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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aron 하의정 May 07. 2024

고양이의 밥그릇 편지

길고양이 솔 _ 2 

어디에서 어긋났을까. 밤 11시. 약속 시간이 되어도 오지 않았다. 지하 주차장에서 기다린 지 벌써 2주째다. 약속 시간이 빨라졌나 싶어 한 시간을 먼저 나가 기다려도 오지 않았고, 11시 약속 시간이 훌쩍 넘어 십 분, 이십 분, 삼십 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바람이 세차게 불어 귀가 떨어져 나갈 듯 쨍하게 춥던 어느 겨울밤이었다. 3년간 아파트 단지 안에 가끔 보았던 작은 고양이를 지하 주차장에서 보았다. 추위를 피해 지하 주차장까지 들어와 구석에 잔뜩 웅크린 모습이 안쓰러워 따뜻한 물에 고양이용 참치를 섞어 먹였다. 겨울 동안 매일 밤 11시에 참치를 섞은 따뜻한 물과 사료를 주며 ‘솔’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솔은 겁이 많았다. 밥그릇을 놓는 자리와 제일 가까운 자동차 밑에 숨어서 내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았다. 참치를 그릇에 쏟아 넣고 보온병의 따뜻한 물을 부어 수저로 섞어 바닥에 놓은 후 뒤로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네 걸음을 물러서면 그제야 자동차 밑에서 나와 기지개를 켜고 살금살금 밥그릇으로 다가갔다. 밥그릇 수거를 위해 쭈그리고 앉아 솔이 다 먹기를 기다리다가 다리가 아파 살짝 움직이기라도 하면 먹던 것을 멈추었다. 동공이 커져 동그래진 눈으로 귀를 양옆으로 바짝 내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어쩌면 나쁜 사람을 만났을 때 빠르게 도망갈 수 있는 솔의 경계심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솔과 나와의 거리는 늘 4m다. 길냥이에게 사람 손을 길들이는 것은 집안으로 들여와 책임질 때라 생각한다. 길거리를 영역으로 자유롭게 뛰어다닌 길냥이를 좁은 집안에 두는 것은 쉽지 않다. 예뻐서 한번 쓰다듬고 싶은 나의 욕심은 솔의 목숨줄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나도 솔과 거리를 좁히지 않고 4m 밖에서 기다리고 지켜만 보았다.       


겨우내 얼어있던 나뭇가지가 꽃망울을 터뜨리는 봄이 되었다. 친구 고양이들과 노느라 약속 시간을 잊은 것인지 솔은 나타나지 않았다. 늦게라도 와서 먹으려나 싶어 밥자리에 물그릇과 고양이 참치, 사료를 놓아두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내려가 보니 급하게 먹었는지 밥그릇이 여기저기 흩어져있고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밤 11시 약속 시간엔 오지 않고 매일 아침 "잘 먹고 잘 있어! 걱정하지 마!"라고 말하는 듯한 밥그릇 편지를 받았다.      


빈 밥그릇 편지를 받은 지 2주가 지났다. 이렇게까지 만나지 못하다니, 사료를 먹는 아이가 솔이 맞는 건지 의심이 들었다. 혹 밥자리를 뺏긴 것인가,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걱정이 불안으로 커졌다. 경비아저씨께 몸은 하얗고 회색 줄무늬 고양이를 보셨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요즘 못 봤다며 지하주차장에 밥주는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에게 물어보라 했다. 아마도 나를 지칭하는 것 같다.     


아파트 단지 화단안을 찾아보다가 단지 옆 초등학교도 가 보았다. 운동장을 가장자리로 돌며 수풀 구석구석 건물 사이사이를 훑었다. 없다. 불안감이 점점 커졌다. 움직임을 시작하는 저녁시간대에 시간만 나면 나가 솔이를 찾아 다녔다. 찾으러 다닌지 사흘 후 오후 7시 20분. 초등학교 담벼락 밑을 걸어가는 거무스름한 회색 고양이가 저 멀리 보였다. 달려가 보니 솔이었다. 하!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솔!” 

큰 소리로 부르니 걷다가 멈칫한다. 또 한 번 크게 불렀다. 휙 돌아보더니 후다닥 뛰어간다. 알아듣지도 못할 이름을 막 부르며 쫓아갔다. 한 번 더 휙 돌아보더니 숨바꼭질 술래에 들킨 양 더 빨리 뛰어 담벼락 및 구멍으로 쏙 들어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하하. 날 보고 도망쳐?" 헛웃음이 나왔다. 허탈했다. 그래도 잘 지내고 있는 것을 보니 안심은 되었다.

"솔! 나만 밤 11시에 길들여 놓고 아주 신나게 놀러 다니고 있었구나?!"      


나는 매일 아침 빈 밥그릇 편지를 기대하며 매일 밤 11시, 물그릇과 고양이 참치, 사료를 놓아둔다.

솔 : “어이 사람! 내가 큰 쥐 잡아다 주려고 얼마나 바쁜지 아냥?! 기다려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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