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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랑 Sep 25. 2019

디자인과 스타일링

'디자인은 예쁘게 만드는 것'이란 말에 대하여

학기 첫 수업 때면 학생들에게 디자인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묻는다. 전공자에게 어쩌면 식상한, 추상적 질문일지 모르나 생각보다 이 질문을 마주할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또 가끔씩 되새겨 볼 가치가 있는 질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상보다 다양하게 들려오는 대답 중 빠지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디자인은 (디자인) 대상을 예쁘게 만드는 것"이라는 말이다.


디자인에 관한 이와 같은 이해나 정의를 '스타일링(styling)' 혹은 '미화(美化, 아름답게 꾸밈)'라는 용어로 바꿀 수 있을 법하다. 위 문장의 목적어, '대상'이 지칭하는 바는 모호하고 광범할 것이나, 으레 예쁘게 만든다는 표현은 외관을 보기 좋게 가꾼다는 의미로 쓰이기 때문이다.


두 용어 중 근래에 주로 패션과 연결돼 쓰이는 스타일링은, 디자인에서 대상의 외양 개선에 주력하는 방식을 지칭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디자인 10년(Design Decade)으로 불리는 1930년대, 미국의 1세대 산업디자이너들은 미의식이 결여된 초기 산업 제품의 표면을 "예술적으로 처리"함으로써 제품 판매량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 해럴드 반 도렌(Harold van Doren)의 톨레도 저울, 레이몬드 로위(Raymond Loewy)의 콜드스폿 냉장고, 월터 도윈 티그(Walter Dorwin Teague)의 밴텀 스페셜 카메라 등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제너럴 모터스의 알프레드 슬론(Alfred Sloan)과 그가 야심 차게 영입한 스타일리스트 할리 얼(Harley Earl)의 활약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할리 얼은 자동차 목업(mock-up) 과정에 점토를 써 자유로운 형태를 만들어냈고, 외관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콘셉트 카'를 만들었으며, 매 해 디자인을 바꿈으로써 옛 모델을 진부하게 만드는 전략을 제안하기도 했다. 오늘날 산업 디자인 영역에서 익숙하게 쓰고 있는, 스타일링에 관계된 이 기법들은 당시에 최초로 시도된 것들이었다.


왼쪽 : 톨레도 사의 저울(1934) / 가운데 : 콜드스폿 냉장고(1935) / 오른쪽 : 밴텀 스페셜 카메라(1936)


현대 디자인의 역사에서 스타일링은 중요한 개념이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디자인 전략 중 하나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CMF디자인'이라는, 표면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디자인 개념과 용어가 생겼다는 사실 정도가 아닐까 싶다.


디자인이 조형의 문제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에서, 대상물 표면의 형과 색, 질감 등은 신중히 고려해야 할 디자인 요소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CMF디자인이나 스타일링이 곧 디자인(의 전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관점과 전략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겠으나,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산업 디자인 과정(process)에서 풀어야 할 수많은 고민거리 중 비중 있는 일부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디자인은 대상을 예쁘게 만드는 것"이란 말이 디자인을 표면에(만) 관계한 것으로 오해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예쁨을 반복해 언급하다 보면, 자칫 그것만이 디자인의 목표인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디자인과 무관한 사람들에게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디자인에 대한 생각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과장된, 또는 오해에 가까운 디자인에 대한 정의나 이해에 기반해 벌어진 '이상 현상'들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공공디자인'이란 이름을 달고 등장했으나, ‘랜드마크 만들기’나 '환경미화'에 더 가까워 보이는 지방자치단체 단위의 디자인 사업들이 그중 하나일 테다.


그렇다면 과연 디자인은 무엇인가? 예쁘고 아름답기 이전에, 혹은 그와 동시에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가? 요컨대 디자인은 본질과 형태 사이의 관계를 다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많은 이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꺼낸 바 있어 새롭지 않으나, 널리 익숙한 관점이라 하기도 어렵다. 일례로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을 정의하며 '근본적 영혼(fundamental soul)'과 '본질(essence)'이란 용어를 사용한 바 있다.(원문 링크)


본질을 규정하는 관점에 따라, 종종 ‘무엇을 드러내거나 감출 것인지’ 같은 문제에 대한 선택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의도' 역시 관건이 된다. 그런데 그 의도는 때때로 일반적 기대를 벗어나 불쾌나 불편, 추함 따위도 포괄한다. 이런 맥락에서 디자인이 대상을 예쁘게 만드는 것이라는 말은, 디자인이 ‘상업’에 종속된 '산업 디자인'과 같다고 보는 시각과 연결되는데, 이는 현대 디자인의 부분적 속성에만 주목한 좁은 관점이라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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