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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일의 기분 Jun 16. 2020

200529 PC

[PC]

내가 페미니즘에 큰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계기는 대략 2016년을 전후로 트위터에서 큰 파도처럼 쓸려왔던 여성차별과 여성혐오에 대한 자기고백들이었다. 

하지만 PC(정치적 올바른 political correctness)라는 단어를 처음 인식하게 된 것은 그것보다 조금 더 전의 일이다. 2010~2011년 정도로 기억하는데, 대학시절 전공 선택 과목의 수업시간의 일이었다. 당시 교수님은 자신이 강의를 하기 전에 했던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교수님은 국립국어원(?) 같은 곳에 소속되어 음성인식 관련 연구를 했다고 한다. 

사람이 말하는 자연언어(발화)를 텍스트로 전환하는 것에 언어학적으로 도움을 주는 일을 하셨다고 한다. 지금은 인공지능 비서는 물론 카카오톡에서도 음성 인식이 정말 일상적으로 활용되고 있으나, 당시만해도 이렇게 활성화가 되어 있지 않아서 그 이야기가 무척 흥미롭게 들렸다. 같은 단어를 말해도 사람마다 발음하는 것이 조금씩 다른데 어떻게 그것을 동일한 텍스트로 인식하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무척 흥미로웠다. 

그리고 자연언어의 반대 개념인 인공언어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자연언어는 간단히 말하면 우리가 일상 생활 속에서 쓰는 언어 그 자체다.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이 모두 자연언어다. 반대로 인공 언어는 사람이 특별한 목적을 위해 인공적으로 만든 언어를 뜻한다. 대표적인 인공언어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가 있다. 

이런 설명을 하다 갑자기 교수님은 PC 언어가 무엇인지에 대해 학생들에게 물었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방금 전까지 하던 인공언어의 영향에 빠져 각종 프로그래밍 언어를 답하기 시작했다. 자바, C+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교수님은 그런 대답들에 '틀렸다' 고 답했고,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PC는 바로 정치적 올바름의 약자였다. PC언어는 어떤 것이든 편견(인종, 성별 등)이 없는 언어 사용을 지향하는 것이었다. chairman을 chairperson으로, policeman을 police officer로 사용하는 것 말이다. 

언어는 그 사회의 가치관을 그대로 드러낸다. 일례로 전쟁을 겪으면 사람들의 성정은 더욱 거칠어지고, 그것은 언어에 그대로 영향을 준다. 임진왜란을 겪으며 평음은 더욱 거친 경음과 격음이 된다. (물건을 베고 써는 날카로운 쇠붙이를 뜻하는 단어 '갈'은 '칼'이 된다. 옛말 '갈'은 '갈치'라는 단어에 흔적은 남겼다.)

교수님의 PC언어에 대한 설명 속에서 나는 우리 사회가 가진 많은 성차별적 불평등을 처음으로 직면한 듯한 느낌이었다. 사회적 강자인 남자에게 이러한 자각의 경험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랬기 때문인지 PC언어에 대한 이야기는 대학 시절에 들은 수많은 수업들 중 가장 인상적인 내용 중 하나였다. 

최근 결혼을 하고 나서 고민이 들었던 것들 중 하나는 새로운 가족들 (배우자의 가족들) 에 대한 호칭이었다. [시어머니 - 장모님 / 시아버지 - 장인 어른 / 새언니 - 처형 / 도련님 - 처남] 등 단순히 따져봐도 남자의 언어와 여자의 언어는 너무 많이 달랐다. 그래서 배우자와 고민을 하고 얘기해 본 결과 호칭들을 최대한 남자쪽에 맞춰 통일해보기로 했다. 배우자의 부모님은 그냥 '아버지, 어머니'로 배우자의 형제들은 '언니, 형님' 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내가 그나마 이러한 부분에 스스로 고민을 할 수 있었던 첫 계기는 아마 대학때 들은 그 수업이 아니었을까. 단 한 번 수업을 들어 지금도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는 교수님이시지만, 그의 강단 있던 말투만큼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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