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베트남어를 내가 하리
우리 회사는 아직 초기 단계의 소규모 스타트업이다. 베트남 팀에서는 나만 한국인이고 나머지는 다들 베트남인이다. 기본적으로 영어로 업무를 한다.
사소한 문제가 하나 있는데, 내가 업무 중에 말을 거의 할 수가 없다.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나는 원래 말을 꽤 잘하는 편이다. 1:1 대화든, 회의 진행이든, 논쟁이든, 스피치든 잘했었다. 주로 이 스킬을 바탕으로 대내외적으로 상도 받고 인정도 받고 일도 하고 그랬다. 당장 내가 누군지는 독자들이 알 수 없으니, 자신 있게 써본다.
(적어도 업무 관련해서는) 원래 서태웅 오른손 정도의 말하기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요새는 말하기라는 게 강백호 왼손 정도로 비중이 추락했다.
이렇게 까지 된 것은 몇 가지 허들이 원인이 된다.
1. 작고 소중한 내 영어.
내 영어 구사 능력은 한국어 구사 능력의 10%쯤 되지 싶다. 생각의 속도를 혀가 못 따라간다. 스스로 말하다가 복장이 터진다. 뭔가 영어가 늘기보다는 생각과 발언 사이의 재처리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물론, 뭐 판교 사투리 자체가 대개의 단어는 다 영어고 조사, 동사만 한국어 된지 오래라 기본적인 업무 논의를 하는데 별 문제는 없다.
그러면, 내가 영어에 용맹정진하면 문제 해결이 되나? 안 된다.
2. 더 작고 소중한 베트남 멤버들 영어
어차피 지금 베트남 멤버들 영어 능력이 거기서 거기다. 사실 내가 여기서는 영어 제일 잘하는 편이다. '못생긴 애들 중에 내가 제일 잘 생긴 것 같대' (Feat. K.Will)의 상큼한 상황이다. 의미 없는 자신감은 충만하다. 이렇게 우리 회사는 늘 'Day1'이다. 베조스 형님의 신조를 정말 장난 아니게 웬만한 회사보다 잘하고 있다.
그러면, 아주 막 미국 대학 출신들로 베트남 멤버를 채우면 문제가 해결이 시원하게 되나? 안 된다.
3. 풀 리모트
각자 집에서 업무 중이다. 한국, 베트남으로 애초에 국가가 나뉘어 있다. 만날 수가 없지. 베트남 조직도 주 1회 출근하는 상황이다. 만나서 얘기하는 상황이 별로 없다. 뭐랄까 어느 정도 Free for All 상황이다.
그러면, 화상 회의를 아주 그냥 강력하게 제도화하고 대화 빈도를 높이면 뭐가 되나? 안 된다.
4. 더 못 알아 듣겠다, 화상 회의
아니, 솔직히 비언어적 신호가 다 차단되면 내가 일단 베트남 멤버들 영어를 온전히 다 알아들을 수가 없다. 이게 제일 문제긴 한데, 베트남 멤버들도 아직 업무 경험이 많지 않은 멤버가 다수라 (눈치껏 보자면) 회의가 수다로 변질되는 거 한 순간이다. 원래라면 내가 모더레이팅 해야겠으나, 여서 1번으로 돌아간다. 무한 루프!
그러면, 이쯤에서 무한루프 디버깅을 해서야 소용이 없다는 귀한 깨달음을 얻고,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없나 찾아보는 게 생산적이다.
사실 이쯤 되면 여기서 IT 서비스 만들고 스타트업 한다는 것 자체가 기행이거나 망상이거나 뭐 대충 그런 거 아닌가 싶겠지만, 사람이 또 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게 된다.
여기까지 열심히 썼으니까, 돌파구는 다음에 써보자.
글은 너무 길면 안 된다. 그러면 읽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