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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마카롱 Jun 02. 2021

어느 나라나 존재하는, 손맛!

연애 초반부터, 저에게는 저희 집 프랑스 남자 고랑이에게 해달라고 부탁한 요리가 있습니다.

아마도 식상한 메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 프랑스 음식이지만, 바로 '프랑스 국민음식'이라고 하는 '뵈프 부르기뇽 (Boeuf Bourguignon)입니다. 영어로는 '버건디 비프 (Burgundy Beef)'라고 불리며, 영화 '줄리아  줄리아 차일드' 나왔던 메뉴 이기도 합니다.

뵈프 부르기뇽 (Boeuf Bourguignon)


이 '뵈프 부르기뇽'은, 프랑스 와인이 유명한 '브루고뉴' 지방의 와인과 도톰한 소고기, 각종 야채를 사용하여 만드는 '소고기 스튜'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이해가 쉬울 것 같아요. 예전에 파리 여행 중에 비스트로에 가면 자주 보였던 메뉴이기도 한데, 집에서 하기에 꽤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한 달 전에 쉬는 날을 체크하더니,  고랑이가 집에서 처음 이 음식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며칠 전, 장을 보러 가서는 알록달록한 색깔의 당근인 더치 캐롯부터, 싱싱하게 향을 뿜에 내는 파슬리,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버섯, 그리고 훈연 향이 잘 입혀진 도톰한 베이컨과 넙적하게 잘 썰려있는 스튜용 고기 등을 사 옵니다. 집으로 돌아와 저는 평소보다 묵직한 장바구니를 열어서 정리하는 동안, 고랑이는 집에 있던 샬롯과 제법 향이 좋은 와인, 각종 허브를 꺼내고 칼을 깨끗이 씻고, 도마 밑에 젖은 행주를 깔아서 도마를 고정시킨 뒤 본격적으로 '뵈프 브루기뇽'을 만들 준비를 합니다.


오랜만에 먹는 색다른 음식에 기대에 저는 스피커로 프랑스 샹송과 귀여운 쥐가 에펠타워를 보며 눈을 반짝이던, 만화 '라따뚜이'의 주제곡도 틀어봅니다. 아직 여행을 마음대로 갈 수는 없지만, 이렇게 음식으로 여행하는 기분은 늘 행복하거든요. 그리고 배달음식을 한국처럼 쉽게 먹을 수 없고, 점심을 런치박스로 매일 싸야 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삼시 세 끼를 집밥으로 챙겨 먹는 저에게도 조금 여유가 생겨서 좋은 건 덤입니다.


색깔이 예뻐서 늘 기분 좋은 더치 캐롯

본격적으로 고랑이가 솜씨를 발휘하는 동안, 저는 오늘 밤 메뉴와 잘 어울릴 와인을 오랜만에 골라봅니다. 대략적인 와인에 대한 배경지식과 설명을 와인이 생산된 와이너리의 페이지와 같은 와인을 마셔본 사람들의 댓글을 쭉 읽어봅니다. 저는 고랑이와 멀찌감치 자리를 잡고는, 식탁에서 주방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 이 풍경을 눈에 담으며 제가 와인에 대해 발견한 이야기를 함께 나눕니다.


이야기만큼이나 깊게, 집안 가득 풍겨오는 밝고 따끈한 냄새에 맥주와 소주 (고양이들)도 배가 고픈지 다가와 저녁밥을 달라고 재촉합니다. 기름이 지글거리는 소리, 따뜻한 불빛의 주방, 칼과 도마가 부딪치는 소리, 보글보글 끓는 소리, 통통 튀는 경쾌한 음악 소리, 고양이들이 먹는 사료가 그릇에 톡톡-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이 따뜻한 저녁의 풍경을 사진으로, 그리고 글로 조금씩 써내려 가봅니다. 늘 이런 순간들은 이 순간 속에서만 온전히 손에 잡히는 감각으로 남겨놓아야 하거든요.


뚝딱뚝딱 하나씩 요리과정을 끝내고 커다란 냄비에 제법 깊게 향이 우러나는 뵈프 부르기뇽을 오븐에 밀어놓은 고랑이는 잠시 식탁에 앉아 오븐에서 뵈프 부르기뇽이 잘 익기를 함께 기다립니다.

"어떻게 그렇게 요리책이나 레시피 없이 뚝딱뚝딱 음식을 해? "

제가 고랑이에게 물어보니 그가 씩 웃으며 머리와 심장을 향한 손가락을 가리킵니다.

그의 모습에 저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는 그는 저에게 말합니다.


"네가 나한테 한국음식 만들어줄 때랑 똑같아. 한국 엄마도 프랑스 엄마도 똑같아. 손맛과 사랑! "


레시피는 레시피일 뿐!

저도 요리를 배우고, 음식을 만드는 일로 직접 하면서 가장 어렵지만 재미있는 점은 '레시피나 설명은 설명일 뿐-'이라는 점입니다. 베이킹의 경우에는 반드시 과학적인 부분이 기본적으로 성립해야 완성이 가능하기 때문에, 레시피를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고 수백 번 수천번을 반복하며 그 속에 디테일을 찾아내는 재미가 있으면, 요리의 경우에는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고 사실 수많은 셰프들과 일을 해봤지만, 레시피가 뭐냐고 물어보면 다들 기록을 위해 적어둔 레시피는 보여주지만 꼭 한마디를 덧붙입니다.

"알지? 레시피는 레시피일 뿐! 그리고 손맛과 연습! (혹은 '사랑'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혹은 가끔 이야기꾼이나 구전동화처럼 다른 셰프들이 말하는 조리방법을 들으며 제가 알아서 적당히 받아 적어야 하는 일도 생깁니다.  요리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우리가 자주 사 마시는 커피도 모든 요소가 동일해도, 만드는 바리스타에 따라 커피맛이 미세하게 다른 것도 , 할머니와 엄마의 음식이 다른맛을 가지는 것도 제가 그 맛을 따라할 수 없는 것도 이러한 이유겠죠.


고랑이와 진하고, 깊은 맛이 입안에서 팡팡 터지면서 어루만져 주는 듯한 뵈프 브루기뇽을 먹으며 그가 말한 '손맛'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갑니다. 그의 어머니가 레시피 없이 해주었던 음식들, 그리고 제가 이렇게  글로 적을 수밖에 없었던 정확한 레시피가 없는 이야기들- 그리고  오늘 뵈프 부르기뇽이 유난히 맛있다고 그에게 마음껏 칭찬을 해주었더니, 이 특별한 뵈프 브루기뇽의 이유를 그는 속삭이듯이 말합니다.


 "한국 사골육수를 마트에서 파는 비프스톡 대신 썼어. 한국인의 손맛이 더해진 프랑스 음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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