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해 여행이 많이 조심스러워졌다. 해외여행도 아직 예전처럼 자유롭지 않으니 답답하다. 그러던 차에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르스트(Marcel Proust 1871-1922)의 말이 위로가 되듯 와닿았다.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데 있다.’
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독일 작곡가, 브람스(Johaness Brahms, 1833-1897)가 헝가리 집시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헝가리로 여행을 하면서부터다. 브람스는 당시 유럽 전역에 알려진 유명한 헝가리 바이올리니스트 에두아르드 레메니(Eduard Remenyi, 1828-1898)와 헝가리로 연주여행을 하면서 보고 들었던 집시 음악과 리듬을 낱낱이 기록했다. 전통적인 형식을 중요시했던 독일의 환경에서 자란 브람스가 자유분방한 집시의 음악을 들었을 때의 신선한 충격과 끌림은 얼마나 컸을까. 그로부터 10여년 후 ‘헝가리 무곡’ 총 10곡을 1, 2집으로 나누어 출판하게 된다. 출판하자마자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된 헝가리 무곡은 레메니를 포함한 헝가리계 음악인들이 표절이라고 주장하면서 법정 소송까지 가게 된다. 브람스의 승소로 결론이 났지만 레메니와의 우정에 금이 간 큰 사건이었다.
브람스는 헝가리 집시 음악을 끊임없이 관찰, 기록했고 한참 후에 위대한 작품으로 남을 헝가리 무곡이 탄생했다. 새롭게 접한 문화를 자신의 작품으로 만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같은 음악을 들어도 어떤 사람에겐 그냥 좋은 음악, 새로운 음악으로 스쳐 갈 수 있지만 어떤 이에겐 자신의 작품의 소재가 된다.
이 곡은 처음부터 두 명이 한 피아노에 앉아서 연주하는 피아노 연탄곡으로 작곡되었다. 당시 피아노가 독일 중산층 가정에 많이 보급되어 있었고 함께 연주할 수 있는 피아노 연탄곡으로 출판한 데는 출판사 대표의 시대 흐름을 읽는 ‘안목’도 큰 역할을 했다.
음악전문지 <음악신보>의 편집장이었던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은 브람스를 “시대정신을 반영한 최고의 연주자이자 작곡가”라고 소개했다. 무리한 연습으로 손에 부상을 입게 되면서 더 이상 피아노를 치지 못하게 된 슈만은 음악평론과 작곡에 집중한다. 어릴 때부터 많은 문학작품을 읽었던 슈만은 문학적인 요소를 음악세계로 끌어들인다. ‘다비드 동맹’이라는 가상 단체와 멤버를 만들고 그들의 관점에서 음악평론과 작곡을 한다. 시적이면서 우울한 몽상가 같은 오이제비우스와 혈기왕성한 정력가 플로레스탄은 슈만의 이중적인 자아를 대변하는 가상의 인물이다.
슈만은 <음악신보>에서 자신을 대변하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당시 보수적이었던 평론계를 더욱 신랄하게 비판했다. 오이제비우스와 플로레스탄의 대화가 이어가듯 구성된 피아노 작품 '다비드 동맹 무곡집'에서도 각 곡마다 두 캐릭터의 첫 글자 E와 F를 적어서 대조적인 성격이 음악으로 표현되었음을 알려준다.
브람스는 헝가리 집시 리듬을 브람스만의 음악적 스타일로 재구성했고, 슈만은 어릴 때부터 갖고 있던 문학적 감수성을 음악에 도입해서 문학작품처럼 구성했다. 이렇듯 자신이 경험해왔던 수많은 체험이 낯선 마주침과 하나가 될 때 새로운 작품으로 승화된다. 헝가리 집시 음악을 모아서 브람스만의 스타일로 만든 ‘헝가리 무곡집’, 문학 작품에서나 나올 법한 가상의 인물을 토대로 각자 성격을 묘사한 음악작품인 슈만의 ‘다비드 동맹 무곡집’은 음악가의 호기심과 새로운 관점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여행에 갈증을 느끼고 있다면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집, 특히 1번, 5번을 들어보자. 내 목소리를 내고 싶은데 주변의 눈치가 보인다면 슈만의 다비드 동맹 무곡집을 들어보자. 열정적으로 표현하는 플로레스탄이 되어 내성적이고 온화한 오이제비우스의 음악을 듣다보면 용기라는 녀석이 성큼 다가와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