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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당 송영대 Feb 08. 2018

주역의 곤 괘와 박 괘에 어둠의 탈출구가 있다.

이직의 시점과 슬럼프에서 나오는 법


臀困于株木(둔곤우주목) 入于幽谷(입우유곡) 三歲不覿(삼세부족)

직역하면 주목(株木, 그루터기) 위의(于) 엉덩이(臀)가 곤란하니(困) 깊은 계곡에 들어가(入于幽谷) 오랫동안(三歲) 밖을 돌아보지(覿) 않는다(不)는 말이다. 주목 위의 엉덩이가 곤란하다는 말은 자신이 지금 앉아 있는 지위가 스스로와 맞지 않아 곤란을 겪는다는 뜻이고, 깊은 골에 들어가 오랫동안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은 그 지위를 버리고 깊이 은거한다는 말이다.

아무리 좋고 비싼 옷이라도 자기 몸에 맞지 않으면 불편하고 어색해 보이는 법이다. 일이나 지위도 그와 같다. 아무리 큰 권력과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자리라 해도 자기에게 맞지 않으면 심신이 고생스럽고 어려워진다. 현재의 자리가 이렇게 나와 맞지 않는 것이라면 마땅히 그 자리를 버리고 은거하여 마음을 우선 평안하게 가라앉힐 일이다. 세속을 멀리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내실을 다시 다져야 한다. 한 3년간 그렇게 한다면 다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터이다.

- 서대원 《주역강의》 곤(困) 괘 풍이 중에서 -


직장인이라는 가면을 벗어던지기 몇 해 전이었다. 감사(監査) 대상이 되었다. 협력업체로부터 골프와 술 접대를 받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당시 10여 명의 팀원을 이끄는 리더의 역할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감사팀은 협력과 접대에 차이를 두지 않았다. 골프와 술이 있는 자리라면 협력과 접대를 동일한 것으로 판단했다.

기업 간에 협력하여 일을 하다보면 실무자들은 서로의 화합과 일에 시너지를 위해 단합을 하곤 한다. 단합의 자리는 대부분 술자리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기정사실이다. 나 또한 협력사와의 단합의 자리에 자연스럽게 함께 했다. 그것은 팩트 즉 사실이다. 하지만 회사에 부끄러운 행동은 한 적은 없었다. 물론 나 자신에게도 부끄러운 행동은 없었다. 하지만 감사(監査)에서는 인정되지 않았다. 협력자와 골프를 치고, 술자리를 한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비용을 협력사가 처리한 것은 무조건 접대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타겟 감사(監査)라는 것이 있다.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해 특정 사람을 지정해 결과를 미리 정해놓고 하는 감사(監査)를 뜻한다. 그들이 펼쳐놓은 그물에 딱 걸린 것이었다.

약 8~10시간 정도 취조를 받았다. 감사(監査) 결과 일주일간 직무정지 징계를 받았다. 징계 이후 리더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고, 기술직군에서 영업직군으로 직무를 바꾸어야 했다. 2년 동안 영업직군에서 업무를 맡아 했다. 적성에 맞지 않았다. 남의 옷을 빌려 입는 듯했고,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듯했다. 그때 우연한 기회에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 자리는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15년 동안 쓰고 있는 직장인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미련 없이 직장을 떠났다. 빛 좋은 대기업의 직장인 자리와 팀의 리더 자리를 버리고 속세를 떠나 은둔 시절을 보내며 자기수양에 집중했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선생은 저서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에서 “시절인연(時節因緣) 시절이 맺어 준 인연이라는 듯. 그런데 시절은 쉬지 않고 변한다. 매년의 운도 바뀌지만 사람마다 대운이 또 계속 바뀐다. 대운이란 10년마다 전체 운의 흐름이 크게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대운의 변화가 큰 경우, 이전에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한 삶을 살기도 한다.”라고 했다. 세속을 멀리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내실을 다시 다지는데 8년의 시간을 보냈다. 이제 2년을 더 보내면 10년이 된다. 대운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 사뭇 기대되는 시점이다.



剝之(박지) 无咎(무구)

‘剝(박) 剝之(박지) 无咎(무구)’의 줄인 구절이다. 직역하자면 박(剝)은 박(剝)으로 대해야 허물이 없다는 말이니, 어려운 때에는 오히려 모든 것을 다 벗어버리면 박의 기운을 이겨낼 수 있다는 뜻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처하라는 말이 아니라, 박의 기운에 순응하면서 먼 미래를 보고 고통을 인내하라는 뜻이다. 모든 것이 파괴되는 와중에 가진 것을 지키려 하고 더 큰 욕심을 부린다면 지키지도 못할 뿐 아니라 몸과 마음이 상해 후일을 도모하지도 못하게 된다. 욕심을 버리는 것이 박을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 서대원 《주역강의》 박(剝) 괘 풍이 중에서 -


속세를 떠나 자기계발과 인문학 공부를 통해 자기수양을 해 온지 8년이다. 지금까지 오는 동안 나름 참 많은 경험을 한 것이 사실이다. 슬럼프에도 꽤 많이 퐁당퐁당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다.

작년 2월에 있었던 일이다. 7년 동안 단 한 번의 빠짐없이 ‘배움 나눔’활동으로 해오던 월요편지를 중단했다. 글쓰기에 대한 고통이 극단까지 다다른 까닭이었다.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짐을 덜어내니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마치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나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직장인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자유인이 된지 7년이 되었건만 아무것도 이루어 놓은 것이 없다는 허탈감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슬럼프가 아닌 자괴감에 빠졌다.

꽤 많은 도전을 해봤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다.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삶에 대한 덧없음 즉 인생무상(人生無常)의 상념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할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될 때로 되겠지 싶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단 한 가지. 새벽에 일어나 약 5분 정도 걸리는 고전 하루 한 구절 읽고 쓰기의 끈만은 놓지 않았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먹고, 싸고, 자는 것만 반복했다. 

그렇게 6개월을 흘렀다. 그때 내려놓음의 대부(代父)인 노자를 만났다. 도덕경을 한 글자 한 글자 곱씹으며 읽었다. 급하지 않게 아주 천천히. 대략 100일 정도 걸렸다. 도덕경을 읽고 나니 욕심, 욕망, 집착과 같은 찌든 때들이 씻겨 나갔다. 마치 소나기가 미세먼지를 깔끔하게 청소해 주듯 말이다.

월요편지를 중단한지 1년이 지났다. 어둠이 내려앉아 깜깜한 혼돈이 사라지고 빛이 드리우며 평정심을 되찾았다. 예전 슬럼프에 빠졌다가 나온 것과는 그 느낌이 무척 다르다. 안 써지던 글도 조금씩 써진다. 읽히지 않던 책도 다시 읽혀진다. 《귀곡자》를 읽었고 《묵자》를 읽고 있으며 《주역》에 곁눈질을 하고 있다.

4년 전 출간한 나의 첫 번째 책 《행복은 희망에서 싹튼다》에도 소개 했던 구본형소장님과의 인터뷰에서 ‘슬럼프에서 빠져나오는 해법’에 대한 내용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살다보면 굴곡이 있는데 구태여 빨리 빠져나오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 지론이예요. 이유 없이 일이 잘 풀릴 때도 있고, 잘 풀리지 않을 때도 있죠. 어제까지 잘 되던 일이 오늘은 잘 안 되는 경우도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빨리 빠져나오려고 하지 않아도 되요. 그냥 지켜보고 왜 그런지 이유도 알아보고 그러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곧 배움이라고 생각을 해요. 살다보니까 인생에서 원하던 원하지 않던 많은 일이 생겨나는데 모든 일의 과정이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일이 목표와 계획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라는 말도 있듯이 슬럼프가 있다면 그 슬럼프를 과정이라 생각하고 즐기는 것이 정답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역의 박(剝) 괘에서 말하는 ‘박(剝)은 박(剝)으로 대해야 허물이 없다.’와 그 맥을 같이 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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