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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보뽈로니오 Nov 14. 2017

귀찮을 것 없는 남자

열 번째 이야기. 부에노스 아이레스(Buenos Aires)

용우는 엔간해선 내가 귀찮다고 여기는 것들을 귀찮아하지 않는다. 용우가 끈질긴 것일까 내가 참을성이 없는 것일까. 둘 다 맞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보통 복잡한 온라인상의 절차나 서류처리에 관한 일 아니면 요리, 또는 한참-용우는 한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경우가 많지만-기다려서 얻어내야 하는 어떤 것들이다.  

     

우리는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이곳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길게 체류하기로 결정했다. 직접적인 이유는 용우가 본 적 없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퍼포먼스 공연 ‘푸에르싸 부르타’가 다시 시작되는 날까지 기다리고 싶어서였고 다른 이유는 문화예술이 풍부하고 미적 아름다움마저 갖춘 이 도시를 조금이라도 더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짧지 않은 2주 정도의 시간이 우리에게 있었다.      


우리는 우리 여행에서 숙박 형태의 95% 이상을 차지해 온 호스텔 생활을 잠시 접는 데에 동의했다. 호스텔은 다른 여행자를 만나고 그들과 관계를 맺기에 정말 좋은 곳이었지만 이 도시에서 만큼은 우리만의 공간에서 동거라는 걸 해 보고 싶었다. 함께 같이 살며 생활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에어비앤비를 함께 처음으로 이용하기로 했다. 에어비앤비라.. 첫 사용에 나를 좌절에 빠지게 한 시스템이 아니었던가. 혼자 세계일주를 할 당시 한 번 에어비앤비를 사용할 일이 있었다. 혼자만의 공간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나는 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도미토리 최대 다인실을 숙소로 골랐지만 부득이하게 칠레의 록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그 앞에 있는 1인실 방을 잡아야 했던 것이다. 컴퓨터와 친하지 않은 나는 회원가입-로그인 이상의 절차가 끼게 되면 참을 수 없는 거부감을 느꼈고 에어비앤비는 그런 내게 너무나 긴 과정이 소요되는 짜증스러운 일이었다. 그때도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수차례 호스트들의 승인 번복으로 답답해했던 기억이 난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는 며칠간 시간을 낭비해가며 호스텔에 틀어박혀 우리가 원하는 에어비앤비 숙소를 얻기 위해 설레고 좌절되는 상황들을 인내해야 했다. 원하는 가격대의 좋은 숙소들을 더 저렴한 가격에 얻고 싶었던 우리는 일일이 메시지를 보내며 별도 할인에 대한 호의를 부탁해야 했다. 우리가 제시한 기간에 집 사용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반, 처음엔 승낙했다가 다시 취소를 하는, 마음을 힘들게 했던 사람들도 거의 반 가까이 되었다. 나는 그 과정에서 인내하지 않았다. 이렇게 과정이 힘들 바에야 그냥 호스텔에서 남은 2주를 보내자고 용우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온갖 깨끗하고 좋은 에어비앤비 집들의 이미지는 이미 내 머릿속에서 짜증스러운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과 맞바꿔 사라졌다. 더 이상 이 작업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그동안 해왔던 수고들이 이미 내 머리를 아프게 한다며 혼자 머리를 싸맨 채 도미토리의 침대에 들어가 누워버렸다. 그래 봤자 용우가 보여주는 집의 사진들을 옆에서 보며 너무 좋다고 호들갑 떨었던 것밖에 없으면서.      

수많은 거절(Declined) 중 가장 어이없었던 경우. 우리에게 방이 있다고 말해놓고는 갑자기 사실은 방이 없었단다. 

용우는 감사하고도 이상한 집념으로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용우의 계속된 ‘디깅’은(이 글을 쓰며 에어비앤비 어플에 들어가서 세어보니 용우는 당시 무려 36명의 호스트한테 메시지를 보냈다) 아름다운 결말을 맺었다. 방에 있던 나에게 용우는 우리가 좋은 가격에 빨레르모 지역(운치 있는 가로수길에 책방과 고급 아파트가 많이 자리 잡은 지역)에 살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그렇게 (용우가) 포기하지 않고 구해낸 집은 나중에 둘이 처음으로 같이 살면 좋을 것 같은 그런 집으로 아담하지만 고급스러운 아파트였다. 무엇보다 푹신하고 가벼운, 그리고 새 것 같은 침구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이런 청결한 침구는 호스텔 생활에선 쉽게 접할 수 없는 것들 중 하나다. 함께 살면서 우리의 가사 일은 저절로 분담이 됐다. 하루의 영수증을 정리하고 바닥에 있는 머리카락, 널려진 옷가지 들을 청소한 건 나였고 용우는 요리를 도맡았다. 물론 장을 보는 것과 오늘 할 것을 정하는 건 함께였다. 용우가 매일 구워주었던 스테이크가 그렇게 맛있었는지 우리는 그 맛을 잊지 못하고 그때를 생각하면서 용우가 구운 스테이크를 종종 함께 먹는다.      


늘 나를 대신해 귀찮음을 감수하는 용우 덕분에 그동안 못했을지도 모를 경험을 함께 더 많이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용우는 나와 같이 살아서 좋은 게 무엇이었을까.

이 아담한 방이 그렇게 좋았다. 운치있는 동네가 한 몫 했다.


용우의 담당은 요리.
그리고 내 담당은 회계, 일정 픽서 등. 요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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