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넘어 도전한 모터사이클, 철 좀 없어도 됩디다.
20대 중 가장 별 것 아닌 이유로 우울해 하는 시기는 스물 아홉살이 되었을 때다. 스물 여덟 살 때까지는 그저 '우리 늙었다'라며 서로를 놀리고 웃는 정도다. 하지만 스물 아홉이 되면 다르다. 스물 아홉. 그 숫자엔 무언가 다른 게 있다.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스물 언저리부터 남 일인 듯 들어왔던 괴담의 현실에 들어서는 듯한 그 느낌.
늘 비어있던 통장 잔고인데 '이제 곧 서른인데 이것뿐이야?' 라고 생각하게 된다든지, 갑자기 부동산 시세에 관심을 가진다든지 하는 식이다. 어떤 친구들은 이미 결혼을 하고, 한(두) 아이의 엄마가 된 이후이기도 했다. 서른 살이 되는 걸 진지하게 두려워하는 이들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고, 집도 (당연히) 없으며, 당장이라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을 찾는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그럴 여유돈조차 마련해두지 않은 보통의 스물 아홉들이다.
사실 나는 서른 살이 되는 게 싫지 않았다. 물론 귀여운 월급 대비 무서운 월세, (당연히) 늘 비어있는 통장, 내세울 것 없는 직장 생활은 어릴 적 상상하던 30대의 내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그래도 싫지 않았다.
그냥 나이 한 살 더 먹는 거지 뭐 대단히 달라질 것 없잖아?
그리고 20대보단 30대가 왠지 더 멋있는 걸.
그런 정신머리로 쿨하게 서른 살이 되었다. 그저 쿨병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걱정할 때 아무 걱정 없는 담담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그렇게 쓸 데 없는 걱정을 하다니, 자존감이 부족하군!' 이런 태도 말이다. 실제로 그때는 그런 마음이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때였다. 무슨 일을 해도 평타 이상은 할 자신이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도 안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랬다.
하지만 서른 한 살이 되자 많은 게 달라졌다. 삼재가 이렇게 무서운 것일 줄이야. 자신감이 자만심이 되어 사람도 잃고 나 자신도 잃어버렸다. 한번 정신을 놓고 나니 점점 더 나를 나락으로 몰고가는 날들이었다. 하면 안 될 짓도 했다. 될대로 되게 두자 나락은 점점 깊어졌다. 그냥 만신창이였다.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고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손에 쥔 것이 하나도 없는 느낌이었다. 졸업한지 7년차, 커리어는 뒤죽박죽이고 연애도 엉망. 모아둔 돈은 하나도 없었다. 내가 알던 나는 누구지?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들은 다 뭐지? 자신감 넘치던 내가 쥐고 있던 것은 뭐였지? 아무 것에도 답할 수 없었다. 10대 끝에서 한 차례 방황하고, 20대 내내 내가 누군지 찾느라 방황했다. 이제 좀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여지없이 30대에 들어서고 다시 리셋. 허망했다.
하지만 그때 깨달았다. 아, 또 10년 동안 나를 열심히 빚어놓으며 지내고 나면 마흔이 되어 깨지겠구나. 대충 10년 주기로 다른 Phase가 열리겠구나. 에라, 모르겠다. 매번 이럴 거면 이번 10년은 내가 모르던 나로 만들어보자. 안 해본 짓을 왕창 골라서 해보는 거다!
나는 겁이 많다. 공포 영화도 못 보고, 스노보드를 탄다든지 서핑을 한다든지 다칠 수 있는 것은 다 못한다. 위험한 건 다 피했으니 그 흔한 깁스 한번 해본 적 없다. 마음의 상처도 싫다. 잘하는 것만 하고 싶어서 못하는 건 아예 안 하고 살았다. 그래서 칭찬만 듣고 살았다. 잘나서 칭찬만 듣고 산 게 아니다. 못하는 건 피해서 그런 거다.
그렇게 30대의 내가 찾은 찾은 안 해본 짓은 바로 위험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무턱대고 오토바이 면허 학원에 등록했고 저렴한 입문용 모터사이클도 사버렸다. 그 순간의 짜릿함이란! 친구들은 월세에서 전세로 이사를 하고 더 나은 직장으로의 이직을 준비하는데, 내가 한 짓은 참 철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각 잡고 말할 수 있다. 서른 넘어 도전한 취미, 모터사이클은 내 삶에 참 좋은 선물이었다. 무서웠고 위험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잘 못했다. 그래서 더 완벽한 선물이었다. 못하는 것을 어떻게든 해보자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나와 다른 유전자를 가진 친구들을 만났다. 모험하고 도전하길 즐기는 친구들. 그 친구드롸 함께 가본 적 없는 길도 달려보았다. 몸고생 싫어하던 집순이가 모토 캠핑도 다녔다. 한동안 그 기분에 취해 살았다. 명사처럼 살아온 내 삶이 동사가 되는 듯한 그 기분.
물론 사람이 쉽게 바뀌진 않는다. 4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바이크를 타는 게 무섭다. 가능하면 내가 운전하지 않고 뒤에 타려고 한다. 날 풀리면 귀신같이 라이딩을 가는 다른 라이더들과 달리 집에서 보내는시간이 훨씬 많다. 그럼에도 '바이크를 타보자!'라고 결정했던 그 때의 나를 칭찬할 수 있다. 두려운 것에 도전해본 몇 안 되는 기억이다. 내가 모르던 내 모습을 조금 더 발견했고, 조금 더 내 세상을 넓혔다. 그리고 조금 멋있는 사람이 된 기분으로 산다. 그거면 충분하다.
무엇보다 다음에는 조금 더 두려운 것에 도전해봐도 되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설렘이 패키지로 온다. 여전히 도전보다 평온이 좋고, 여전히 많은 것이 두렵지만, 그래도. 서른 아홉, 마흔 아홉에도 내가 아는 나는 또 무너질지 모르지만, 그래도. 한발짝씩은 내가 이 세상에 설 곳을 넓혀 나가며 땅따먹기 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서른에, 철 없는 짓을 해서도 얻은 것이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