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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UTATIME May 26. 2016

구원은 셀프 서비스

엑스맨 : 아포칼립스

브라이언 싱어의 4번째 엑스맨 시리즈 <엑스맨 : 아포칼립스> 가 개봉했다. 2000년 부터 시작된 프랜차이즈이니 새삼 오래됐다는 생각도 든다. 이 시간 동안(울버린에 관련된 2편의 영화를 제외하고) 이 시리즈는 '차별'이라는 테마를 오래도록 탐구해오고 있다. 일반인들은 뮤턴트들을 두려워 한다. 뮤턴트들은 일반인들을 두려워 한다. 인간으로서 놀라운 능력을 가진 그들이 평범한 사람들을 두려워 하는 건, 그들 역시 사회 안에 존재하는 '사람'이고 결코 달라지고 싶어한 적이 없었기 떄문이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프로페서X와 매그니토가 흑인 인권 운동의 두 축인 말콤X 와 마틴 루터 킹(X 때문에 말콤X와 프로페서X를 매치 시키는 실수는 하지 않도록 하자)을 모델로 했다는 사실은 극동의 변방국가 한국에서도 이젠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매그니토의 능력이 발현된 것은 무려 아우슈비츠에서이다. 이 둘의 갈등은 인간에 대한 희망과 절망의 두 테제로 명확하게 갈려져 있다. 여기에 오랫동안 동안 인류의 지배자였으며 '신'으로 불렸던 자가 나타난다. 아포칼립스의 등장이다.


아포칼립스는 처음부터 멸망시키려들지 않는다. 그가 가장 처음 현대 사회에 들어와 하는 일은 '공부'하는 것이다. 자신을 배신한 자들이 만든 세계. 그리고 한심함을 본다. 도구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들. 나약한 인간들이 꼭대기에 올라가있는 부조리한 상태. 파괴 및 재건의 목적은 접수가 아니다. 그건 아포칼립스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 목적이 될 수 없다. 이건, 그가 보기에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왜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가? 그래서 그는 핵무기를 모두 우주로 날려버린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짜증나서다. 저런걸 가지고 '슈퍼 파워'니 뭐니 하는 꼬락서니가 한심하기 그지 없다.


나는 브라이언 싱어가 아포칼립스 쪽에 조금 더 마음이 가지 않았나 싶다. 그의 영화에서 가장 애처로운 이는 항상 매그니토였다. 그가 만든 엑스맨 시리즈에서 우리는 '매그니토'보다 '에릭 랜셔'를 더 많이 그리고 깊게 만나지 않았는가? 이러한 모습이 <엑스맨 : 아포칼립스>에서 가장 진하게 묻어 나오는데, 그는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일을 몇 번이나 당하고 나서도, 결국 아포칼립스가 세상을 멸하도록 두지 않는다. 그러나 그 과정은 조금 섬세하지 못하다는 생각도 든다. 퀵실버와 미스틱이 와서 몇 마디 나눈 것이 전부니까.


그러나 이것은 연출상의 오점이라기 보다는, 항상 가장 결정적인 부부에서 인간적인 고뇌에 부딪히고 또 그쪽으로 마음이 돌아서고야 마는 그의 모습을 부각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인간이기를 진작에 포기하고 스스로를 신격화한 존재와 매그니토는 다른 것이다. 인간으로 남아 있어야 복수고 나발이고 의미가 있을 것 아닌가? 그는 마지막 순간에 그것을 깨달았고, 결국 또 다시 떠난다. 그럴거면서 엑스맨에 합류를 왜 항상 거절하는가? 라는 질문은 그래서 무의미하다. 그는 계속 싸울 것이다. 그러나 인류를 멸망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뮤턴트 차별에 대한 철폐지, 평범한 인간들의 몰살이 아니니까. 이건 분명히 다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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