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기를 읽는 것이 이렇게 설레는 것이었나
2년 전 고수리 작가님과의 글쓰기 모임에 참여했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혜은 작가.
'씀'이라는 작은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젊은 작가분이었다.
처음 만나는 분이었지만 일기에 관한 책이라 하나 구매해 왔었다.
그리고 조금씩 아껴가며 책을 읽고 있었다. 사실 뭐 가끔은 잊어버리고 책을 읽지 않다고 어느 순간 다시 이 책을 읽곤 했다. 사실 나는 여러 책을 조금씩 같이 읽는 스타일이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이 책을 다 읽었다.
평범한 작가의 일기를 읽고 있노라면 꼭 내가 그녀의 방에 몰래 들어가 그녀의 책상 서랍을 열고 오래 된 일기를 몰래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더 짜릿했던 순간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작가 처럼 10년 일기를 구매했다. 작년 8월이었나보다. 물론 나는 작가처럼 매일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길지 않은 일기장의 매일의 칸에 그날 있었던 일들을 쓰기 시작하면서 다시 일기의 소중함을 느낀다.
예를 들면 지난 주 일기를 쓰는데 일 년 전에도 둘째 아이가 핸드폰을 쓰는 것에 대한 고민을 써 놓은 것을 보고 웃었다. 그날도 둘째 아이에 관한 일기였음으로.
2023년의 어느 하루는 물건이 많아 정리하는 것에 대한 일기를 써 놓은 것을 봤다. 같은 날 2024년에는 이렇게 썼다. '나 요즘 미니멀 라이프로 살려고 노력하는 중인데.' 꼭 2023년의 나에게 자랑하듯이 쓰고 있는 나를 보면서 10년 일기의 매력을 느꼈다.
특히 내가 재밌게 읽었던 부분은 바로 혜은 작가가 베를린에서 한 달간 살아가는 이야기에 대한 일기였다. 그녀의 일기를 읽으면서 또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녀와 함께 베를린에 앉아 있는 것만 같았다.
물론 책을 읽는 중간 중간 내가 쓰는 너무 노골적이고 유치한 일기와 작가가 쓴 고귀한 문장들을 비교하며 좌절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 책은 내게 일기를 계속 쓰도록하기에 충분한 동기부여를 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책 마지막 즈음에 있는 혜은 작가의 엄마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내게 뭔가 모를 위로를 주었다.
생각해 보니 몇 년 전 아주 작은 수첩에 적혀있는 엄마의 메모 같은 일기를 본 적이 있었다. 엄마도 일기를 쓰는 구나. 나에게는 꽤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왜 엄마는 일기를 쓰지 않을꺼라 생각했을까?
혜은 작가가 엄마에게 일기를 쓰라고 공책을 건내는 부분을 보면서 나도 생각했다. 내년에 한국에 나가면 엄마에게 꼭 예쁜 공책을 하나 선물 해야지 하고.
"매끼마다 밥물을 재는 손으로, 매일같이 서너 개의 약봉지를 뜯는 손으로 이제 펜도 쥐었을 생각을 하니 코끝이 시큰했다. 어쩌면 우리가 같은 시간에 일기를 쓰고 잠이 든 날도 있었을 것이다."-일기 쓰고 앉아 있네,혜은
엄마의 손을 보며 여러 감정을 느꼈던 혜은 작가의 마음이 내 마음에 와 닿는 것만 같았다.
일기를 쓰다가 중간 중간 내 열정이 식어진다면 이 책을 펼치리라. 그리고 일기를 다시 쓰리라.
일기쓰는 인간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