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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마카롱 Mar 29. 2021

어느 날 갑자기 집사가 되었습니다.

때는, 2018년 4월. 당시 남자 친구와 15년 동안 함께한 고양이 '갈색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던지 두어달 때쯤 되었을 때, 당시 남자 친구는 어느 날 갑자기 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새끼 고양이를 두 마리 입양하기로 결정했어."

얼마 뒤, 남자 친구의 집에 태어난 지 3개월을 갓 넘긴, 제 손바닥만 한 두 마리 새끼 고양이인 소주와 맥주가 찾아왔고 저는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집사가 되어, 2년째 이 두 고양이와 한 지붕 아래에 살고 있습니다.


저희 집 큰 고양이, 맥주


맥주는 3년이 조금 넘은, 시베리안 수컷 고양이입니다. 원래 맥주는 싱가포르로 분양될 예정이었는데, 입양이 막 취소된 맥주를 브리더( 전문적으로 동물들 품종 교배 및 분양해주는 사람)가 소개해주어 저희 집에 데려오게 됩니다. 맥주는 사랑스러운 골골송과 전형적인 개냥이의 성격을 가진, 사람을 무척 좋아하는 매력적인 시베리안 고양이입니다.  식탐이 무척 강해서 주방에서 플라스틱 통 여는 소리만 들리면, 음식을 주는 줄 알고 뛰어오는터라 그 식탐을 보고 있으면 정말 '경이롭다'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릅니다. 


똑똑한 강아지처럼 선반을 열어서 음식을 찾기도 하고 늘 주의 깊게 살핌이 필요한 사고뭉치이지만, 애교가 무척 많고 고랑이(전 남자 친구, 현 남편)의 배에 누워서 몇 시간식 붙어있는터라 또 다른 이름은 '껌딱지'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맥주는 고랑이의 배 위에 누워서 껌딱지 마냥 붙어있는 시간을 가장 행복하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소주님


소주는 정말 '고양이님' 성격의, 하얗고 뽀얀 털에 파란 눈이 매력적인 랙돌입니다. 맥주보다 한 달 정도 늦게 태어난 소주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매우 독립적인 성격 탓에 고랑이는 저와 똑 닮았다고 늘 말합니다. 맥주처럼 친근하고 개냥이 같은 성격은 아니지만 소주는, 그녀 특유의 애교가 있습니다. 저나 고랑이가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소주는 바구니나 침대에 드러누워 배를 보여주며 만져달라는 30초의 애교를 보이기도 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다가도 다가와 친근감을 표현하는 행동을 보여줍니다. 소주는 소리와 사람과의 거리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시간을 들여서 차차 접근하고, 지나갈 때도 사람처럼 몸을 틀어 길을 비켜주어 안정적인 거리를 만들어주면 조금씩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소주는 유난히 새가 많은 이 동네의 새소리를 좋아하고, 샴페인 코르크나 깃털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합니다.




'Animal de compagnie' (아니몰 드 깜빠니)


오래전, 프랑스어를 공부할 때 'Animal de compagnie' (아니몰 드 깜빠니)라는 단어를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자면, '반려동물'이라는 말이 가장 적확한 표현이 될 것 같습니다. '펫'도 '애완동물'도 아니고 '반려동물'이라는 표현은 저와 전 남자 친구이자 지금은 제 남편인 고랑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이자, 제가 나이 서른이 넘어서야 이 단어의 의미와 무게를 여전히 배우고 있는 단어입니다.


이 짧은 이야기는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태어나, 대도시의 빌딩과 아파트에서 거의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던 제가, 지구 반대편에서 어느 날 집사가 되어 겪은 고충기 이자, 아직 공부 중인 집사로써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모아봅니다. 처음에 맥주와 소주를 만나면서, 저는 난생처음 동물병원 응급실에 새벽에 달려가기도 했고, 잠 못 드는 날도 있었으며 인터넷이나 책을 찾아보고 수의사 선생님들과 이야기도 하며 집사로써 아직 배우는 중입니다. 점점 1인 가구는 더욱 늘어가고 있고, 우리나라에도 '돈 주고 사온 애완동물' 이 아닌 '입양한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어가는 것을 매번 한국에 다녀올 때마다 느끼고 있습니다. 


혹시 고양이를 입양할 의향이 있으나 고민 중인 집사님이나 혹은 집사는 난생처음이어서 고생 중인 동료 집사님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여 봅니다. '반려자' 만큼이나 '반려동물' 은 사랑을 주고받으며 함께 살아가는 소중한 인생의 동반가족 이니까요.


잠잘 때, 더 예쁜 소주 입니다. 잘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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