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지금 퇴사를 결정한 이유
지금 하는 일이 하기 싫어서.
그렇다면 왜 지금일까?
18년 전부터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던 건 이거 말고 나에게 딱 맞는 다른 게 있는데 여러 가지 조건으로 그걸 못 찾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웃기지만 나는 내가 정말 안쓰러웠다. 자기 연민.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서 회사에서 일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느낄 성취나 성장을 놓친 측면도 있다.
과거와 미래만 보느라 현재를 못 본 어린 시절의 얘기다.
지난 몇 년간 이런저런 공부를 하면서 깨달았다. 나에게 딱 맞는 그런 건 없고 내가 딱히 안쓰러운 인생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내가 불쌍하지 않다. 내가 누리고 있는 것, 그럼에도 누릴 수 없는 것, 나에게 있어서 고마운 것, 없어서 아쉬운 것들을 객관화시켜서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생긴 덕이다. 그냥 나는 여기 있는 거다.
재미있는 건 자기 연민은 자기혐오와 동전의 양면이었다는 점이다. 내가 나를 불쌍하게 여기지 않게 되자 그렇게 벗어나고자 했던 자기혐오가 사그라들었다. 결국 엄마 얘기를 할 수밖에 없는데, 긴 서사는 원가족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고,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는 내가 한심하고 미웠다. 동시에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리는 내가 그렇게 불쌍할 수가 없었다. 사실 엄마의 행복은 엄마껀데, 어쨌든 내 사고회로는 그렇게 흘러갔다. 공부를 하면서 엄마의 행복은 엄마 꺼고 나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박을 내려놓자 내가 불쌍하지도 밉지도 않았다. 그냥 사십 대의 직장인, 어떤 여자, 엄마, 아내, 친구.. 그리고 부모님의 자식인 내가 있을 뿐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결과가 여기였고, 여기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걸 하면서 살면 되겠다 싶었고, 가정, 일, 개인 사이의 균형이 적당히 잘 어우러진 일상들이 이어졌다. 올해 초만 해도 언젠가는 퇴사할 거라 생각 헸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상황이 바뀐 건 올해였다.
4년간 아이를 돌봐주시던 이모님이 그만두셨다.
남편이 6시까지 퇴근할 수 있도록 출퇴근 시간을 조정해 보겠다고 했다. 대신 아이의 일정은 돌봄에 영어 피아노 미술 수영 등으로 채워 6시에 집에 돌아오게 했다. 남편이 늦는 날에는 내가 근무를 조정했고, 둘 다 여의치가 않은 날에는 이웃에 부탁을 했다.
혼자 학원을 다니게 된 아이는 장소를 옮길 때마다 전화를 했다. 일을 하다 울리는 전화기에 뜬 아이이름을 보면서 매번 깨달았다. 그동안 일을 할 때는 아이를 잊고 있었음을. 아이가 좋은 어른(시터)과 힘께 있으니까 믿었다고 생각했지 아이를 잊고 있는지는 몰랐다. 일상으로 더 훅 들아온 아이가 보니 훌쩍 커 있었다. 아이가 더 크기 전에 아이와 부대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일상에선 짜증만 늘었다.
파트리더가 되었다.
조직생활을 한다면 중간관리자는 한 번쯤 해볼 만한 일임은 분명하다. 해야 하는 고민들이 달라지고 회사가 돌아가는 구조가 더 선명하게 보이고 그 안에서 새롭게 배워가는 부분이 있다.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 상대 입장에서 좀 더 폭넓게 생각하는 법, 새로운 구조에 대해 고민하는 경험 등등 나쁘기만 한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앞으로 내가 해야 될 일들이 가늠이 되면서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고객에게 말도 안 되는 걸 말이 된다고 들이 밀고, 내 잘못이 있어도 아닌 척 밀어붙어야하고, 후배들에게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고, 업체가 들이미는 단가와 공수에 밀당을 해야 한다. 사실이 무엇이냐에 관계없이 그게 맞다고 믿어야 하고 그 논리들을 밀어붙일 근거들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고민을 해야 한다.
물론 오버고 육 바다. 내가 이렇게 까지 결연하지 않고 적당히 헤도 조직은 돌아가고, 대충 덮어놓고 지나가도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그때 다른 미봉책으로 덮으면 될 거다.
그럼에도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성과가 없어도 마진이 없어도 파일럿이니 괜찮다고 했던 프로젝트가 오버런 났다니 '왜?'라고 묻는 조직,
일이 넘쳐 사람을 투입해야 할 것 같다고 하니 네가 일을 비효율적으로 하고 있는 건 아니냐는 리더,
일을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하냐는 내 말에 "모두가 매니저님처럼 일하는 건 아니에요"라는 옆팀 후배.
내가 다른 사람 뒤통수치지 않으려고 해도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는 상황, 뒤통수 맞지 않기 위해 촉을 세우고 있어야 하는 일상에 적응하기엔 내가 부족하고 적응하고 싶지도 않다. 이런 상황에서 5년 후의 나를 떠올렸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까? '회사생활 다 그런 거지,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잖아' 라며 변해있을 내가 보였다. 자기 연민의 서사 그 시작에 서 있는 내가 보였다.
나에게 물었다. 내가 누구에게 사기를 치고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닌데 안 하고 싶은 건 안 해도 되지 않을까? 내가 지금 그만두면 우리 가족이 많이 힘들까? 소득 반토막에 대한 남편의 동의가 필요했다. 남편에게 부탁을 했다. 나 좀 쉬어가고 싶은데 너에게 기대도 괜찮겠냐고. Why not?이라는 간단한 답변.
덕분에 안 해본 짓 해보기로 했다.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