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지금까지 회사를 다닌 이유
회사가 나에게 주던 기쁨
어쨌든 나는 2006년에 입사한 회사를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얼렁뚱땅 취직을 해서 어리버리한 상태로 시작한 직장생활이라 파랑새를 찾는 치르치르와 미치르처럼 '다른 게' 있을 거란 환상을 버리지 못한 채 아쉬운 마음 한편에 품고하는 직장생활이었다. 그럼에도 퇴사 버튼이 쉽게 눌리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첫 번째는 '밥벌이의 소중함'이다. 2006년 1월 21일 첫 월급을 받은 이후로, 회사는 한 달도 빼먹지 않고 내 통장에 일정 금액을 입금해 주었다. 그리고 1년에 한 번 보너스를 주고, 부모님 환갑, 언니 결혼, 내 결혼에도 꼬박꼬박 축하금을 주었다. 매년 건강검진을 해주고, (최근에 생긴 제도지만) 핸드폰 요금도 지원해 주고, 의료비도 일정 금액 한도 내에서 보상해 주었다. 물론 나의 노동에 대한 대가이고, 노동력을 계속 유지하라는 요구이니 내 가이니 딱히 고마워할 일이 아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에 필요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돈이 정기적으로 충전되는 건
대단한 심적 안정을 준다. 퇴사와 동시에 사라지는 이 모든 것은 생존의 문제다. 직장에서 주는 월급은 나에게 사람다움을 유지하게 해주는 근간이 되어왔다.
두 번째는 '자리에 대한 것'이다. 회사는 나에게 '자리'를 주었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나에게 질문을 했을 때, " XX 회사에 다녀요. 시스템 운영하는 일을 하고 있고요. 몇 년 차 정도 되었어요."라고 하면 상대는 나를 자신의 기준에 따라 어떤 위치로 인식한다. 내가 상대에게 나는 게으르긴 하지만 성실한 사람입니다. 빈둥대며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만큼 쇼츠에 빠져있을 때도 많지요. 나는 여러 명의 친구가 있고, 음식은 삼겹살 술은 소주를 좋아합니다.라고 말을 한들 그게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 사회에 명명할 수 있는 어떤 자리가 있다는 것, 그래서 말을 더 보태지 않고 대충 가늠할 수 있다는 건 대단히 효율적인 부분이다. 그리고 직업이 있다는 사실에서 느끼는 효용감이 있다. 쓸모 있음의 느낌, 성취감, 사람들과 관계 맺음에서 오는 만족감과 즐거움, 소속감 등. 그래서 사실 두렵다. 나를 설명할 '사회적으로 통용할 한마디'가 없어지는 게.
세 번째는 '사람'. 팀 이름이야 계속 바뀌고 고객님, 근무위치도 계속 변했지만 큰 틀에서 하나의 설루션에 붙박이로 일했기 때문에 함께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 큰 변화는 없었다. 본부 밖을 나가본 적이 없으니.
같이 여행도 많이 다녔고, 회사 일 뿐만 아니라 삶의 고민도 많이 나눴다. 삶의 크고 작은 경조사를 함께 했고 시시껄렁한 농담부터 업무적인 얘기까지 공사를 넘나들며 친분을 쌓았다. 지금까지 무난하게 회사를 다닐 수 있었던 건 좋은 사람들 덕분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안 없음'이 결정적 이유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게 없었다. 해야 하는 일을 되게 열심히 하는데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사회나 가정이 나에게 원하는 바가 명확했고, 나는 그걸 수행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어려움이 없었다기보다는 적당한 피드백을 얻을 만큼의 역량과 자질이 있었다는 편이 맞겠다. 물론 외국어 고등학교를 떨어진다던가, 고시공부에 실패한다던가, 여전히 영어로 말하기 듣기가 안된다든가 하는 (굴곡이라 할 수 없는) 굴곡이 있었지만 엘리트 트랙이었다. 인문계 고등학교, 손가락에 꼽히는 대학교, 이름 들으면 아는(아나??) 회사에 취직했고, 남편도 대기업 다니고 아파트 있고 차도 있고 애도 있다. 트랙에 맞춰 살다 보니 그다음이 없었다. (사실 다음 트랙은 재테크 와 자기 계발인데, 내가 여기서 삐끗했다.) 아이 낳고 복직했을 때 되게 당황했었다. 다음이 뭐지?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런데 아침마다 출근하면 좋은 사람들과 일하고 한 달 지나면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는 회사.
그만 둘 이유가 딱히 없어서
지금까지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