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결국 팀 스포츠다. 팀 워크는 제자리를 잘 지키는 데서 나온다.
퇴사하기 전 내 직책은 팀장이었다. 20명 정도의 팀원으로 이루어진 팀 하나, 7명 정도로 이루어진 팀 하나. 정신 없이 흘러가는 업무와 일상에 늘 지쳐있었다. 그게 얼마나 팀원들에게 미안한 일이었는지, 퇴사를 하고 나서야 제대로 깨달았다.
좋은 팀장이라면 팀원 하나 하나의 성장을 독려하고, 각자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조화롭게 연결해서 팀 전체의 성과를 끌어올려야 한다. 오직 그것만으로도 팀과 팀장의 성과는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실무를 잘 해내는 것보다 최대한 팀원들에게 배울 기회,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기회를 만들어주고 팀의 미래와 성장을 위한 빅 픽쳐를 그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당장 빠른 결과물을 원하는 상사와 회사, 하루에만 서너개씩 잡히는 회의. 6시가 되어서야 내 일을 겨우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니 팀원들에게 동기 부여를 하고 한명씩 발전 상황을 체크하는 건 너무 버거운 일이었다.
당연히 개개인의 장점을 살려 최적의 팀워크로 성과를 내는 전략을 짜기보다는 효율적인 업무 분배에 신경 썼다. 팀원들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니 모두 부족해보였고, '그냥 내가 하는 게 빠르겠다'라는 생각으로 12시, 1시까지 야근을 하곤 했다.
그 모든 게 속도와 성과를 압박하는 회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다고, 아직은 역량이 부족한 내게 30명에 가까운 팀원을 맡긴 것도 회사의 판단 미스라고 그렇게 스스로 위로했다.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으면 나도 팀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더 팀워크를 통해 성과를 낼 수 있었을 거라고 말이다.
지난 2주 동안 4번 정도 풋살 매치를 뛰어보며 확실히 깨달았다.
문제는 나였다.
소속된 팀 없이 이 경기 저 경기 게스트로 참여하다보니 내가 뛸 팀의 경기력은 들쭉날쭉했다. 나보다 월등히 잘하는 분도 있고, 아직 볼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는 분도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악착같이 공을 좇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슬렁슬렁 걷기도 한다. 모두 자기 포지션에서 최선을 다 하지만 결국 퍼포먼스는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팀 스포츠에서 유난히 승부욕이 발동하는 나는 죽어라 뛴다. 축구로 치면 윙이나 미드필더에 해당하는 아라(ALA)에 설 때나 최전방 스트라이커 역할에 해당하는 피봇(PIVOT)으로 뛸 때나 정신차려보면 여기저기 모든 곳에 있었다. 원래 누군가 서있어야 할 곳이 빈 게 보이면 그곳으로 뛴다. 한마디로 올라운더를 자청하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문제였다.
올라운더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빈 곳에 적절하게 들어가 역할을 대신할 수 있어야 한다. 두루두루 능력치를 갖춘 사람으로서 지친 팀원들의 구멍을 메워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각기 다른 기량을 가진 팀원들을 믿지 못하고 모두 내가 처리해야 하는 것처럼 움직였다. 이렇게 뛰면 가장 빠르게 지친다. 무한 체력이 뒷받침 되는 선수라면 모를까, 내 수준에서 지쳐버리면 남은 시간 동안 다른 팀원들에게 역할이 가중될 뿐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팀원들 간의 상호작용을 끊는 것이다. 각자 담당한 위치에서 볼이 계속 순환하면서 빈틈을 노려야 하는데, 나를 중심으로 공을 밀고 들어가려 하면 수비가 내게 몰리고 결국 공을 뺏긴다. 다시 수비 포지션으로 돌아갈 때 드는 리소스도 상당하다.
한 게임도 쉬지 않고 계속 경기를 하는 친구들을 보면 움직임이 적다. 제자리에서 맡은 바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다른 팀원도 자기 자리에서 맡은 역할을 다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포지션을 나누는 의미가 있고, 체력 분배나 개인 능력치에 맞는 전략을 쓸 수 있다.
혼자 막아내고 달리고 골을 넣고- 넘어져 상처까지 입은 날 보며 팀원들은 '대단하다'고 칭찬해줬지만, 나는 경기가 끝나고 복기해보며 크게 후회했다.
'아, 이게 내가 일할 때의 모습이었구나!'
알고 있지만 실행하지 못했던 이상적인 팀 리딩, 회사나 상황 탓을 했지만 그냥 나의 성향이었던 것이다. 모두 나처럼 죽어라 뛰고 나와 같은 방식으로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 기준에 맞지 않는 팀원들은 '구멍'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돋보이고 싶어서라기보다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진 팀원들을 신뢰하지 못했다. 각자가 가진 재능과 그 자리에서 해주어야 할 역할을 달리 보지 못했다. 그래서 다른 능력들을 연결해 하나의 거대한 성과를 만드는 팀워크도 이끌지 못한 것이다.
일을 잘한다는 이유로 승진을 하고, 그래서 관리자가 된 많은 초보 팀장들이 겪는 문제일 것이다. 모두 다 나처럼 일해야 한다는 생각. 그때문에 일을 능력치에 맞게 분배하지 못하고 혼자 해버리거나 뛰어난 몇명의 스트라이커에게만 기대는 것.
결국 모든 일은 팀 스포츠와 같다.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라도 여러 사람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오롯이 혼자 하는 일은 없다. 나는 내가 맡은 일을 최선을 다해 해내면서, 다른 팀원도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래야 그쪽으로 공을 패스할 수 있다. 그가 어쩌다 실수로 공을 놓쳤다 한들, '역시 쟤는 안돼...'라고 생각할 게 아니라 그 옆 다른 포지션의 누군가가 놓친 공을 찾으러 뛰어올 것을 믿으면 된다. 그게 팀워크고, 그래서 팀이 좋은 거다.
앞으로 더 자주 풋살 경기에 나가게 될 것 같다. 연습을 통해 내 기량을 높이고 시합에서는 덜 뛰는 게 목표다. 무작정 공을 좇을 때는 다른 팀원들이 어디에 서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천천히, 내 자리에서 다른 팀원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정확하게 공을 건네줄 수 있게 움직여보려고 한다. 훨씬 덜 힘들고 훨씬 더 큰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분명히 그렇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