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영화도, 슬픈 드라마도 아니었다. 그저 갈등을 겪는 부부의 모습을 카메라로 관찰하고, 오은영 박사가 솔루션을 제공하는 현실의 짠내 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보는 동안 남편은 다양한 감정 캐릭터를 선보인다.
분노: 아니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 거야??
슬픔: 저런 아픔이 있었구나... 너무 가슴 아프다.
안도: 그래 회복될 수 있을 거야. 잘 살았으면 좋겠다.
옆에 있는 남편의 다양한 감정 난무로 TV를 보는 한 시간이 어떻게도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수많은 감정 캐릭터 중 남편의 얼굴을 새빨갛게 만드는 캐릭터가 있는데 나는 그것을 “부끄러미”라고 부르겠다. 이 부끄러미는 TV에 출연한 남편이 문제 행동을 보일 때면 곧장 튀어나온다.
남편은 붉은 얼굴과 작은 목소리로 “여보... 나도 여보한테 잘못한 게 많은 거 같아. 나도 저랬던 거 같기도 하고... 미안해...”라는 말을 하고는 이불속에 숨었다가 나왔다를 반복한다. 내가 대꾸도 안 하고 TV에 집중할 때면 내 팔을 살포시 잡고는 “여보 나도 저랬지?”라며 한 번 더 확인하는 남편이었다.
나는 그때 사과처럼 새뻘게진 남편의 얼굴이 좋다. 혹시 내 모습은 아닌지, 나도 아내에게 상처를 준 건 아닌지 돌아보려는 그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아마도 그의 반성하는 자세를 사랑하는지도...ㅋㅋㅋ)
그때마다 나는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인자한 표정으로 “아니야. 여보 안 그랬어~ 혹여 여보가 승질내긴 했어도 나는 쌩쌩해”라는 말로 나의 건재함을 드러낸다.
나의 아버지는 “사건을 보며, 상황을 보며, 사람을 보며 배워야 한다.”는 말을 매번 하신다.
단순히 혀를 차며 비판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내 삶에 무엇을 가져올 것인가 고민하는 것이 우리의 숙제라는 것이었다.
-‘혹시 나의 모습은 아니었는지’ 생각해 보고
-‘혹시 나도 상대에게 상처를 준 것은 아니었는지’ 떠올려 보고
-‘나는 저런 행동을 하면 안 되겠구나 혹은 나도 저렇게 행동해야겠구나' 마음에 다짐을 하며...
몇 년 전 미투운동이 사회에 확산되었다.
그 당시 '인생다큐 마이웨이'라는 교양 프로그램에서 배우 이순재와 박해미의 대화가 떠올랐다. 박해미는 사회 문제로 불거진 미투운동으로 나라가 시끌시끌하다는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전했다. 이어 이순재는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할 말이 없다. 나는 그런 경우가 없었는지 스스로 반추하게 된다."는 말을 하더니 곧장 박해미를 향해 "하이킥 찍을 때 나는 그런 일 없었지?"라고 물었다. 박해미는 활짝 웃으며 “가장 매너 있고, 젠틀하셨던 분”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출처: TV조선 캡처
'나는 그런 경우가 없었는지 반추하는 시간'
주변에서 인상을 찌푸리게 하거나 화를 부르는 일련의 사건들을 볼 때면 분노하는 것에 앞서 나를 돌아보는 것이 큰 지혜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나는 때때로 나에게 있어 얼마나 관대해지는 지 바다 같은 사랑을 선보인다. 나의 잘못은 '어쩔 수 없는 실수’라는 이름으로 예쁘게 포장한 뒤 다시는 돌아보지 않겠다며 망각의 숲으로 보내버릴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나를 돌아보는 것.
-가까운 사람에게 나를 묻는 것.
-그리고 듣는 것...
그것이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건, 상황, 사람에게 배우라"는 아버지의 오랜 레퍼토리를 다시 한번 기억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