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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ny Mar 23. 2018

Bernstein at 100

2018년 번스타인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

지난해 9월 22일 워싱턴 DC의 케네디 센터에서 레너드 번스타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첫 번째 행사가 열렸다. 이날 레너드 번스타인 본부는 20세기 문화 예술의 거장인 그를 기념하며 2019년 8월까지 2년에 걸쳐 펼친다고 밝혔다. 뉴욕 링컨센터에서는 영화배우 알렉 볼드윈(Alec Baldwin)이 진행한 공식 발표 행사에서 번스타인의 세 명의 자녀인 제이미(Jamie), 알렉산더(Alexander), 니나(Nina) 번스타인이 참석하여 아버지 번스타인을 회고했다. 이 자리에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이자 메트 오페라의 음악감독 지명자인 야니크 네제-세갱이 참여했고, 영화배우이자 방송인 우피 골드버그도 참석해 번스타인의 인도주의적 업적과 투철한 사회참여 의식에 대해 이야기했다.


2년간의 기간 동안 전 세계적으로 각종 음악회와 페스티벌을 포함한 총 2,500개의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린다. 지난 1월 독일 12개 도시에서 열린 올해 신년 음악회에는 예전에 만나볼 수 없었던 번스타인의 작품들이 연주 곡목으로 등장했다. 뉴욕, 보스턴, 필라델피아, 워싱턴 DC,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애틀랜타, 휴스턴 등을 포함한 미국 주요 도시들과 런던, 파리, 베를린, 비엔나, 프라하, 로마, 부다페스트, 바르샤바와 같은 유럽, 그리고 일본, 중국, 브라질, 호주, 남아프리카, 이스라엘 등을 아우르는 전 세계적인 관심과 참여가 계획되어 있다. 


작곡가로서의 번스타인을 전국적인 스타로 발돋움하게 만든 브로드웨이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세계 각지에서 투어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또 다른 뮤지컬 작품 ‘원더풀 타운’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막을 올린다. 그의 작품 가운데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Mass’는 런던, 파리, 로스앤젤레스, 스코틀랜드, 오스틴에서 재조명되고, 그의 오페라 ‘A Quiet City’는 비엔나와 부다페스트, 그리고 뉴욕과 필라델피아에서 선보이게 된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공영방송 PBS과 NPR을 비롯해 CBS, BBC(영국), ZDF(독일), ORF(오스트리아)와 같은 세계 주요 미디어에서도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프로그램을 제작 방송한다. 


번스타인 100주년 기념 전시회 (Leonard Bernstein at 100)

100주년을 기념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행사는 그래미 박물관(The Grammy Museum)이 주관하는 번스타인 기념 전시회이다. 그래미 박물관과 인디애나 대학교 제이콥스 음대가 소장하고 있는 번스타인 관련 기록과 물품들을 수집하여 워싱턴 DC, 뉴욕, 로스앤젤레스, 필라델피아 등지를 순회하며 그의 생애를 소개한다. 약 150여 점의 사진과 그림, 개인 소장품, 공부했던 자료와 친필 악보, 연주복, 재학 당시의 기록과 졸업증서, 여행에 사용했던 가방들과 책상, 신발, 피아노, 그리고 그의 대표 음반들과 관련된 영상자료에 이르기까지 그의 생애가 총망라된 의미 있는 전시회이다. 현재 이 전시회는 링컨 센터 내에 위치한 뉴욕 공연예술 공립도서관에서 열리고 있으며 3월 24일까지 이어진 후 4월 26일부터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이어진다.



전시품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끌었던 한 가지가 있었는데, 바로 두 동강 난 지휘봉이었다. 번스타인은 자신이 사용하는 바통을 늘 ‘리처드 호로비츠(Richard Horowitz)’에게 부탁했다. 그는 이름 있는 지휘봉 제작가였지만, 실은 메트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팀파니 종신 수석으로 66년 동안 활동한 최장수 단원이기도 했다. 이 부러진 바통은 원래 1987년까지 번스타인이 소유했던 것이었는데, 2007년도 구스타보 두다멜의 역사적인 뉴욕 필하모닉 데뷔 공연에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리허설 도중 프로코피에프 교향곡 5번의 마지막 마디에서 두다멜이 이 바통을 부러뜨리고 말았다. 역사적 연주에 역사적 해프닝이 중첩되며 또 다른 의미가 탄생된다. 뉴욕 필하모닉은 이 바통을 10년 넘게 보관하고 있다.


지휘자 번스타인의 뉴욕 필하모닉 데뷔 공연은 이미 많이 알려졌다시피 당시 예술고문이었던 브루노 발터 대신 무대에 올라 성사된 것이다. 연주 곡목은 슈만의 만프레드 서곡과 미클로스 로자(Miklos Rozsa)의 주제, 변주와 피날레(Theme, Variations and Finale), R. 슈트라우스의 돈키호테, 마지막으로 바그너의 마이스터징어 서곡이었다. 70여년의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누렇게 색이 변한 이날의 프로그램에는, 브루노 발터의 이름 아래 작은 글씨로 ‘레너드 번스타인, 대체 지휘자(substitute)’라고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당시 25세였던 번스타인은 뉴욕 필하모닉의 부지휘자였지만, 누구나 꿈꾸듯 그 역시 카네기홀 무대에서 멋지게 데뷔하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하루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날 아침, 당시 오케스트라의 매니저였던 브루노 지라토(Bruno Zirato)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레니, 오늘 오후 3시에 네가 지휘해야 해. 지휘자가 지독한 독감이야.”  


통보를 받은 그는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못할 만큼 두려움이 몰려왔다. 당장 몇 시간 후 연주라 리허설 할 시간도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돈키호테는 두 명의 독주자와 함께 호흡을 맞춰야하는 매우 까다로운 곡이 아닌가. 그는 이불에 둘둘 쌓여있는 브루노 발터에게 황급히 달려가 중요한 부분의 설명을 들었다. 카네기홀에 일찍 도착한 악장과 수석 첼리스트는 그와 함께 까다로운 몇 군데를 맞춰보았다. 연주복을 챙겨 입은 후 3시가 되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리허설 한 번 안 해본 애송이 지휘자 뜻대로 따라오지 않으면 어떻게 할지 고민에 고민이 끝없이 이어졌다. 시간은 다가왔고 관객들이 하나둘씩 들어와 이제 무대에 올라야 할 순간이 되었다. 매니저 브루노 지라토는 긴장한 그를 아빠처럼 따뜻하게 안아주며 무대로 보냈다. 번스타인은 무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긴장했다. 연주 중간에 인터미션이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그의 떨림은 마지막 곡을 마치고 사람들이 일어나 손뼉 치고 환호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깨어났다. 




미국인들에게 번스타인은 특별하다. 한 세대 이전 작곡가인 애런 코플런드는 그의 나이 스무 살에 자신의 목소리를  찾기 위해 파리로 떠났다. 당대 최고의 작곡가였던 나디아 불랑제와 공부했고 유럽의 정통과 현대 예술을 받아들였다. 가장 미국적인 음악의 주춧돌을 놓았다고 평가받는 코플런드는 아이러니하게도 유럽에서 자신의 가야 할 방향을 찾은 것이다. 미국으로 돌아와 유학을 통해 얻은 충격이 가라앉을 무렵 그는 가장 미국적인 음악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조금씩 배워가게 된다.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은 번스타인과 코플런드의 차별점을 여기서 찾았다. 유럽의 뿌리를 둔 클래식 음악을 논할 때 짧은 역사를 가진 미국이 내놓을 있는 것은 최근까지 없었다. 그런데 유럽 문화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번스타인이라는 천재가 등장한 것이다. 그는 보수적이고 전통을 강조하는 유럽 최고의 음악가들로부터 오랜 시간 동안 존경을 받았고, 다른 미국 음악가들과 미국 음악을 소개한 업적을 이룬 인물로 평가했다. 마이클 틸슨 토마스 역시 같은 맥락에서 자신의 스승이었던 번스타인을 이렇게 회고했다.

“클래식 음악 세계에서 통용되는 불문율이 있다. 연주를 위해 무대 위로 나간다는 뜻은, 마치 본인의 ‘작품’을 가지고 전시회에 여는 것이지, 자기 ‘자신’이 작품이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러나 번스타인은 이 경계를 무너뜨렸다.”


번스타인과 함께 떠오르는 단체들은 그의 100주년을 더욱 특별하게 맞이한다. 그의 예술적 성취의 중심에 있었던 뉴욕 필하모닉을 비롯하여, 직업 지휘자로서의 첫걸음을 시작한 이래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 인연을 맺었던 탱글우드 페스티벌. 음악이론과 작곡의 기초를 공부하며 콘서트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한 꿈을 갖게 했던 하버드 대학, 그리고 지휘자로서 최고의 교수와 함께 혹독한 훈련을 받을 수 있게 했던 커티스 음악원을 소개한다. 


뉴욕 필하모닉

브루노 발터의 권유로 부지휘자로 인연을 맺은 후, 1958년부터 1969년까지 11년 동안 음악감독직을 맡았던 뉴욕 필하모닉이 첫 번째 깃발을 들었다. 작년 10월 25일부터 11월 14일까지 열린 ‘번스타인의 필하모닉(Bernstein’s Philharmonic)’ 100주년 페스티벌이 그것이다. 앨런 길버트와 조슈아 벨이 호흡을 맞춘 바이올린 독주곡 ‘세레나데’와 교향곡 1번 ‘예레미아’가 연주되었고, 두 번째 음악회에서는 뉴욕 필하모닉의 수석 클라리넷티스트 앤서니 맥길(Anthony McGill)이 독주자로 나선 ‘프렐류드, 푸가 그리고 리프츠(Prelude, Fugue, and Riffs)’와 교향곡 2번 ‘불안의 시대(The Age of Anxiety)’가 이어졌다. 레너드 슬래트킨이 지휘한 다음 공연에서는 교향곡 3번 ‘카디쉬(Kaddish)’가 번스타인의 뉴욕 필하모닉 데뷔 당시 연주곡이었던 R. 슈트라우스의 돈키호테와 함께 연주됐다. 지난해 12월 31일에 펼쳐진 New Year’s Eve음악회에서는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교향적 춤곡(Symphonic Dances)’을 포함한 번스타인의 주요 브로드웨이 뮤지컬 작품들이 무대에 올랐다. 이 음악회는 미국 공영방송인 PBS를 통해 실황으로 중계되었다. 


탱글우드 페스티벌

번스타인이 지휘자의 길을 가게 했던 중요한 전기가 된 탱글우드 페스티벌은 올해 주제를 ‘번스타인 100주년의 여름(Bernstein Centennial Summer)’으로 정하고 그를 기념하는 페스티벌로 진행된다. 

번스타인과 탱글우드 페스티벌의 첫 인연은 194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스턴에서 30마일가량(50여킬로미터) 떨어진 로렌스에서 태어나 하버드에서 음악이론을 공부했던 번스타인은 졸업 후 커티스 음악원이 위치한 필라델피아에서 2년여를 지낸 후 다시 보스턴 지역으로 돌아왔다. 당시 보스턴 심포니의 지휘자이자 탱글우드 페스티벌을 처음 시작했던 세르게이 쿠세비츠키(Serge Koussevitzky)의 문하에서 지휘 경험을 쌓았다. 그 이후 지난 1990년 여름 그의 마지막 탱글우드 콘서트를 갖기까지 50년간 탱글우드 페스티벌은 그와는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그의 탄생 100주년과 탱글우드 50주년을 맞는 해에 걸맞게 15여 곡의 관현악 작품들과 더불어 소규모 실내악 작품들이 연주될 예정이다.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토머스 햄슨, 요요마, 미도리, 마이클 틸슨 토머스, 안드리스 넬손스, 존 윌리엄스와 같은 저명한 아티스트들과, 제시카 보스크(Jessica Vosk), 토니 야즈벡(Tony Yazbeck) 같은 유명 브로드웨이 뮤지컬 가수, 그리고 보스턴 발레단이 탱글우드를 찾는다. 페스티벌의 호스트 오케스트라인 보스턴 심포니와 더불어 번스타인 생전에 긴밀하게 관계를 이어왔던 이스라엘 심포니, 뉴욕 필하모닉, 탱글우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빈 필하모닉의 단원들도 함께 참여한다. 뿐만 아니라, 그의 도움으로 일본과 독일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PMF(Pacific Music Festival)와 SHMF(Scholewig-Holstein Music Festival)의 젊은 연주자들도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명실상부 가장 다양하고 화려한 공연들이 펼쳐진다. 


하버드 대학교

그가 저명한 음악이론가였던 월터 피스턴(Walter Piston)과 공부했던 하버드 대학에서도 의미있는 행사가 진행되었다. 지난 11월 학내 신문사인 ‘하바드 게제트(The Harvard Gazette)’는, 역시 하버드 졸업생으로 작가와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번스타인의 장녀 제이미 번스타인(Jamie Bernstein)을 초청하여 토론회를 가졌다. 음악가로서 전설이 된 아버지와 관련된 여러 가지 에피소트가 소개되었다. 그리고 번스타인이 음악을 대했던 자세, 즉 인간됨의 최고 정점을 표현하기 위해 음악을 사용했으며 이를 통해 더 나은 세상으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철학이었다고 말했다. 악기를 연주하고 무대에 오르는 것이 자기 자신의 경력을 쌓는 것으로만 머물러서는 안 되는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이날 패널로 함께 참석했던 ‘하버드 래드클리프 오케스트라(Harvard Radcliffe Orchestra)’의 지휘자 페데리코 코르티스(Federico Cortese)는 번스타인이 탱클우드 페스티벌을 이끌던 시절 그의 부지휘자였다. 번스타인을 가리켜 자신이 지금까지 만나본 음악가들 중에 가장 대화의 문턱이 느껴지지 않는 인물이었고, 존재 자체로도 영감이 넘치는 지휘자였다고 말했다. 


커티스 음악원

1939년부터 41년까지 전설적인 지휘자 프리츠 라이너(Fritz Reiner)와 수학했던 커티스 음악원에서도 번스타인을 기념하는 음악회가 이어진다. 클라리넷티스트 데이비드 쉬프린(David Shifrin)을 비롯해 재학생과 졸업생이 포함된 7명의 연주자들이 번스타인의 실내악 작품들을 중심으로 미국 내 10개 주요 도시 투어를 갖는다. 뿐만 아니라 오페라 필라델피아(Opera Philadelphia)와 킴멜 센터(Kimmel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와 공동으로 번스타인의 오페라 ‘A Quiet Place’를 필라델피아와 뉴욕 무대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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