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히 바흐의 재즈적 재해석 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음악을 듣고나니 이를 단지 원곡의 재해석에 대한 접근으로 바라보는 것은 왠지 게으른 시각이라 느껴졌다. 나는 이를 ‘가정된 세계’에 대한 멜다우의 환상으로 보고자 한다.
서양 고전음악의 관습적 어법을 그대로 재현한 트랙과 멜다우 본인이 가정한 ‘바흐 이후의 바흐’를 병치함으로써 영원히 지속되는 시간으로써의 바흐를 만들어낸다. 다시 말해서, 바흐가 살아있다고 가정된 현실에 대한 환상을 보여준다. 멜다우에 의해 가정된 세계는 단지 재즈 안에 국한되지 않아 보인다. 재즈적 불협과 쇤베르크적 불협이 함께 공존하는 느낌이다. 그는 오리지널 트랙을 통해 서양 고전음악과 현대 음악의 교차점을 만들어낸다. 애매모호한 포스트모던적 융합이 아닌, 두 세계의 정체성을 온전히 보존하는 변증법적 교차를 시도한다. 그래서 전혀 억지스러운 부분이 느껴지지 않는다. 과거의 재현도, 가정된 재현도 모두 바흐로 자연스럽게 귀결된다. 앨범의 시간은 그렇게 뫼비우스의 띠처럼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