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 블로그 옮기기>
Nothing is permanent thing in this wicked world,
not even our troubles
-Charles Chaplin
아는 사람은 아는 그 라디오 프로그램.
정지영의 "Sweet Music Box".
내가 굉장히 격하게 아끼던 프로그램이었다. 아니 사실 이 프로밖에 듣지 않았다.
내 이상형 리스트에 '목소리가 아름다운 여자'를 추가시킨 장본인.
외모도 출중하거니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있자면
오랜 여정뒤에 내 고향, 내 집에 돌아온 그런 편안함을 줄 정도였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 군대, 제대 하고도 ...
자주는 아니었지만 어느날 문득 12시 넘어서 누웠는데 잠이 안올 경우
라디오 저편엔 항상 그녀가 있었다.
그런 그녀가 떠났다.
수많은 애청자들의 아쉬움속에서,
무슨 알수없는 개편에 의해 결국 10여년만에 마지막 방송을 하고 떠났다.
마지막 방송때 말을 잊지 못하고 펑펑 우는 그녀의 목소리를
며칠전에야 다시 듣기로 들을 수 있었다.
영원히 그곳에 있을것만 같은 그녀도
결국은 자리를 비우고 말았다.
한용운 시인이 그랬듯,
우리는 만날때 헤어질 것을 예상한다.
어떤 운명적이고 아름다운 만남에도 이별은 존재하기에
우리는 영원히 행복할 수 많은 없다.
어느새 처음 내가 왔을떄의 황량하고 축축한 공원은 가고... 아름다운 계절이 왔다.
처음 벤쿠버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 날을 상상했다.
드디어 모든 업무를 마치고
이 도시를 떠나는 날.
내 상상속과는 너무나 다른 결과와 함께 떠나게 됬지만
그래도 막상 갈때가 되니
이 지긋지긋한 악연의 도시도
알게모르게 내 뒤끝을 붙잡는다.
벤쿠버에서의 마지막 날.
여기와서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대부분의 일들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았고
그중 몇번은 큰 사고도 있었다.
글에 적어 올린 이야기들도 있고
차마 그러지 못한 참담한 이야기들도 있다.
매일같이 내리는 비와
위에 적은 여러가지 이유가 어우러져
나에게 벤쿠버를 싫어할 조건을 제공해주었다.
비싼 물가, 적은 시급, 부족한 일자리부터 시작해서
너무 많은 한국인(개인적으로 Robson st 를 굉장히 싫어하는데 번화기인 동시에 한국인이 제일 많아서 그렇다)
무섭진 않지만 불쌍한 홈리스들, 비싼 집세와 어글리코리안 등등
사실 세어보자면 수도 없이 많은 이유가 있다.
근데 참 신기한게
군대도 그렇게 토나온다하면서
막상 제대할때 되면 뭔가 시원섭섭한것이
사람은 어느 곳이든 시간이 흐르면 정붙이고 적응하기 마련인가 보다.
시애틀에 잠시 다녀올일이 있어
짐을 이것저것 챙겼는데,
버스타고 그레이하운드 역까지 갈 돈이 아까워서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했다.
집에서 자전거를 끌고 나와 배낭을 멘 채로
Main st 에 잇는 그레이하운드 역까지 해변을 따라 나있는 자전거,산책용 도로 를 달리기 시작했다.
자전거 타고 바닷가를 가다가 그랜빌다리밑에서
시애틀 갈때와 올때 그렇게 2번 그곳을 지나갔는데,
갈때는 아침햇살이 올때는 석양이
어찌나 그리 아름답던지.
그제서야
내가 수많은 사람들이 관광하러 찾아오는 아름다운 도시에 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서부터 여기서 겪었던 크고작은 비극들 대신
소소한 일상의 재미와 기적같은 인연들을 되돌아 볼수 있었다.
나는 나쁜일도 많이 당했지만
많이 피하기도 했다.
어떤 집은 내가 이사간 후 며칠 후 , 누군가의 실수로 불에 홀라당 타버렸단다.
또 어떤 집은 내가 이사가고 나서 1달 후, 계약자의 도망으로 인해 다들 밖으로 내쳐질 위기에 쳐했단다.
이 두가지 비극을 피한것으로도 굉장한 게 아닐까.
만약 내가 벤쿠버로 오지 않았다면,
수많은 호스텔중 센트럴 호스텔에서 자지 않았다면,
3째날 아침 한국인 형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 형이 추천해준 도서관 영어프로그램을 그냥 흘려들었다면,
거기에 선생님인 Ruth에 추천으로 VCC를 신청하지 않았다면,
인터뷰를 제대로 못하거나 너무 잘해서 low advanced 반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질문하는걸 싫어하는 성격이라 매일같이 선생님인 Tanya와 얘기하지않았다면,
그녀에게 오로라를 보고싶어 북쪽으로 가고싶단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Tanya 의 동생인 Cindi가 나를 흔쾌히 초대하지 않았다면....
난 Alaska 는 커녕, 캐나다에 와서 눈 한송이도 제대로 못보고 돌아갔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생에 있어 수많은 인연과 전환점들은 예상하고 기대할 수 없다고.
오직 모든것이 지나간 후 뒤돌아 봤을때에
그것이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이었음을 알 수 있을 거라고.
내 영어실력이 그대로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Tanya는 나만 몸ㅅ느끼는 거지 굉장한 발전이 있다고 말해줬다.
여기 오기 전과 후, 고생만 죽어라 했지 달라진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처음 와서 통장에 2000달러가 있음에도 일을 못구해
벌벌떨고 걱정만 하던 나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달랑 500불도 안되는 돈으로도 걱정보단
기대로 가득찬 북미일주를 준비하는 내가 여기에 있다.
벤쿠버 Water st. 일명 개스타운. 내가 찍은건데...역시 포샵의 효과.
사실
근심과 걱정이란 끝나지 않는다.
내가 고등학생일때는 수능과 여자친구등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고
군대에선 어떻게 하면 좀 편하게 지내나 맨날 걱정했듯이
마치 삶에 있어 고민과 걱정, 불행과 사고들은 끊임없이 영원히 계속되는듯 하다.
내가 여기서 배운건
근심과 걱정을 날려버리는 방법이 아니라,
그것이 언제 찾아와도 흔들리지 않고 맞이할 수 있는 법이었다.
멋지게 견디다 보면 어느새 영원할것 같던 걱정도 불행도 언젠간 그저 얘깃거리에 지나지 않을테니까.
20세기의 위대한 코미디언 찰리 채플린이 말했다.
"이 불안한 세상에 영원한것은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우리의 걱정까지도."
우리는 만날떄 헤어질 것을 알기에
헤어지기 전까지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게 된다.
정지영씨가 떠나고 나서야
우리는 그녀와 만나는 2시간이 얼마나 멋진 순간이었는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이별이란,
끝이란,
삶에 있어 순간순간을 감사하게 소중히 보내게 만드는
인생의 선물중 하나가 아닐까.
그 선물이 있기에
나는 벤쿠버를 사랑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반년이 넘는 기간을 버텨내어
지금의 나를 여기 있게 해준
수많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THANKS TO
내 여행을 가능케 해준 태모형님
이 모든 길의 시작을 도와주신 삼촌,외숙모 태수와 윤수.
벤쿠버를 제대로 체험시켜준 슬기, Wei와 남자친구
벤쿠버초보자를 지도해준 경미
카메라때문에 너무 신세진 헐랭이
군대에서 여기까지ㅡ 질긴 인연의 용화와 BBK
잊지 못할 단칸방 생활의 켄과 데렉
내 몸을 치료해주고 기름지게 해준 청한의원샘
잘데 없을때마다 재워준 동욱이형
인생의 정수를 가르쳐준 정훈이형
자전거때문에 2번이나 신세진 Enrique
2주만의 베스트프렌 봉주형
Volunteer 를 즐겁게 해줬던 지현이
많은 가르침과 조언을 해주신 제갈엽교수님
영어가 뭔지 알게 해준 Tanya
내 친절한 친구가 되준 아랍의사 Kashy
굶주린 나를 이란음식으로 배불리 해줬던Eli
첫 캐내디언 친구 Amy
호스텔에서 만난 친절한 첫 외국인 친구 Tom
몬트리올을 정복케 해준 Jennifer
바다건너에서 온 유일한 편지의 주인공 정희
생일이라고 예까지 전화해준 친구들,
그중에서 특히 내가 잠결이라 그냥 끊어버려 아직도 미안한 회사원정인씨
끝으로
한국에 있는 모든 친구들과
사랑하는 가족, 특히 내 동생.
I LOVE YOU&THANKY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