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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 Nov 16. 2018

[나의 지극히 사적인 전시회 답사기] ①지도예찬

국립중앙박물관의 고(古)지도 전시회를 보고


  맛집 지도가 유행이다. 미식가로 손꼽히는 개그우먼 이영자씨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방송국 대기실에서 슬쩍 건네준다는 이영자표 맛집 지도부터, 재벌 3세가 대형 쇼핑몰을 만들 때 참고했다는 정아무개 전국 맛집 지도까지. 맛집 지도를 거읍되는 ‘공유’와 ‘좋아요’로 네티즌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그런데 문득 드는 생각. 옛날에도 각 고을의 대표 주막집을 표기한 맛지도가 있었을까? 물론 술맛을 보장하는 ‘주막 지도’가 발견되었다는 얘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하지만 '묘지를 둘러싼 다툼을 해결하기 위해 만든 무덤지도''이동하는데 걸린 일수가 표시된 여행지도''사대부가 살기에 좋은 곳을 찾기 위한 지침 지도'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어쩌면 당시 맛이 좋은 주막이 표시된 지도라든지 신선한 식재료를 판매하는 가게를 표시한 지도가 있었을 거라는 상상도 가능하지 않을까?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국립박물관에서 고(古)지도 전시회가 열렸었다. 길 눈이 어두운 편인나는 구글맵을 보고도 거리를 헤매고 지도로 방향을 가늠하는데에도 스트레스를 받는데, 아날로그식 종이 지도, 더구나 고(古)지도라니! 그러나 운명은 나도 모르게 나를 끌어당기는 법. 일단 ‘지도 예찬’이라는 전시 제목이 흥미로웠다. 제목이 주는 첫인상에 왠지 고(古)지도 전시회는 자주 열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과 전시 마감이 3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정보에 촉이 발동했다. ‘이거 왠지 물건이다, 아니, 아니 희소성 있는 전시로 보인다’  

 박물관이든 미술관이든 가장 자랑할 만한 작품과 유물은 마지막 방에 단독으로 전시하는 경우가 많다. ‘지도예찬’의 마지막 전시실의 주인공은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어스름한 조도 속에서 ‘대동여지도’가 34평 아파트 거실 바닥보다도 더 넓고 커다란 모습으로 은은하게 조명빛을 받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전시실에 들어선 관객들 사이에서 탄성이 나왔다. 나 역시 전시관 한쪽에 마련된 계단에 올라 ‘대동여지도’를 내려다봤다. 현재의 한반도의 모습과 흡사하게 나타낸 지도라 그런지, 가까이서 볼 때는 약가 높이 떨어져 봤을 때만큼의 감흥은 느끼지 못한 게 사실이다. 아마 학창 시절 익히 ‘대동여지도’의 가치에 대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배웠고, 한편으로는 내가 지도에 대해 무지한 까닭도 있으리라....‘대동여지도’ 주변을 몇 번을 맴돌고, 다시 단에 올라 전체 모습을 눈에 담고...그렇게 한참을 마지막 전시실에 머물렀다.     

 이런 고(古)지도 전시회를 쉽게 만나지 못할 거란 생각에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지도예찬’을 꼭 전시 철수 전에 가서 보고 오라고 권했다. 전시회에서 선보인 고(古)지도들 중에는 해외 수집가와 타 박물관에서 잠깐 빌려온 것들도 꽤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도예찬’ 전시를 공유하고 싶었던 더 큰 이유는 ‘정상기’라는 인물 때문이었다. 그는 고산자 김정호보다 120년 전에 태어난 사람이다. ‘정상기’는 많이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백리척’이라는 축적법을 최초로 사용한 유의미한 사람이다. 이 덕에 한반도의 모습을 갖춘 ‘대동여지도’가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불어 우리의 과학적 지도의 역사도 약 100년이 앞당겨 지는 셈이다. ‘정상기’는 그의 아들, 손자, 증손자까지 지도에 매달렸을 정도로 ‘지도에 미친 열정 가족’이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조선의 대표 지리학자로 김정호만 기억하고 있는 걸까? 사실 이것은 일본의 장난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천재 김정호를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그를 국가 기밀을 빼돌린 역적으로 몰아 세우는 무지한 조선인들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었고, 조선 지도의 시작을 김정호의 등장 이후로 만들어 조선의 지도 역사를 줄이려 속셈이 깔려 있었다고 한다.     

 고(古)지도는 문화재 중에서도 가장 생소하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지도예찬’ 전시를 관람한 후, 나의 시각이 조금은 바뀌었다. 친구를 만나러가든, 출장을 가든, 해외 여행을 가든 길치인 나는 휴대폰으로 지도를 본다. 비단 나만 이렇게 지도에 의존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친구들고 그럴 것이고, 10년 전에도, 100년 전에도, 사람들은 지도를 보며 보따리 장사를 하고, 과거 시험을 보러 가고, 심지어 전쟁을 했을 것이다. 정확하게 지도를 만들려고 몇 번이나 산을 오르고 기준 척도를 만들려고 했다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지도’를 예찬하고 있는 셈이다. 지도가 단순히 내비게이션이 아니고 그 당시 사람과 공간과 시대를 이해한다고 말한다면 너무 고리타분한 표현일까? ‘지도 예찬‘에 전시된 지도들의 백두산 경계와 동해의 표기가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는 것을 보면서, 서두에 고(古)지도를 단순히 ’맛집 지도‘로 비유했던 것이 참을 수 없도록 가볍게 느껴지는 것은 왜 일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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