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 (Joker, 2019)
소쉬르는 말한다. “언어는 말의 사회적 측면이기 때문에 개인을 초월하고, 개인에 외재하는 것이므로 개인이 이를 수정하거나 창조할 수 없다.” 엄마의 언어, 직업의 언어는 그에게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이 된다.
아서 플랙은 이상하리만치 늘 웃어야 하는 인간이 된다. 결국 웃음은 병이 된다. 언어라는 상징으로 억압된 그의 실재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현실을 위협하고, 그 때마다 멈출 수 없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가 집에 오가는 길, 늘 올라야만 하는 높은 계단처럼 그의 웃음은 고단하기만 하다.
난 그가 범죄를 저지를 때마다 알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결국 언어의 감옥으로부터 그를 구원하는 것은 언어가 규정하는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었다. 더 이상 가면 뒤의 진실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가면 자체가 진실이 되는 현실, 음악에 맞춰 기괴한 춤을 추며, 그는 그렇게 ‘조커’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