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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Jul 16. 2020

너희들 잘 되라고 때리는 거야

존중하라, 존중받는 직원이 일을 즐긴다

요즘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체벌이 일상화 되어 있었다. 시험 점수가 낮아서, 숙제를 안해서, 지각을 해서, 수업 준비를 소홀히 해서, 수업시간에 떠들거나 잠들어서, 청소를 안해서, 옷차림이 단정하지 못해서 등 각양각색의 이유로 교사는 학생을 때렸다. 그러면서 저 말을 했다. 다 너희를 위해서 때리는 거야. 이건 사랑의 매야. 지금 보니까 전형적인 가정폭력범의 대사 같다. 사랑하니까 때리는 거야. 


개별적인 잘못 뿐만 아니라 단체기합이라는 것도 흔했다. 한 두명이 수업시간에 떠들자 갑자기 모두 복도로 나오라고 하더니 수업 끝날 때까지 단체기합, 엎드려 뻗쳐 실시. 잠깐, 기합, 이 단어 무슨 뜻이지?



기합 氣合 

명사

1. 어떤 특별한 힘을 내기 위한 정신과 힘의 집중. 또는 그런 집중을 위해 내는 소리.          

2. 군대나 학교 따위의 단체 생활을 하는 곳에서 잘못한 사람을 단련한다는 뜻에서 정신적ㆍ육체적 고통을 가하는 것.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가끔 이렇게 다 안다고 생각했던 단어 뜻을 찾아서 찬찬히 살펴보면 재미있는데, 지금은 재밌지도 않고 그냥 불쾌하고 기분 나빠졌다. 잘못한 사람을 단련하기 위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가한다니. 그 시절 교사들은 겨우 미취학 간신히 면한 아이들에게 어떻게 그런 폭력을 매일같이 가할 수 있었나, 돌이켜보니 정말 놀랍다. 아마 그 교사들도 그런 폭력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문제의식을 못 느꼈을테고, 그렇게 따지면 그들도 일종의 피해자일 수도 있고, 아무튼.


갑자기 어린 시절 체벌의 기억을 되살린 건, 최근에 읽은 이 책 때문이다. 


존중하라 존중받는 직원이 일을 즐긴다

폴 마르시아노(이세현 역), 처음북스 (원저는 2010년, 국내 발행일은 2013년)



조직에서 직무성과와 조직몰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동기부여라고 흔히들 말한다. 동기부여는 조작적 조건화, 즉 당근과 채찍으로 노새를 앞으로 달려가도록 만드는 것인데, 문제는 허즈버거의 위생이론에서도 지적하지만, 전통적 성과보상제도가 실제로는 그다지 효과가 높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산업의 중심이 더이상 제조업일 수 없는 요즘에 와서는 조직 행동론에서 동기부여는 점점 그 중요성이 낮아지는 추세이다. 다양한 문제상황이 수시로 닥치는 요즘의 업무 환경에서 유연성과 적극성을 가지게 하려면 동기부여만 가지고는 조직 몰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 그러면 동기부여 말고 다음 선수는?


'존중하라'의 저자는 조직 구성원의 조직몰입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존중이 필수라고 말한다. 일 잘하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 존중해야 한다는 말인데, 리더가 구성원을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게 책의 요지이고, 결국은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 빨간 띠지에 "존중 받는 직원이 되고 싶은가?"라고 묻고 있는데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본다. (물론 책을 팔기 위해 모수가 더 많은 쪽으로 타겟팅을 했을 거라고 짐작은 하지만.) 


변해야 하는 것은 존중 받을 직원이 아니고, 존중 해야 하는 리더이다. 책 속의 케이스를 보아도, 솔직하고 열린 자세로 직원들과 소통하여 어려움을 이겨낸 경영자와의 대화나 직원이 자극받았으면 해서 인사고과를 최하로 준 정신 나간 상사로 인한 피해를 수습한 사례 등이 잔뜩 있다. 조직에서 정신 차려야 할 쪽은 부하직원이 아니고 상사이고, 피고용인이 아니고 고용인이다. 하지만 대부분 자기 반성과 자기계발에 매진하는 쪽은 일개 직원이고, 한 회사의 대표 쯤 되면 훈계와 타박이 일상이며, 자신의 따끔한 충고 한 마디가 젋은 신입직원에게 좋은 자극이 될 거라고 흐뭇해 하기 마련이다. 사실은 그 순간 직원은 정.뚝.떨, 그리고 이직을 결심하게 되는데...


어린 학생이었던 그때 내 마음 속을 떠올려보아도, 체벌이 내 행동 교정 및 학습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을 많이 미쳤던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체벌을 하는 교사에게는 칭찬을 받아도 그다지 기쁘지 않았다. 명령권자에게 복종하여 그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대가로 주어지는 칭찬에 나라는 인간에 대한 존중이 있을 리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남녀노소할 것 없이 자신에게 향하는 타인들의 존중과 배려를 생각보다 예민하게 감지한다. 더군다나 체벌을 통한 행동 교정이란 결국 육체적 고통에 의한 공포심을 조장하여 강제로 억압하고 굴복시키는 수단일 뿐이다. 거기에 사랑이나 존중, 배려 같은 단어가 들어갈 공간이 있을까. 학생을 위해서 매를 든다는 말은 그저 때릴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자가 희미하게나마 존재했을 수도 있는 죄책감을 덜기 위한 변명 내지는 무의미한 말버릇에 지나지 않을 뿐인 것이다.


회사인사관리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 갑자기 좋지도 않은 옛날 생각이 나버렸다. 공감과 힐링에 대한 책이 아니고 전문가가 케이스를 들어 설명한 실용서라서 오히려 더 실감이 나는 것 같다. 정신적, 육체적 자극 내지는 고통이 개인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라는 검증되지 않은 명제를 굳고 믿게 있는 사람들은 이후로도 주변에 꾸준히 존재했다. 뭔가 울컥하고 화가 나는 한 편, 나 자신도 아마 그런 성향이 알게 모르게 내재화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를 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어린 시절부터 축적된 해묵은 원한과 상처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소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보자.


그냥 존중하라는 표현만으로는 애매하므로, 책에서 설명한 실천방안에 대한 부분을 정리해본다.



[RESPECT 모델 7대 핵심 요소]


▷ Recognition, 인정

     긍정적 강화, 즉 칭찬할 것

     칭찬은 적극적이고 효과적으로

     당신의 칭찬이 다른 팀원에게 동기부여가 됨.


▷ Empowerment, 역량강화    

    직원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반응할 것

    팀원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관리해 주고 해결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

    역량을 올릴 수 있는 방법(업무교대, 교육 기회 제공 등)을 적극 활용

    회사 상황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공유할 것


▷  Supportive Feedback, 긍정적 피드백

    피드백은 긍정적으로. 비판이어도 긍정적인 상태 유지

    피드백은 도움을 주기 위해 하는 것임을 확실히 함.


▷ Partnering, 파트너십 형성

    의사결정에 참여시킴.

    조직의 정보를 공유

    조직의 구성원이라는 느낌

    부서 간 업무 교대로 타 부서 이해


▷ Expectations, 기대

    기대치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관리자에 대한 직원들의 기대치 충족시킬 것

    목표는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하도록 설정

    기대치와 만족도는 문서로 관리


▷ Consideration, 배려

     배려는 관심과 행동

     배려와 충성심은 비례함.

      직원의 개인사를 관리하되 사생활 침해라고 느끼지 않게 할 것

    

▷ Trust, 신뢰

     신뢰해야 존중 받는다고 느낌.

     투명하고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

     언제나 직원을 보호하고, 직원의 말은 항상 사실이라고 생각할 것




참고로 이 책의 원제는 Carrots and Sticks Don’t Work, 

당근과 채찍은 안 먹힌단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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