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행복에 무관심한 삶을 대하는 자세
자연은 잔인하다, 아니 자연은 우리에게 무관심하다. 이 무관심을 우리는 잔인하다고 느끼곤 한다.
몰아치는 폭풍우로 집을 잃거나, 산불에 휩싸여 수많은 생명들이 사라지기도 한다. 가뭄, 홍수 등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굶주림으로 우리를 괴롭힌다.
이 자연이라는 세계 속 우리의 삶 또한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 가정형편이 어려워져 밥을 굶기도 하고, 갑자기 교통사고가 나서 다치기도 한다.
가장 사랑하던 존재를 먼저 떠나보내고, 성공의 문턱에서 좌절하기도 한다.
하나하나 슬프도록 잔인하다.
자연과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눈부시게 아름답기도 하다.
봄의 설렘을 닮은 벚꽃의 향연,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고요한 겨울 왕국,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별밤 속 은하수는 우리를 벅차게 만든다.
태어나자마자 내 손가락을 꼭 쥐는 갓난아이,
혼자가 아니라 서로 사랑한다는 걸 알게 된 연인의 탄생,
나를 구원해준 기적 같은 인연들, 여러 번의 실패 끝에 만난 값진 성공…
잔인하고 차가운 뒷면에 이런 아름답고 따뜻한 면도 있다.
문제는 삶이라는 이 뗄레야 뗄수 없는 동반자는, 이러한 일을 겪어내는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를 좋아해서 기쁘게 해주고, 싫어해서 슬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랜덤하게 다양한 사건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럼 그런 삶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
한강 작가의 책 내용 중, 오래전 남편과 아이를 낳아야 할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부분이 있다.
“세상이 아름다운 순간들이 분명히 있고 현재로선 살아갈 만하지만… 아이가 그 생각에 이를 때까지, 그때까지의 터널을 어떻게 빠져나올지, 과연 빠져나올 수 있을지. 내가 대신 살아줄 수 있는 몫도 결코 아닌데 어떻게 그것들을 다시 겪게 하느냐?”
작가가 묻자 남편이 답했다.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아. 여름엔 수박도 달고, 봄에는 참외도 있고, 목마를 땐 물도 달지 않나. 그런 것 다 맛보게 해주고 싶지 않아? 빗소리도 듣게 하고, 눈 오는 것도 보게 해주고 싶지 않냐?”
'남편의 말에 느닷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다른 건 몰라도 여름에 수박이 달다는 건 분명한 진실로 느껴졌다. 설탕처럼 부스러지는 붉은 수박의 맛을 생각하며 웃음 끝에 나는 말을 잃었다.'
---
얼마 전 우리 부부에게도 첫 아이가 태어났다.
아직 100일도 안 된 아들을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우리 아이는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갈까?
우리 가족은 앞으로 삶이 주는 기쁨과 슬픔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우리에게 늘 무관심하고 앞으로도 무관심할 삶에게 무언가 요구하고 불평하는 인생이 좋을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우연히 주어지는 차가움을 견뎌내고, 우연히 주어지는 따스함을 만끽하는 것이지 않을까.
삶에서 만날 어둡고 긴 터널을 두려워하고 괴로워하기보다는 한여름 달콤한 수박 맛에 흥겨워 어깨춤을 출 줄 아는 것.
그것이 내가 선택한, 그리고 우리 아이에게 바라는 단 한 가지, 이 무관심한 동반자를 대하는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