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yaron Apr 22. 2024

고양이가 정해준 통금

 길고양이 솔 _ 1

늦었다. 뛰면서 시계를 보았다. 11시를 훌쩍 넘긴 11시 21분. 도착까지는 8분 남았다. 등 뒤의 매달린 가방은 더 빠르게 뛰라고 등을 때린다. ‘아! 너무 힘들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궁시렁거리면서도 나는 뛰고 있다. 띡띡띡 띡띡띡띡~ 비밀번호를 눌러 아파트 현관을 지나 마침 1층에 서 있던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주차장에 도착했다. 하나둘 켜지는 센서 등 불빛 쪽으로 눈알을 굴려 이곳저곳을 보았다. 없다. 갔네… 기다려주지 않는 서운함과 늦어버린 미안함에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름을 불러봤다. “솔! 솔아!!”    

  

3년 전 늦봄이었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다가 아파트 화단 속에 숨어있는 새끼고양이를 보았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와 같은 코숏 고등어무늬라 눈길이 갔다. ‘물은 먹었을까?’ 하는 마음에 데리고 나온 강아지를 집에 놓아두고 고양이용 습식 캔과 생수 한 통을 챙겨 내려갔다. 새끼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만나면 빠르게 주기 위해 우체통 속에 물과 캔을 넣어두었지만 1년이 지나도록 보지 못했다.     


도심 속에서 새끼고양이는 살아남기 어렵다. 고양이는 태어난 곳 주변을 영역으로 살아가게 되는데, 근처 고양이들은 태어난 새끼고양이가 반갑지 않다. 새끼고양이가 자라면 영역과 먹이를 놓고 근처의 다른 고양이들과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양이들은 어미 고양이가 먹이를 구하거나 안전한 곳을 찾으러 자리를 뜬 사이, 새끼고양이를 모조리 죽이기도 한다. 용케 살아남아도 새끼고양이는 사냥할 능력도 모자라고 지나다니는 자동차에 희생되기도 쉽다.   

도심에는 식량이 부족하다. 물도 없다. 물을 섭취 못 하고 먹이를 구하지 못해 음식물쓰레기를 먹으며 크는 새끼고양이들은 신부전증에 걸려 온몸이 퉁퉁 붓는다. 그런 아이들을 사람들은 잘 먹어 살찐 뚱냥이라 한다. 20년 수명이 3~4년으로 줄어든다.      


어느 늦은 밤. 편의점에 야식을 사러 가는 길이었다. 2분 정도 거리에 아무도 없어 두리번거리며 일부러 발소리를 크게 내며 걸었다. 편의점에 거의 다다를 무렵, 가로등 불빛이 닫지 않은 컴컴한 바닥에 뭔가가 꿈틀 움직였다. ‘뭐지?’ 하는 순간 그 물체가 빠르게 우다다다 뛰었다. 으아아악! 나도 놀라 뛰었다. 큰 쥐였다. 편의점도 못 가고 집으로 줄행랑을 쳤다. 

고양이는 쥐의 천적이다. 많은 유기견 보호소에서 쥐의 습격을 막기 위해 고양이 똥을 보호소 주변에 묻기도 한다. 나보다 쥐 사냥을 잘하는 고양이. 밤거리를 뛰어다니며 하수구 속 바글바글한 쥐가 길거리로 튀어나오지 못하게 막아줘야 하는데, 다 어디로 갔는지 쥐들이 튀어나와 돌아다니고 있었다.      


내가 본 코숏 고등어무늬 새끼고양이가 왼쪽 귀 끝부분이 살짝 잘린 채로 나타났다. 구에서 길냥이들을 데려가 중성화를 시킨 후 남긴 표시다. 중성화해서였을까. 여유로움이 생긴 것일까. 그 뒤로는 가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달빛을 쬐며 벤치에 앉아 있는 모습, 쓰레기장 주변을 서성이는 모습. ‘벌써 다 컸네?! 용케 버티고 잘 살아났구나…’ 기특함과 점점 뚱냥이로 변해가는 모습에 짠함이 함께였다. 우체통으로 뛰어갔다가 오면 없어졌기에 뭘 어떻게 해줄 방법은 없었다. 


한파에 바람까지 불어 ‘아우~ 추워’를 연실 내뱉던 날이다. 차를 가지고 귀가가 늦어진 날이다. 지하주차장 한쪽에 차를 대고 입구로 빠르게 걷던 내 눈에 코숏 고등어무늬 고양이가 보였다. 어두운 주차장 구석에 한껏 웅크리고 있었다. 집에 올라가 따뜻하게 물을 데워 고양이용 참치캔과 그릇을 가지고 내려갔는데 그때까지 고양이는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있었다. 따뜻한 물에 참치 한 수저를 섞은 그릇을 기둥 옆에 두고 멀찍이 떨어져 쭈그리고 앉았다. 내가 하는 행동을 계속 지켜보던 고양이는 한참 만에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그릇으로 다가왔다. 목이 말랐는지 참치 냄새가 나는 물그릇에 혓바닥을 쉴 새 없이 할짝거렸다. 

꿀럭꿀럭 물이 목구멍을 넘어가는 소리. 

드륵드륵 그릇이 바닥에서 밀려나는 소리. 

밤 11시. 3년 만에 처음으로 물그릇을 사이에 두고 코숏 고등어무늬 고양이와 마주 앉게 되었다.      


다음 날 저녁 퇴근 후, 물과 참치캔을 챙겨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보았다. 고양이는 없었다. 집에 돌아와 TV 드라마를 보며 뒹굴고 있는데 11시쯤 귀가한 남편이 현관문을 열며 말했다. “고양이가 너 기다리는 거 같던데?” 슬리퍼를 신고 뛰어 내려간 지하주차장에서 차량용 출구로 나가려던 코숏 고등어무늬 고양이를 만났다. 고양이는 나와 처음 마주한 시간과 장소를 약속으로 정해버린 것이었다.      


약속 시각을 변경하고 싶었다. 먹는 걸 지켜보고 그릇 수거까지 하고 오기엔 밤 11시는 피곤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이 안 통한다. 물시계라도 찬 것인지 딱 11시에 나타나 물 한 그릇 참치캔 반을 비우고 가버린다. 10시 30분부터 기다려도 11시에 나타나고, 11시를 넘겨 늦으면 기다리지도 않는다. 

나에게 고양이가 정한 11시 통금이 생겼다. 

“집에 일찍 들어오랄 땐 대꾸도 하지 않더니, 뭐냐?” 남편이 한마디 한다.      

“나비야~, 야옹아~, 호랑아~, 고등아~” 이것저것으로 부르다가 아파트 이름을 따 ‘솔’이라 이름을 지어줬다. 


솔 : “어이 사람! 따뜻한 물 고맙다냥! 기다려랑~ 큰 쥐 잡아다 주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