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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aron 하의정 Nov 18. 2024

첫 수확한 호두의 맛

호두밭_2

호두나무를 심은 지 십년 만에 첫 수확을 앞두었다. 호두는 양력 구월 칠일 무렵인 가을 절기 중 '백로(白露)'에 수확한다. 수확 2주 전까지 수확 때 떨어지는 호두열매를 잘 찾기 위해 잡초를 다 베어놓아야 했다. 올해의 여름 무더위는 평년보다 길고 무더워 8월 중순부터 시작된 예초작업은 땀구멍을 모두 열었다.      


8월 한낮 쨍한 햇빛이 호두밭으로 내리쪼인다. 여름내 자라 내 키를 훌쩍 넘는 풀들을 베느라 등 뒤에 매달려 덜덜 거리는 예초기 소리가 나처럼 힘겹다. 등에서 내뿜는 엔진의 열기가 견디지 못하고 꺼지면 드디어 쉬는 시간이다. 얼굴까지 덮은 안전모를 위로 올리고 물 한 통을 들이켰다. 꽁꽁 얼려간 얼음물은 녹아서 미지근하고 크게 들이켠 숨에 풀냄새가 진동했다.      


금요일 밤이면 호두밭이 있는 상촌 근처 몇 곳 안 되는 숙박시설 중 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새벽 5시에 일어나 호두밭으로 향하고 한낮에는 녹초가 되어 돌아와 누웠다. 온몸의 기운이 땀으로 다 빠져나가는 것 같고, 식당에 가 주문한 짜글이에 공깃밥 한 공기를 더 먹어도 배고팠다. 무더위 속 2주 동안 1,750평 호두밭 예초 작업을 끝냈다.      


호두 농사를 크게 짖는 아저씨를 찾아 호두 수확에 대해 여쭈며 속이 꽉차 탄성이 있는 대나무 장대를 얻었다. 바닥에 떨어진 호두열매를 넣을 자크가 밑에 달린 수확용 앞치마를 주문하고, 가로 5m 세로 10m 대형 방수천도 깔개로 샀다. 도와주러 온다는 언니, 오빠, 친구들의 장화도 발 크기별로 더 샀다. 숙소로는 계곡 옆 펜션까지 호두 수확을 위해 완벽하게 준비했다.      


드디어 호두 수확 날 '백로'다. 단체로 수확용 앞치마를 두르고 장화를 신고 면장갑 위에 라텍스 고무장갑을 짱짱하게 꼈다. 복장으로만 보면 숙달된 농부들 같다. 언니와 나는 낮게 달린 호두열매를 손으로 따서 앞치마에 넣었다. 남자들은 호두나무 밑으로 대형방수천을 끌고 다니며 깔고, 호두열매가 달린 가지를 장대로 때렸다. 호두열매가 방수천 위로 후두두 떨어진다.      


열매가 많이 달린 나무들은 대박이, 으뜸이, 다산이, 일등이 등 이름을 붙여 주었다. 같이 심었는데도 무슨 이유인지 열매가 몇 개 안 달린 나무도 많다. 띄엄띄엄 열매가 달린 나무는 꼭 누가 털어간 듯 보이기도 한다. 이리저리 나무를 둘러보다가 인기척에 놀라 뛰어가는 청설모와 눈이 마주쳤다. “너였구나?” 피식 웃음이 났다. 


“싸좡님~ 좀 쉬께오!” 오빠가 외쳤다. “싸좡님~ 죄쏭해요~ 다 쏘다써~” 언니가 딴 호두를 가득 담은 포대를 옮기다가 바닥에 쏟았다. “싸좡님이 일 몬해~ 제일 몬해” 장대를 세게 휘둘러 가지를 다 잘라먹는 남편에게 내가 말했다. 장대를 들고 나무를 올려다보며 쳐대니 뒷목이 뻣뻣해진다. 바닥에 떨어진 호두열매를 꾸부리고 주워 담으니 허리가 끊어질 듯하다. 우리는 “싸좡님~ 힘드러요~ 나 올해 본쿡 가~ 이제 안 와~”를 연발했다. 


호두열매를 거의 딸 무렵 초코파이, 커피, 바나나 등 각종 간식을 가득 안고 친구 부부가 왔다. “아좀마 코피 마쇼~ 아조씬 초꼬바?” 우리의 말투를 보고 친구가 웃겨 죽겠단다. “거기 둘 새로 와쏘~? 요기 안쟈~” 친구 부부에게 고무장갑과 앞치마를 건넸다. 호두열매를 팔기 위해 대, 중, 소로 분리를 시작할 참이었다. “싸좡님~! 그건 쏘야!” 그들의 말투가 우리와 같아졌다.      


깔깔거리며 즐겁게 일해서인지 생각보다 빠르게 분리 작업까지 끝났다. 농협 호두 수매는 주중만 가능했다. 주말에도 호두 수매한다는 분을 소개받아 호두 아저씨의 트럭을 빌려 호두포대를 싣고 수매장으로 갔다. 그곳은 소 크기 호두는 안 받아주고 연고지가 없어 팔 곳이 없는 서울에서 온 우리에게 '사십팔만원'을 줬다.    

  

“싸좡님 쏜해 크겠는데? 그래도 채미썼숴~ 내뇬엔 더 잘될꺼야~!” 다시는 오지 않겠다던 우리는 변하지 않는 말투로 뜨겁게 열 받은 몸을 계곡물에 담갔다. 남편도, 오빠도, 언니도, 친구 부부도 넓고 편편한 계곡물에 누웠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릴 정도로 힘들었던 몸은 시원한 물살에 풀어지고, 치유됐다. 해냈다는 기분에 몸이 둥둥 떴다.      


호두열매는 다 익어도 색이 진녹색이다. 사과나 배처럼 과육 부분을 먹지 않고, 우리가 먹는 부분은 은행처럼 속에 있는 씨의 핵 부분이다. 금방 딴 열매는 잘 까지지 않고 딴지 오일 정도 숙성 후 칼로 하나하나 까 줘야 한다. 공기와 만난 과육 부분은 검게 변한다. 맨손으로 만지면 손도 까맣게 물든다.      


소 크기 호두열매를 나눠 가지고 집으로 와 목욕탕에 두고 오일간 숙성했다. 과도로 칼집을 깊게 내니 쩍 쪼개지며 황토색을 띤 호두알이 나왔다. 놔두면 과육으로 인해 검게 변하니 맑은 물에 벅벅 씻어줬다. 검은 진액이 묻은 호두는 씻기지 않아 칫솔로 문질렀다.      


호두알은 바람 잘 통하는 곳에서 2주 이상 말려줘야 한다. 잘 말릴수록 더 고소해진다 하여 거실에 펼쳐두고 선풍기를 켜두었다. 뒤집어 주면 호두알끼리 서로 부딪이며 '바다닥바다다닥' 소리를 낸다. 호두 까기에 호두를 한 알 넣어 빙빙 돌리니 '빠드득' 깨지며 호두 살이 보인다. 내가 수확한 나의 첫 호두다. 꽤 고소하다.



 싸좡님~ 싸좡님~ 소리가 끊이지 않던 호두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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