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는 다양한 감각자극이 필요한데 그 과정을 통해 자기 몸을 파악하게 되기 때문이다. 오르고 내리고 점프하고 만지면서 우리 몸은 점점 크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런 경험의 양이 줄어서일까? 생각이 자라나지 못한 채 몸만 커버린 어른이 되어있었다.
무엇을 위해 열심히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앉아서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니까 시키는 대로 열심히 공부만 했다. '00 이를 이기리라.' 내 목표는 참 단순했다. 나 혼자 친구를 라이벌로 생각하고 경주를 펼쳤다. 라이벌이 성장의 촉매제가 되어 내가 원하던 목표는 이뤘지만 생각만큼 행복하진 않았다. 나이를 먹고 20살 성인이 되었지만 내 목표는 여전히 친구를 이기는 것이었다. 온실 속 화초로 자란 나는 내 욕망과 엄마의 욕망을 구분하지 못하고 엄친딸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 내가 나를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어떤 음악을 들을 때 행복한지, 꽃 냄새 맡는 것을 좋아하는지 아닌지 등 내가 선호하는 감각 경험이 무엇인지 조차 몰랐던 것 같다. 나는 뭘 좋아하지?
이제는 알게 되었다. 릴리처럼 향이 진한 꽃냄새는 싫어하고 스토크 같은 은은한 향을 품기는 꽃을 좋아한다. 나는 글을 쓸 때 행복한 사람이고 필라테스와 같은 정적인 운동을 할 때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향과 소리에 민감해서 주말에 백화점 푸드코트를 가는 것은 싫어하지만 아기자기한 물건을 구경하는 것은 너무 좋아한다. 아삭 거리는 식감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둥그런 구멍이 많이 뚫려있는 연근은 싫어한다.
브런치에 글쓰기를 하는 것 이외에 내 일상을 더 잘 소화시키기 위해 오늘부터 블로그도 시작했다. 인스타그램, 브런치, 블로그 3개를 모두 잘 운영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만 한다고 알 수 있는 건 없다. 판단은 시작한 뒤로 미루고 일단 해보는 거다. 이런 과정이 내가 나를 더 잘 알게 해 주었고 나를 더 잘 알게 되자 공허함을 느끼는 순간이 줄었다. 짜증이 나거나 화날 때마다 일기장을 더 찾게 되는데 그때 내 감정을 잘 소화시키면 나를 더 잘 알게 된다고 생각해서다.
왜?
'왜 이렇게 화가 나지?' '왜 이런 마음이 드는 걸까?' 나를 더 잘 알 수 있는 찬스다. 왜를 생각하는 것은 사실 치료할 때도 필수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관찰력이 커지면서 아이를 더 잘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왜'라는 단어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계속 질문하다 보니 지금은 정규직이 아닌 프리랜서의 삶을 살고 있다. 한마디로 비정규직. 같은 직종에 있더라도 병원, 복지관, 센터 등 장소가 다를 수 있고 계약직과 정규직처럼 조건이 다를 수 있다. 나는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정규직의 삶에 나를 밀어 넣는 것보다 불안할 수 있어도 내가 사부작 거리고 내가 한 일에 바로 성취감을 느낄 때 행복하다는 것을 안다. 나는 지금 너무 행복하다. 앞으로도 왜라는 질문을 계속하며 내가 나를 더 알아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