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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랑 Aug 15. 2019

거리미술과 자본

영화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 리뷰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2002)에 따르면 문화적 생산물, 즉 예술 작품들은 필연적으로 경제적(상업적)이거나 혹은 그(자본과 시장)로부터 독립된 양 극단 사이에 있게 된다. 예술 작품은 기획의 단계에서부터 경제적 논리를 따르는 상업 예술일 것인지 그렇지 않을 것인지, 작품의 성격과 사회적 위치에 대한 고민의 과정을 거치게 되고, 궁극에는 상업성과 순수성 사이의 어딘가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 관점을 따르자면, 거리미술(street art)은 여러 면에서 상업적인 것의 반대, 즉 순수성의 극단에 더 가까운 장르라 할 수 있다.


우선 창작 행위나 그 결과물의 감상이 개방된 공간, ‘거리’에서 이뤄진다는 점이 이유가 된다. 소수에 의한 점유나 소유를 전제하지 않은 창작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 (억지로) 작품을 매매하려 할 때 현실적 문제들이 뒤따른다. 작품이 대개 오래지 않아 사라(지워)지기 십상이며, 설령 온전히 남아 있는 경우라도 배경(벽)에서 떼 내어 거래가 가능한 작품의 형태로 만들기가 쉽지 않다. 더 근본적으로는 작품 소유에 관한 권리를 따지는 것부터, 또 판매에 대한 작가의 동의를 얻는 것부터 불가능에 가깝다. (경매 시장에 나타나는 거리미술작품의 대다수는 판매에 대한 작가 동의를 얻지 않은 것들이다) 게다가 거리미술은 종종 상업 미술계와 같은 주류와 기성 문화에 저항의 자세를 취하거나, 작가 개인의 정체성 표출을 중시한다는 면에서 상업성보다 순수성에 가깝다. 물론 작품과 작가 본인의 상업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저항의 제스처'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겠으나, 그 진위를 가리고 단정하기 어렵기에 논외로 둘 수밖에 없다.(뱅크시에 대한 일부 비판도 이와 같은 시각에 기인한다)



비디오 카메라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촬영하는 티에리 구에타(Thierry Guetta)


그런데, 영화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Exit through the Gift Shop, 2010)>에는 이런 거리미술과 자본의 일반적 관계를 뛰어넘은 흥미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미스터 브레인워시(Mr. Brainwash, MBW)로 알려진 티에리 구에타(Thierry Guetta, 1966~)이다.


티에리는 80년대 초반에 미국 LA로 건너온 프랑스인이다. 구제 옷가게를 운영하던 그에겐 한 가지 독특한 구석이 있었다. 언제나 비디오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며 무엇이든 촬영하는데 집착했던 것. 그는 1999년에 고향을 방문하는데, 그곳에서 만난 사촌 스페이스 인베이더(Space Invader)의 거리미술 활동에 흥미를 느낀다. 티에리는 사촌의 작업을 돕고, 촬영하며 이른바 지하세계의 거장들과 교분을 쌓는다. 거리미술가들은 맹목적으로 자신을 쫓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촬영하는 티에리의 존재를 수상하게 느끼면서도, 그의 카메라가 곧 사라질 작업을 기록으로 남겨준다는 점을 의식해 그를 받아들인다. 모든 일상을 촬영해 기록하려는 티에리의 병적 집착이 외려 그가 지하세계의 일원이 되는데 기여한 셈이다.


2006년, 티에리는 애타게 원하던 은둔형 거리미술가 뱅크시(Banksy)를 만난다. 거리미술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는 명분까지 갖추고 수많은 거리미술가들을 쫓아다니던 와중이었다. LA에서의 뱅크시의 작업을 도우며 친분을 쌓은 그는, 뱅크시의 조언을 듣고 본격적으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다. 사실 뱅크시는 당시 불어닥친 거리미술 수집 열풍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영화로 풀어내길 권유했던 것이었다.(정작 그 열풍의 형성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 뱅크시 본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구석에 쌓아두기만 했던 엄청난 양의 촬영 테이프를 무작위로 골라내 티에리가 만든 영화 <인생 리모컨(Life Remote Control)>은 영화로 보기 어려울 정도의 난잡한 영상 클립의 조합이었다. 이에 대한 뱅크시의 평가는 "잠시도 집중할 수 없는 사람이 900개의 케이블 채널을 돌리는 것 같다"는 것. 뱅크시는 티에리의 촬영 테이프를 가지고 직접 영화를 제작하기로 마음먹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영화,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인 것이다.


티에리 구에타가 만든 영화 <Life Remote Control>의 한 장면


뱅크시는 티에리의 프로젝트를 빼앗은 미안함에 그에게 "작품도 좀 만들고 전시도 작게 열어"볼 것을 권유하는데, 여기서 본격적으로 ‘문제’가 시작된다. 용기를 얻은 티에리는 대개의 미술가들이 겪는 성장의 과정, 즉 창작 경험의 오랜 누적을 통해 스스로의 작품세계를 점진적으로 구축해 나가는 과정을 생략한 채, 유명 거리미술가들의 외형적 조건을 따라 하기 시작한다. 그럴듯한 작가명을 짓고(미스터 브레인워시, Mr. Brainwash), 작품의 대량 생산을 위한 설비와 인력을 갖춘 다음, 곧장 할리우드의 한 복판에 엄청난 규모의 전시를 열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사실 이 역시 대부분 뱅크시를 따라한 것이라는 점에서 미스터 브레인워시의 탄생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한 인물이 뱅크시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려워진다)


전시를 위해 티에리는 그간 어깨너머로 익힌 여러 거리미술가들의 기법과 스타일, 그리고 책에서 본 팝아트 작품을 복제하다시피 뒤섞어 작품을 만들 것을, 그가 고용한 일용직 제작자들에게 '주문'한다. 전시 개막이 다가올수록 그의 부족한 능력과 안목이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명했다. 불협화음을 접한 동료 거리미술가들이 보다 못해 티에리 대신 작품 제작과 전시 구성을 이끈다. 티에리는 이 와중에도 언론 인터뷰를 비롯한 전시 홍보에 더 관심을 쏟는데, 이는 그의 비범함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장면이기도 하다.


나름의 예술관이나 작업세계, 스타일, 심지어 기본적 작품 제작 능력마저 제대로 갖추지 못한 MBW의 데뷔 전시는 역설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다. 데뷔 전시로서는 유래 없는 스케일, 그리고 유명 예술가 동료를 이용한 홍보로 인해 개막 전부터 여론의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MBW의 데뷔 전시를 보러 모여든 사람들


영화의 내용은 적지 않은 성실한 예술가들과 관객들에게 충격을 줄 법하다. 구제 옷을 팔던 아마추어 비디오 촬영가 티에리 구에타가 스타 거리미술가 미스터 브레인워시로 변신하는 모습을 통해, 예술가의 성공이 그 예술적 성취의 정도와 큰 관련성이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 제작과 전시 구성에 직접 도움을 준 동료 예술가들의 기여를 감안하더라도, 티에리의 성공은 스스로의 예술적 능력과 성취에 기인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어딘가 불편한 지점이 있다.


그러나 사실 더 큰 불편함을 느껴야 할 대상은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 바로 상업 미술계(혹은 시장)가 그 주인공이다. 예술작품 자체보다 그것을 둘러싼 외부 요인들에 주목하고, 그에 기반해 가치 평가가 이루어지는 상업 미술시장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MBW의 혜성과 같은 등장도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쯤 해 다시 부르디외를 빌리자면, 그는 새로운 예술가와 예술의 등장에는 기존에 공고히 위치를 확보한 어떤 체계(갤러리와 경매회사, 비평가, 시장 등)가 큰 영향을 준다고 보았다. 상업적 예술은 그러한 예술만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체계를 통해 더욱 쉽게 지위를 획득한다는 것이며, 반대로 비상업적 예술은 그 작품들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시스템을 거치게 된다는 것이다. 부르디외는 이러한 체계를 ‘상동과 기설정된 조화 효과(Homologies and the effect of pre-established harmony)’라고 설명했는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예술가가 자기 작업의 성격에 적합한 어떤 '체계'나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일 테다.


이를 참고하면, 티에리의 성공은 '상동과 기설정된 조화 효과' 체계를 간단히 전복시켰기 때문일지 모른다. 비상업적 예술(거리미술)의 상업적 체계로의 전환 가능성을 빠르게 깨닫고 실행에 옮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거리미술의 문법을 차용함으로써 저항적인(예술적인) 이미지를 스스로에게 입혔고, 해당 영역에서 명성이 높은 자신의 인맥을 홍보에 활용해 그 권위에 기댐으로써 이중으로 '객관적' 예술성을 보장받았다. 한편으로는, 대개의 거리미술가들이 상업 미술계로의 무분별한 편입을 거부하거나 그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유지하는 것과 다르게 티에리는 상업 미술시장을 곧장 목표로 삼았다. 첫 전시임에도 문화예술 산업의 중심지인 할리우드에 거대 규모의 전시장을 꾸미고, 대중적으로 친숙한 팝아트의 기법과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현대 미술시장에서 익숙하게 기대(요구)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냄으로써 상업성을 담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설정들은 예술성(순수성)과 상업성 양쪽을 모두 획득하는 이상적인 결과를 이끌어 냈다.


물론 티에리가 이런 시도의 선구자는 아니다. MBW 데뷔 쇼 이전에 뱅크시의 미국 전시 역시 같은 속성을 가진다.(물론 비평적 태도를 얼마나 가졌는가의 문제에서 차이가 있겠으나,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그러나 티에리는 전무한 예술 창작 경험에도 불구하고 그 가능성을 빠르게 포착하고 도전해 나름의 결과를 성취했다는 점이 남다르다. 이러한 관점으로 보자면, 뱅크시의 추측처럼 티에리가 천재인지는 알 수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그 행동은 꽤 영리했던 것이었다 평할 수 있다.




영화는 비단 이 재미난 예술가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거리미술과 주류 상업 미술계가 어색하게 관계를 맺고 있는 최근의 모습도 비판적 시선으로 조망한다. 주류에 대한 저항을 표방하는 거리미술이 ‘거리’를 벗어나 미술관이나 수집가의 사적 공간으로 옮겨가는 현실을 거리미술가들의 목소리를 빌려 꼬집는다. 실제로 영화 속 경매 장면에서 뱅크시의 설치 작품은 55만 달러에 낙찰된다. 체제의 전복을 꿈꾸는 예술마저 돈으로 집어삼키는 자본주의의 힘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영화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의 거리미술 이야기는 현대 사회에서 예술이 어떻게 자본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냉소적으로, 동시에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이면, 관객들의 머릿속은 복잡해 질 것이다. 영화 속 거리미술가들의 한탄처럼 예술은 누가 치는지 알 수 없는 장난인 것인가. 아니라면 예술은 과연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품으며 불현듯 '예술은 사기'라 일갈했던 옛 거장의 외침이 떠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덧붙임

*미스터 브레인워시는 화려한 등장 이후 마돈나(Celebration, 2009)와 마이클 잭슨(Xscape, 2014)의 앨범 표지를 디자인하고 코카콜라와 협업하는 등 상업적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지난 2016년에는 서울 아라아트센터(아라모던아트뮤지엄)에서 개인전 <라이프 이즈 뷰티풀>을 가져 국내 관객에게 소개되기도 했다.

*한국어 자막을 입힌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 전체 영상을 비메오에서 확인할 수 있어 아래에 링크를 공유한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또 다른 다큐멘터리로 <뱅크시를 구하라(Saving Banksy, 2017)가 있다. 이 영화에서는 뱅크시의 작품이 논란의 주인공으로 전면에 등장한다. 그의 작업을 떼어 내 판매하거나 소장하려는 인물들과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거리미술가, 법제도와 세간의 평가라는 굴레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국공립 미술관 관계자 등 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주체의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어 흥미롭다. 얼마 전까지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었으나 현재는 불가능하다. 대신 유튜브에 자막이 없는 전체 영상이 있다.

*이 글은 2013년에 썼던 것을 고쳐 쓴 것이다.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2010)

https://vimeo.com/276714320

<뱅크시를 구하라>(2017)

https://www.youtube.com/watch?v=YNVaVfF4M30&t=199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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