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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ningHa Apr 27. 2019

당신 우울증이야?  무작정 나와 걷기 시작했다

ep03. 걸어서 만난 나만의 케렌시아


당신 우울증이야?라는 남편의 말에 “내가 의사냐?”라고 받아쳤다.


우울증이면 뭐 어떻게 하라고? 다시 쏘아 말할까 하다 실랑이하고 싶지 않아 내가 의사냐며 면박을 주고 소파에 앉았다. 그랬다. 나에게 필요한 건 말 한마디 공감과 위로였다. 그런데 자꾸만 말 한마디 때문에 하루 종일 참았던 ‘울컥’이 폭발하고 만다. 특히 한 주에서 가장 즐거운 금요일에, 그렇게 기다리던 금요일이 되면, 그 ‘울컥’이 폭발해서 기다렸던 금요일을 망치고 엉망이 된 기분으로 잠이 들거나 TV를 보다가 소파에서 자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기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퇴근하는 남편이 카톡에 ‘아빠 이제 고고! 엄마는 이제 육퇴!’라며 기분 좋게 말을 건넸다. 금요일 아침이면 ‘그래, 조금만 힘내자’며 남편의 퇴근을 기다리는 나는 남편의 카톡에 더욱 신이 났다. 기다리고 기다린 남편의 퇴근, 기다리고 기다린 육아 퇴근. 이제 좀 쉬어야지 했는데 남편은 아이를 간신히 재우고 (사실 아이가 부쩍 나만 찾아서 실제적으로 재운 사람은 나였다) 잠시만 쉬다가 치울게 하며 티비 앞에 누웠다. 난 예감했다. 저러다 잠들겠지라고. 역시나 그는 잠들었다. 얼마나 그도 회사에서 일을 마치고 피곤했을까,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딸이지만 잠투정하느라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얼마나 피곤했을까라고 이해를 하려고 했지만. 이미 나는 임계치를 넘어선 상황이었다. 누구를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아니 내가 이해와 공감을 바라는 상황에서 남편이 피곤함을 표출하게 되면 나는 그 ‘울컥’이 폭발하고 말았다.


어느 날, ‘나도 힘들어’라고 남편이 소리치듯 나에게 이야기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는데, 그 웃음소리가 나도 모르는 소리였다. 어이없는 웃음, 겨우 그거 하고 힘들냐며 비웃는 웃음, 하루 종일 참고 참았던 그 ‘울컥’이 묻어나는 웃음소리. 허공을 가누는 그 웃음소리에 나도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졌다. 나도 모르게 웃음도 나고, 나도 모르게 울음도 나는 상황. 나는 스스로 제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원래 그런다 했다. 아이 낳으면 그렇게 싸우게 된다 했다. 역시나 그랬다. 싸운다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난 그 ‘울컥’이 제어되지 않았고, 그 ‘울컥’에 눈이 퉁퉁 불도록 울게 되었다. 객관적으로 난 우울증인가? 스스로 되물었다. 나름 심리학 석사까지 전공했는데, 내 마음 내가 모를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객관적으로 나를 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원래 아이 낳고, 아니 낳기 전에도 호르몬의 영향으로 그런다 했다. 눈물이 그리 나고 우울해진다고, 산후 우울증이 생긴다고. 전문적 진단을 받은 상황은 아니었으나, 비끄무리한 것 같다. (비끄무리라고 표현하는 나는 여전히 객관적으로 나를 보고 있지 않는 것 같다)


당신 상담받아볼래?

그 '울컥'이 튀어나온 어느 밤, 남편이 나에게 이야기했다. 어이없는 나는 ‘아니, 당신이 말 한마디만 잘해주면 되는데! 그걸 모르냐?’라며 다시 면박을 주었다. 걱정되어서 나에게 하는 말이라 했지만 나를 전혀 공감하지 않고, 아니 이해하려 했다면 말 한마디 더 따듯하게 해주지 못하는 남편의 말에 기분이 다시 상했다. 또한 어떤 상황에서그는 농담으로 던진 말인데, 나는 전혀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그 '울컥'이 토하듯 나오는데, 잠든 남편을 차마 깨우지 못하던 금요일 밤

멍하게 TV를 바라보다 소파에서 잠들었다. 일어나니 새벽 3시즘이었나, 침대로 가서 잠든 남편을 보니 기분이 상해 안방 문을 소심하게 쿵 닫아 버리고 난 소파에 다시 누웠다. 그렇게 잠을 잠깐 청하는데 마침 자다 깬 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 방에 들어가 아이를 달래며 결국 분유까지 먹이고 재우고 나니 새벽 5시가 넘었을까, 창문 밖은 벌써 동을 틀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금요일 밤은 충분히 휴식하면서 침대에서 다리 쭈욱 펴고 자야지 상상했는데, 남편의 한 마디에 울컥한 나의 금요일 밤은 엉망으로 사라졌구나란 생각이 다시 들었다. 잠이라도 소파에서 더 자야지하며 발을 쭈욱 피는 순간, 아이가 새벽에 깨어 결국 난 잠도 제대로 못 잤어라는 생각이 들면서 울음이 터졌다. 뭉크의 밤이 떠올랐다. 혼자 흐느끼며 동트는 창밖을 바라보니 정말 서러웠다. 너무나 내가 한심하고, 너무나 모든 게 원망스러웠다. 눈물 콧물을 옷으로 겨우 닦고 거실에 나와 창문을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볼에 닿았다. 그리고 새소리가 들렸다. 잠시 듣고 있는데 마음이 편안해졌다.


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무작정 나와 아파트 단지를 걷기 시작했다. 속도를 좀 더 내어 걸었다. 시원한 바람이 더욱 나의 볼에 밀착하며 잠을 깨어냈다. 청량한 바람에 라일락 꽃 향기가 함께 코로 들어왔다. '아... 살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숨을 내뱉었다. 그렇게 걸어서 새로 만들었다는 공원으로 발길을 향했다. 새벽에만 느낄 수 있는 공기 냄새 그리고 살짝 젖은 토양에서 나는 촉촉한 흙냄새를 맡으며 계단을 올라 숲길을 지났는데

'우와.......... 유레카...!!' 나는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그 곳은 더욱더 많은 새들이 노래를 불렀고, 바람에 일랑이는 봄의 새싹들은 이슬을 머금고, 청초하게 피어있는 꽃은 새벽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발걸음이 빨라졌다. 뛰듯이 걸으면서 나는 '우와 너무 좋다, 우와 너무 좋다'를 연달아 외치며 아무도 없는 그 숲 속, 나를 기다리는 듯한 테이블과 의자 사이를 뱅그르르 돌면서 아이처럼 기뻐했다. 누가 들어도, 보아도 상관없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 그 '울컥'이 녹아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살 것 같았다.

무작적 걷기 시작한 발걸음에 나만의 휴식 공간,
나의 지친 몸과 마음을 쉬어갈 수 있는 공간, 케렌시아를 발견했다.


@걸어서 만난 나만의 케렌시아, 걷지 않았다면 마주치지 못했을 그 공간


다음 날 아침, 나는 다시 나만의 케렌시아로 향했다. 좀 더 따듯하게 입고, 텀블러에 우롱차를 우려내어 작은 찻잔을 챙기고, 따듯하게 앉아 있을 수 있게 방석까지 챙겨 떠났다. 나만의 잠시 여행이었다. 아이가 행여 깨면 남편이 케어할 수 있는 주말, 안심하고 떠나는 나만의 케렌시아로 향하는 여행.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얼굴에 홍조가 돌면서, 막혀있던 나의 어떤 응어리가 풀리는 그 기분을 느끼며 난 걷고 또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도착한 케렌시아, 전 날 눈여겨 두었던 테이블 의자에 방석을 놓고 앉았다. 작은 찻잔에 차의 온기를 더해 입술 인중에 가만히 대어 보았다. 따듯하고 향기로웠다. 한 모금 꿀꺽 마시니, 온몸에 따듯함이 채어지는 듯했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고 새들의 노래를 들었다.


@조용히 눈을 감고 테이블에 앉아 고요하게 나를 바라 보았다


그랬다. 가끔은 나 혼자의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를 낳기 전에도 그랬다. 회사에서 사람들과 이런저런 일들로 볶아대고, 사랑하는 남편이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로 볶아대고 나면 나만의 시간을 꼭 필요했다. 조용히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 고요하게 잠시 쉴 수 있는 시간이 말이다. 아이를 낳고 그런 나 혼자의 시간이 없었다. 그럴 틈도 없었지만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하는 것이 이기적인 엄마인 것 같아서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깨달았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혼자 쉴 수 있는 케렌시아, 고요하게 잠시 나를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잠시 아이의 웃음과 울음소리에서, 남편과의 투닥투닥 소리에서, 친정엄마의 걱정에서 나오지만 나에겐 잔소리처럼 들리는 소리에서 난 잠시 자유가 필요했다.


그 날 아침 걸었기에 가능했다. 퉁퉁 부은 얼굴로 그냥 누웠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비로소 걸을 때 고인 부정적인 생각들이 떨어져 나갔다. 지나치던 자극들이 새롭게 다가오고, 지나치던 공간에서 나만의 케린시아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난 내일도 걸을 것이다. 평일에는 아이를 두고 나갈 수 없지만, 주말이기에 마음 편하게 밖으로 나가 기꺼이 걸을 것이다. 그 시간을 보내기 위해 조금 일찍 일어나야 하지만 잠을 양보하고 걸을 것이다. 걸으면서 내 마음의 근육과 내 신체의 근육이 단단해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난, 기대하고 기대하던 금요일 밤 어김없이 그 '울컥'이 찾아왔다. 역시 어김없이 피곤한 남편은 '있다 할게'라며 티비 앞에서 잠들었다. 그러나 난 '울컥'하는 대신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잠시 걷고 들어왔다. 비 온 뒤 밤하늘은 깨끗하고, 어둡지만 반짝이는 하늘 위 구름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숨을 크게 들어마시고 들어와, 맥주를 마시며 이 글을 끄적이고 있는데 벌써 새벽이다. 졸린 눈을 비비며 잠시 후 아침, 나만의 케렌시아로 잠시의 여행을 떠날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내가 잠시 떠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에 안심이 드는 새벽이다.



아마 난 지금 산후 우울증일지도 모르겠다. 그 비슷한 어떤 단계일 수도. 몸이 힘들 때 몸살이나 감기가 걸리는 것처럼 마음도 감기가 걸릴 수 있다는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이제 더욱 걷기를 통해 아이 낳고 떨어진 몸과 마음의 체력을 키우고 마음의 감기에 덜 걸릴 수 있도록 해야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잃지 말아야겠다. 나를 잃지 말아야 나와 나의 가족들이 행복해질 수 있기에, 난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무작정 걷고 또 걸을 것이다.


@나에게 말을 거는 듯한 새소리, 청량한 바람, 따듯한 차 한잔의 목 넘김 그 순간을 나누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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