포에서 다리는 빨리 내려놔야지.”

수업에서 배웠지만, 동작은 쉽게 되지 않았고 나는 소셜 시간에 조용히 유유쌤에게 가서 아까 했던 동작을 다시 물어보았다. 반복되는 지도에도 제대로 하지 못하자, 점점 목소리가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그녀의 얼굴에는 마치 ‘이게 외,않,되?’ 같은 어리둥절한 표정과 더불어 열을 다해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욕망이 보였다.

잠깐의 당황스러움이 뻘게진 나의 얼굴에 스쳐 가는 듯했으나, 이내 마음을 고쳐 잡고 다시 집중해서 연습을 시작했다. 지난 시간에는 이츠 쌤으로부터 같은 반응을 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적응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아니, 사실 내 태도의 문제도 있었으니, 가벼운 질문-답변-그리고 방관-가벼운 연습 정도를 생각하고 갔던 문제가 컸다. 그렇기에는 그들의 열정은 내 예상을 앞지른 것이었고 더 열과 성의를 다해서 매운맛(?)으로 가르쳐 주려고 했다. 그게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으나, 이내 마음을 고쳐 잡고 ‘이건 필시 기회야!’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나라도 더 훔친다!’

할 수 있다면 이들로부터 하나라도 더 훔치고 싶었다. 동작 하나하나, 그리고 그 동작을 연결하는 부드러운 움직임 하나하나를 할 수 있다면 다 훔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스트레스 따윈 받지 않고 그저 가볍게 하고 싶다는 게으른 욕망이 꿈틀거리기도 했는데, 이 둘의 싸움이 날 우물쭈물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했다. 소셜 시간에 내가 이 두 분께 찾아갔을 때는 그 두 마음이 줄다리기를 하는 상태였고 매운맛 지도가 계속되면서 다행스럽게도 게을러지고 싶은 욕망이 가시고 제대로 해보고 싶은 욕망이 더 커졌다. 



각각의 스텝별로 천천히 동작을 따라 하고 그것을 이어 붙이고 나니 조금 느린 상태에서 쌤들과 비슷하게 동작을 할 수 있었다. 그제야 유유쌤은 웃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잘했어요! 그러면 그다음 동작을 이어볼까요?”

그다음 동작은 비교적 잘 이어갔다. 그러더니 쌤은 좀 우수한(?) 제자가 한 번에 해낸 걸 기특하게 여겨 더 욕심을 부리신다. 

“쌤…… 아직 이 동작이 잘 안 되어서 그런데, 계속 연습해보고 다시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마치 슈렉의 고양이 같은 눈망울(적어도 나는 그렇게 보이도록 노력했다고 믿는다)과 뚝딱이 같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요청했다. 

가볍게 물어본 마음을 고치고 나니, 말투도 군대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비교적 근래에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무언가 집중을 하거나 진지하게 접근하고자 할 때 나도 모르게 군대식 말투가 나온다는 점이었다. 주짓수를 할 때는 도장의 분위기 자체가 군대식의 존대를 하는 게 기본이었던지라 말투의 변화가 어색하기보다 편하고 자연스러웠다. 



“무릎은 좀 더 구부리고, 엉덩이는 조금 더 빼. 배를 지금처럼 내밀지 말고 밀어 넣고!”

“알겠습니다!”

그날 무당파 장문인인 잇츠 쌤이 직접 자세를 고쳐주면서 말했다. 잇츠 쌤의 움직임을 보고 있자면, 무당파가 떠올랐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태극권의 기원이 되는 도교 문파인데, 잇츠 쌤의 부드러움과 잘 어울리는 듯했다. 그런가 하면 유유쌤은 예전에 본 어느 무협 영화에서 나온 아미파 장문인과 닮은 것 같았다. (특히, 머리를 깎으신 이후로는 매번 오버랩이 되어 “씨부! 씨에씨에!”라고 해야 할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거울에 비친 어정쩡한 자세는 나에게 어떤 반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는데, 그중 하나는 멋져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뭔가 자세를 취하면 취할수록 이상해 보이는 자세처럼 느껴졌다. 

‘모든 쌤들이 이 자세가 중요하다고 한다. 신체의 안정성이나 다운 바운스를 고려하면 이 자세가 분명 합리적이다. 그러나 뭔가 어떤 어색함 등이 이 자세를 익숙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러한 까닭에 자연스럽게 상체가 들리게 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계속 이 자세를 무의식적으로도 유지할 수 있을까?’

수요 정기 모임 날, 거울 앞에서 어색한 자세를 다시 취하며 어떤 자세가 이츠 쌤과 비슷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자세를 계속 자연스럽게 유지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의도적이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이 자세가 나와야 했다. 그러려면 나의 신체가 이 자세의 부끄러움을 극복하고 쉽게 납득할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 했다. 



“스탠딩 상태에서 주짓수를 할 때, 눈앞의 상대를 방어하려면 티라노 자세를 취하는 게 좋아요. 상대의 태클에 방어하거나 바로 스프롤을 할 수 있도록 엉덩이는 약간 빼고 무릎은 살짝 구부린 상태여야 하고 두 손은 항상 가슴 앞쪽으로 두어 상대의 공격을 막거나 견제해야 합니다.” 

문득 나는 주짓수 관장님이 설명하셨던 그 자세가 떠올랐다. 이 자세는 상대의 공격에 적극적으로 방어하면서도 동시에 순간적으로 앞으로 나아가 공격도 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이 자세가 떠오르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손의 위치만 빼면 그 자세는 거의 잇츠 쌤이 말씀하신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즉 빠르게 스텝을 밟아야 하는 상황에서 효율적으로 움직인다는 측면에서 두 자세는 비슷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 셈이었다. 

이 생각에 이르자, 눈앞의 상대와 스탠딩 상태에서 주짓수를 한다는 마음으로 그 두 개가 비슷하다는 내 가설을 실험해 보았다. 주짓수에서 항상 해왔던 자세라고 생각하니 그 자세가 더 수월하게 나왔다. 물론 주짓수처럼 태클 공격 같은 건 없으니 깊게 수그릴 필요는 없었고 스윙 댄스에 맞게 적절하게 몸의 자세를 바꿔 나갔더니 움직임이 좀 더 편해진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스트레치가 되는 손 역시 너무 뻗지 말고 프레임을 잡으라던 쌤들의 말씀을 고려하여, 티라노 자세에서의 팔과 손의 위치처럼 어느 정도 프레임을 유지해보았다. 그랬더니, 상대에게 딸려가지 않으면서도 그 자세로 빠르게 스텝을 이동하면서 상대와의 간격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자세도 이후에 느낀 바로는 완전히 옳다고 여길 자세는 아니었다. 그러나 완전해지기 이전에 여러 자세를 고민해보고 반복해보는 일들은 여러모로 내게 어떤 자세가 내게 적합하고 효율적인지를 생각게 해주었다. 



‘어색함 또는 이질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특정 동작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무엇이냐라고 한다면, 바로 그 자세를 취하게 됨에 따라 느껴지는 어색함일 것이다. 특히 어정쩡한 자세를 거울로 볼 때마다, 감정적으로 부끄러움이나 심리적 위축감을 느껴, 그 동작을 올바로 취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나로서는 그 자세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까닭도 있겠지만, 심리적인 문제도 큰 요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문득 떠오른 주짓수의 동작과의 유사성과 비슷한 원리를 떠올리고 나니 심리적인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었다. 인지적 각성의 순간이었다. 



춤에서도 마음가짐이 중요했다. 그리고 그 마음가짐은 그 대상을 익숙한 것이라고 인식할 때, 자신감으로 다가왔다. 다양한 경험의 필요성 중 하나는 바로 과거의 경험이 미래의 불확실한 것들을 익숙한 것으로 투영할 수 있다는 데 있었다. 내게 주짓수와 댄스는 그 장르는 다르지만, 몸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움직이려는 고민과 노력으로부터 비롯된 동작들이 많았고 신체의 균형과 불균형, 나와 상대 간의 액션과 리액션 사이에서 조화를 찾으려는 데에서는 같은 장르였다. 나는 이렇듯 이따금 서로 다른 것들로부터 비슷한 연결고리를 찾아보려고 노력하곤 했다.



내가 좋아하는 책 중에는 더글러스 호프스테터와 에마뉴엘 상데의 ‘사고의 본질’이라는 책이 있었다. 그 책의 제목이자 주제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사고, 즉 생각하고 고찰하는 것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연구하며, 그것은 범주화와 추상화라고 언급한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둘, 범주화와 추상화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이름만 다를 뿐 같은 것이라고 말하며, 그러한 주장의 까닭을 긴 페이지에 걸쳐 풀어나간다. 범주화와 추상화가 같은 것인지 혹은 다른 것인지를 떠나서 이 책은 내게 큰 충격을 주었는데, 바로 의식적 때론 무의식적으로 행해지던 나의 사고과정에 대해서 면밀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는 점이었고, 더불어 나의 사고력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또는 처음 접해보는 대상에 대해서 어떻게 하면 좀 더 적극적이며 효율적으로 배울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대상을 추상화된 나의 사고에 유사하게 존재하는 범주에 집어넣고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친 뒤, 비슷한 시도와 개선을 해보는 것이었다. 이는 어떤 관점에서는 나의 두뇌에서 새로운 것들을 나만의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과 수정 및 개선을 하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이를테면,  주짓수와 스윙 댄스라는 구체적인 것들로부터 좀 더 추상화된 요소들 가운데 비슷한 범주에 속하는 것을 집어넣는 것도 그와 비슷했다. 그 속에는, 앞서 말한 것처럼 동작의 유사성, 액션과 리액션의 조화 등의 더욱 추상화된 부분 가운데 일정 부분 같은 범주에 속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고려하고 그 원리와 동작을 고려하는 것들을 의미했다. 이러한 범주화는 이따금 같은 범주인 줄 알았던 것이 실은 다른 것일 수 있는 오류가 존재할 수도 있지만, 그게 또한 장점일 수도 있었는데, 기준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차이점을 비교적 수월하고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러한 범주화 과정은 다르게 생각해보면, 삶에 대하여, 나아가 사는 동안 자신이 한 선택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최선을 다하려는 자세와 경험은 필시 다른 일을 할 때도 비슷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길게 말했지만, 운동하면서 배웠던 경험과 태도, 자세 등이 마찬가지로 춤을 배우는 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또한, 이 ‘행복한’ 그러나 동시에 ‘진지한’ 이 춤에 대한 경험과 태도 또한 삶 전반의 것들과 분명 상호작용하고 있었다. 



삶과 춤의 상호작용을 생각하니 떠오르는 게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최근 한 모임에서 원서로 읽고 있는 책이었던 ‘키다리 아저씨’ 였다.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대단히 큰 기쁨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에요. 작은 것에서부터 큰 기쁨을 끌어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요. 저는 행복이라는 것의 참된 비결을 알아냈어요 아저씨. 그것은 현재를 사는 것이에요. 지난 일에 대해 영원히 후회하거나 다가올 미래를 걱정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에서 되도록 많은 것을 얻어내는 거예요. 그건 마치 농업과 비슷해요. 농업은 조방 농업과 집약 농업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저는 앞으로 집약 농업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갈 생각이에요. 매 순간순간을 즐겁게 살아갈 것이고, 또 즐겁게 지내고 있는 동안에도 내가 즐겁게 살아갈 것이고, 또 즐겁게 지내고 있는 동안에도 내가 즐겁게 지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며 살아가기로 마음먹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고 있는 게 아니에요. 그저 앞만 보고 달리고 있지요. 오직 저 멀리 지평선에 있는 결승점에 도달하기 위해 안간힘으로 달리는 거예요. 그렇게 한참 달리다 보면 숨이 턱까지 차서 헐떡거리게 되고 그러면 아름답고 평화로운 전원 속을 지나오면서도 그 풍경을 놓치게 되고 말아요. 그러다 결승점에 이르러서야 깨닫게 되지요. 자신들이 늙고 지쳐버렸다는 것과, 결승점에 도달하든 하지 않든 그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에요. 결국엔 위대한 작가라는 결승점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저는 그 길가에 앉아 소소한 행복을 많이 쌓기로 했어요. 아저씨가 알고 계시는 분들 중에서 제가 되려고 하는 이렇게 훌륭한 여성 철학자가 또 있나요?   
아저씨의 영원한, 주디 올림. 


무언가를 성취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혼나면서 배우는 그 과정조차 즐겁게 받아들이는 까닭은 이뤄가는 과정 하나하나가 재미있기 때문이었다. 스윙 댄스에서도 마찬가지로 난 이 과정을 배운다. 완전함에 이르기 위한 과정 중에 벌어지는 소소한 일들이 추억으로 켜켜이 쌓여감을 실로 느낄 때, 내 주위에서 그런 풍경을 만들어준 이들에게 눈물 날 정도로 고마움을 느낀다. 그들로 인해 내가 즐겁게 지내고 있는 동안에도 즐겁게 지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으니까.




그로부터 수많은 날이 지나고 나는 다시금 다리가 이상이 있음을 깨달았다. 스윙아웃 이후에 오버로테이트를 하는 동작에서 무릎이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그 전부터 무릎이 점점 안 좋아서 재활을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정말 수술이 필요한 단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닐 거야. 평소처럼 재활을 좀 하고 좀 쉬면 괜찮아질…’ 라며 자신을 속이며 하던 것들이 점점 위협이 되고 있음을 직감했다. 

‘쉬면 나을 거야. 괜찮을 거야. 이 정도면 버틸 수 있어.’ 

나이를 먹으면 몸이 내 맘 같지 않다는 말은 나에게 해당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아직도 나는 건재하며, 그 누구보다도 잘할 수 있다는 오만… ‘나이 먹어서 그래.’라고 말로는 중얼거리면서도 그래도 실제로 하면 20대에 뒤지지 않는다는 어리석은 자만이 은연중에 독처럼 퍼져 있었다. 실제로 다리를 다치기 전까지 자신감이 넘쳤고 병원에 갈 일이 딱히 없었기 때문에, 그런 상황은 매일 운동하는 내게는 피해갈 것들이라고 생각한 게 분명했다.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 내가 뭐라고 나는 신체적 위협을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수원에 무릎 잘 보시는 의원님이 계세요. 저와 함께 가시죠.”

주짓수 관장님과 함께 찾아간 병원에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붐볐다. 벽에는 수많은 스포츠 스타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가득했다. 한참을 기다려 진료실에 들어갔다. 

“어디가 아프세요?”

“지난번 춤을 추는 데 무릎이 돌아가는 느낌이 들어서요.”

의사 선생님은 아픈 오른쪽 무릎을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툭 한마디를 던졌다.

“어? 십자인대가 끊어진 것 같은데?”

“네? 십자인대요?”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재차 선생님께 물었다. 

“네. 아무래도 십자인대 끊어진 것 같아요. MRI 말해놓을 테니까 올라가서 찍고 오세요.”

같은 빌딩 3층에서 영상 촬영을 하고 영상 의학과 선생님이 내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얼마 전부터 이랬다고요? 사진을 보면 오래된 것처럼 보이네요. 이건 한두 주 전에 생긴 문제는 아니에요. 십자인대가 끊어진 것도 꽤 오래된 것 같고요. 무릎 외측에 비해 내측 연골이 많이 닳아 있는 것도 보이시죠? 이것도 오랫동안 만성으로 쌓여서 된 거라고 볼 수 있어요. 무릎 위에 여기 보이죠? 물 찬 거예요. 전방 십자인대가 끊어질 정도면 많이 아팠을 텐데, 아프지 않았어요?”

불현듯 운동하면서 조금씩 부상을 입었던 게 생각이 났다. 그러나 그렇게 아프거나 하지는 않았고 늘 그렇듯 얼마 지나면 괜찮아지곤 했기에 나는 큰 문제는 없었다고 말했다. 생각보다 더 큰 일이라고 느껴지자, 당혹감과 한동안 춤과 운동을 못 할 거라는 생각에 따른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내 말이 맞죠? 이건 수술해야 돼요. 최대한 빨리 날짜를 잡읍시다.”

머뭇거리는 나를 보며 처음 내 무릎을 진찰하시던 의사 선생님께서 달력을 들었다.

“선생님 제가 지금 급하게 마쳐야 할 일도 있어서 그런데 조금 늦춰 주실 수 있을까요?”

졸업 공연을 일주일 남겨둔 상태였기에 팀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과 조금 더 춤을 추고 싶은 마음이 눈에 어른거렸다. 더불어 아직 가르치는 학생의 시험이 끝나지 않은 상태라 당장 수술을 해버리면 그 학생에게도 큰 실례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면 12일에 입원하는 거로 하고 13일 월요일에 수술합시다. 더 늦춰서 될 일은 아니에요.”

그 정도면, 졸공을 마치고 주변 정리를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제 일이 과외 등을 하는 건데, 혹시 수술하고 언제부터 움직일 수 있을까요?”

“일주일 정도면 그 정도 일은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다면 그날 수술 하겠습니다.”

이미 무릎이 돌아가는 것 같다고 느낀 그 때부터, 수술해야 할 것을 직감했기에, 수술 하기 전에 다른 곳도 둘러보라는 여러 사람의 조언을 잊고 결정을 내렸다. 문밖에는 관장님이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관장님께 내 상태와 수술 등을 결정했다고 말씀드리니 약간은 듯 바라보았다.

 



또 며칠이 지나, 어느덧 마지막 수업, 쌤들은 이번 안무가 졸공에 포함될 안무라고 하셨다. 한동작 한동작, 사소한 움직임조차 그냥 넘기지 않고 관찰과 반복을 수행했다. 특히 슈가 푸쉬 동작은 예전에도 잘 안되었고 그 감각을 익히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반드시 그 감각을 배우고 넘어가야 직성에 풀릴 것 같았다.

“스텝을 잘 밟아줘야만, 슈가 푸쉬 동작이 잘 나와. 애매하게 밟으면 슈가 푸쉬가 안돼.”

나의 스텝을 보며 잇츠 쌤이 말씀하셨다. 

“이런 감각이 맞을까? 누나 어때요?”

“응. 아직은 달달한 슈가라기보다 탕후루 같아.”

함께 연습한 파트너 누나의 유머러스한 대답에 진지해서 조금은 더 딱딱해진 내 동작이 부드러워졌다. 

‘10번으로 안 되면, 100번을 하고 100번이 안 되면 1,000번을 한다.’ 

쉬는 시간에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며 계속 연습했다. 전혀 힘들지 않았고, 누군가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기쁨이었다. 

“너무 무리하지마.”

내 다리는 내가 무리해서 이렇게 된 것일까? ‘거봐 무리하니까 이렇게 되잖아.’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분명 맞을 것이다. 그러나 내 기준에는 전혀 무리가 아니었다. 몸이 다친 것도 사실 운동을 하면서 ‘우두둑’했던 몇 번의 시기를 거쳐 가면서 그렇게 된 것이지, 지금의 과정으로 인해 된 것이라고 생각진 않는다. 물론 내 기준에서 말이다. 내 기준에서의 무리는 최소 8시간 무언가를 쉬지 않고 계속하는 것 정도인지라 조금 기준이 다를 수는 있겠다 싶었다. 물론 다시 말하지만 내 기준에서 말이다. 

‘혹시나 잘못된 자세로 동작을 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닐까?’

아프고 나서 조금 더 배운 점은 억지로 하는 동작이나 조금이라도 힘을 더 빼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평상시에는 이 정도쯤이면 하던 것들도, 조금 더 힘을 빼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접근을 해야만 몸이 괜찮았다. ‘이래서 아무리 그냥 할 수 있더라도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취해야 하구나.’ 분명 지금의 부상과 아픔에도 배울 점이 있었다. 



이츠 쌤의 동작들은 가장 효율적인 움직임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지금껏 거쳐 갔던 그 어떤 쌤들의 동작보다도 간결하고 가볍고 부드러웠다. “동작을 화려하게 하는 것보다도 그렇게 가볍게 추는 게 어려운 거예요.” 가까운 지인은 이렇게 설명하기도 했다. 자연스러운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듯한 움직임들은 음악과 물아일체가 된다는 것에 관한 생각과 더불어 하나의 무브와 그다음 무브의 연결성을 어떻게 고려해야 하는지를 좀 더 생각게 했는데, 이를테면 회전 동작이 있으면 그다음 동작을 좀 더 강한 회전으로 이어나갈지 혹은 회전력을 줄이는 동작으로 바꿔가면서 직선형 동작으로 바꿔 갈지를 고려하는 식이었다. 예를 들자면, 서클이나 오버 로테이트 같은 동작을 한 뒤에 바로 직선 동작을 하는 것보다 회전력을 낮출 수 있는 다른 회전 동작을 한 뒤에 부드럽게 직선 동작으로 이어가는 식으로 하는 움직임이었다. 이러한 연결성을 고려해야 한 동작 이후 다음 동작에서 상대와의 연결이 흐물흐물하지 않고 적당한 텐션을 가지게 될 터였다. 여러 좋은 패턴 이상으로 그러한 그 둘 사이에서 천천히 혹은 가볍게 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 효율적인 연결성을 몇 번이고 두 눈에 담아보고 연습해보려 노력했다. 

그뿐 아니라, 이번 중급에서는 두 쌤들의 또 다른 장기인 솔로 째즈를 맛본 것이 정말 큰 감동이었다. 물론 라인 댄스나 솔로 째즈 등을 아예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실상 춤은 둘이 춰야 재미있는 것만으로 알고 있던 내게 솔로 째즈는 음악을 들으면서 혼자 음악을 표현하고 춤을 추어도 이렇게 재미있고 멋질 수 있는지를 다시금 느끼게 했다. 물론 그 동작들 하나하나를 익히기는 쉽지 않았다. 마치 지터벅을 처음 접했던 그 순간에 느꼈던 그 신선한 감정과 또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쩔쩔매던 두려운 감정들이 섞여,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춤을 맞이하는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쌤들은 소셜 전까지 별도의 시간을 들여 졸공 안무로 쓸 동작들을 가르쳐 주셨다. 이미 한 번씩은 수업 때 배웠던 동작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동작을 암기해서 따라 하려니 쉽지 않았다. 나의 암기력이 좋지 않다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어릴 때는 이런 나 자신이 한심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나이를 먹고선 다행스럽게도 한가지 확신이 생겼다. 그것은 ‘비록 딸리는 암기력이라고 하더라도 계속 반복 연습으로 충분히 따라갈 수 있다.’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확신이 어릴 때도 가지고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부단한 연습만이 자신감을 형성하는 비결임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분명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쌤들의 연이은 지적에도 주눅들 필요가 없었다. 지금은 분명 안 되겠지만, 내일은 될 테니까. 충분히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최대한 다리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쌤들의 가벼운 동작을 떠올려가면서 몸을 움직였다. 한번 틀리면, 좀 더 천천히 하면서 그 동작을 여러 번 반복했다. 아쉬움 없이 하고 싶었다. 아쉬움, 없이 …



새벽까지 뒷풀이를 하고서 바에서 집까지 한 시간 정도 되는 거리를 걸어오는데, 머릿속에서는 계속 재즈 음악이 흘러나왔다. 음악벌레 한 마리가 귓전에서 이리저리 휘돌아 밖으로 나갈 줄 몰랐고 어쩔 수 없이 난, 그 음악벌레가 이끄는 대로 가로등을 음표삼아 흘러나오는 음악을 따라 길을 걸었다. 아파트에 이르러, 현관 앞에는 나무로 짠 플로어가 보였고 그 위로 가로등이 무대를 밝혀주고 있었다. 배웠던 솔로 째즈를 음악에 따라 움직여봤다. 생각나지 않는 부분은 흘러가는 음악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겨가며 공백을 채워나갔다. ‘여기서 내일 리아랑 연습해봐야지.’ 

며칠 전 우연히 만난 리아의 회사는 우리 집 1층에 있었다. 때마침 그녀 역시 졸업 공연을 하였으니, 점심때 밥을 먹고 잠깐씩 연습하면 참으로 좋을 것 같았다. 선선한 가을 날씨에 플로어 앞에 있는 나무 하나를 둘러싸고 있는 둥근 벤치에 앉아 머리통을 울리는 음악벌레가 잔잔해지기를 기다렸다.



그 다음주 월요일이 되고, 점심을 먹은 뒤 리아를 불러 안되던 부분을 맞춰나갔다. 

“항상 그렇듯 틀리는 부분이 계속 틀리더라. 하기 전에 오른쪽이라고 말해줘. 그러면, 나도 찰스턴이라고 말할게!”

서로가 계속 틀리는 부분이 달랐기에 우리는 몇 가지 규칙을 정했다. 상대가 주로 틀리는 부분에 들어가기에 앞서 미리 생각하고 있다가 서로 말해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생각보다 효과가 있어서 금세 틀리던 것들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두 번째 규칙은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하는 전략이었다. 이 역시 하나의 흐름을 전부 다 암기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우리가 춤을 추던 그 공간은 우리 말고도 담배를 피우러 나온다든지, 또는 낙엽을 치우시며 공공 근로를 하시는 어르신들이 있었다. 그중에 몇몇 분들은 우리의 동작을 관심을 두고 보시기도 하였다.

리아의 도움으로 연습 첫날에 솔로 째즈 부분을 완벽히 암기할 수 있었다. 전날에는 계속 암기가 안 되어 실수하던 부분들이 없어지자, 조금 더 자신감이 생겼다. 연습실에서는 뒷부분에 대한 동작을 반복적으로 암기했다. 여러 팔뤄들의 도움으로 쉬는 타임 없이 계속 연습을 할 수 있었고 그 덕에 틀리는 부분을 점점 줄여갈 수 있었다.

 


나의 행복을 감싸고 있는 것들은 필시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게 아님을 실로 느끼고 있었다. 내가 행복하다고 하는 순간에는 행복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을 함께해준 누군가가 분명 존재했다. 나는 그들에게 도와달라고 말했고 그들은 기꺼이 나를 도와주었다. 나는 함께하자고 말했고 그들은 기꺼이 나와 함께 했다. 



‘그것은 현재를 사는 것이에요. 지난 일에 대해 영원히 후회하거나 다가올 미래를 걱정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에서 되도록 많은 것을 얻어내는 거예요.’



현재를 살되, 바로 지금, 이 순간에서 되도록 많은 것을 얻기 위하여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고 함께하자고 약간의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 이는 실로 나 혼자서는 못 느꼈을 행복이었다. 지나간 날들을 생각해보면, 물론 어떤 일들은 혼자서 이뤄낸 것들도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하기보다 홀로 묵묵히, 그러나 꾸준히 하면서 성취를 맛봤던 것들도 존재했다. 그러나 그렇게 할수록 성취감 외적으로 어떤 외로움이 밀려왔다. 함께 하고픈 마음, 그 마음이 없이 오로지 혼자서 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어떤 기쁨의 감정이,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열의를 가지고 하게 될 때, 내 마음속으로 들어와 서서히 공허를 밀어냈다.

  


‘그렇게 한참 달리다 보면 숨이 턱까지 차서 헐떡거리게 되고 그러면 아름답고 평화로운 전원 속을 지나오면서도 그 풍경을 놓치게 되고 말아요. 그러다 결승점에 이르러서야 깨닫게 되지요. 자신들이 늙고 지쳐버렸다는 것과 결승점에 도달하든 하지 않든 그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에요. 결국엔 위대한 작가라는 결승점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저는 그 길가에 앉아 소소한 행복을 많이 쌓기로 했어요.’ 



소소한 행복이 존재했다. 바로 이곳에. 오로지 나의 열정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즐거운 감정이 그 누군가와 함께 나눌 때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이 졸업 공연의 첫 번째 가치를 무엇으로 두면 좋을까?’ 어쩌면 그것은 ‘함께’라는 의미를 두고 있느냐가 아닐까 싶었다. 모두가 ‘함께’ 공연을 만들어 간다는 생각, ‘함께’ 즐겁게 춤을 추면서 작게는 공연팀 안에서의 소속감, 넓게는 이 동호회나 스윙 댄스 씬 전반에 소속감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기쁨을 주는 것이 바로 첫 번째 가치가 되어야지 않을까? 함께 만들어 간다는 생각이 깨지거나, 그로 인해 공동체에 대한 애정이나 소속감이 줄어든다면 그러한 공연은 아무리 잘한다고 한들 그만큼 기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저 ‘한참 달리다 보면 숨이 턱까지 차서 헐떡거리게 되고 그러면 아름답고 평화로운 전원 속을 지나오면서도 그 풍경을 놓치게 되는... ’ 바로 그런 꼴에 지나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이들과 함께하며, 결승점에 멋지게 다다르기 위해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열정도, 그리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전원이 보일 때에는 그 풍경을 놓치지 않고 함께 즐길 수 있는 바로 그러한 행복도 느끼고 있었다. 



공연을 마무리하고 조금은 삐걱거리는 무릎을 보았다. 의사 선생님 말로는 인대가 끊어진 지는 오래되었다던데, 그래도 약 1년 하고도 2~3개월간 그래도 잘 버텨준 무릎이었다. 

‘한동안은 쓰지 못하겠지. 춤도 못 출 거야. 그런 건 내일 생각하겠어. 어떻게든 되겠지. 수술하는 건 잘하는 일이야. 당장은 춤을 못 춘다고 하더라도 끈을 놓지만 않으면 뭔가는 얻을 수 있겠지. 차라리 이렇게 된거 진짜 DJ를 시도해볼까? ……………. 다만, 오늘은 그런 생각 말고 그저 오늘에만 충실해지자.’



삶은 계속될 테고 또 다른 하루를 알리는 태양도 다시 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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