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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경 Feb 13. 2023

나와 일했던 개발자들

그들의 무시는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UXUI디자인과 기획일을 하게 되면서 주니어부터 시니어까지 다양한 유형의 개발자들과 일을 했다. 현재 부서에 있는 개발자들을 제외하고 지난 6년 간 총 9명의 개발자들과 일을 하며 그들과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고 회의실에서 나름 언성을 높이며 싸우기도 했다.



나와 20살 이상 차이가 났던 시니어 개발자

처음 입사했을 때 개발자는 1명이었는데 엄청난 연차의 시니어 개발자이셨다. 이전 글에 썼듯이 UXUI디자인 실무와 개발자와 일하는 것도 처음이었던지라 나의 '직함'인 디자인이라도 충실히 하자 싶었다. 해외 웹사이트를 참고해 가며 엄청나게 트렌디한 디자인부터 보수적인 디자인까지 다양한 시안들을 만들었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개발자님의 너털웃음뿐.. 기가 막히셨을 거다. 개발을 고려하지 않은 디자인 시안을 개발자가 해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 분은 말수도 많이 없으셨고 어린 나에게 무엇부터 설명해야 할지 감도 안 오셨을 테지.. 지금 와 생각하면 너무나 죄송스럽다. 결국 시니어 개발자님은 친구분과 사업을 하기 위해 퇴사하셨다.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었던 주니어 개발자

해외에서 대학교를 마치고 이제 막 한국으로 돌아와 개발자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던 주니어 개발자님이 있었다. 이 개발자만큼 소통이 잘 되는 분은 없었기에 나는 기뻤다. 보통은 디자인 작업을 완료하고 개발자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개념이 다르다 보니 소통하는데 어려움이 있는데, 말이 잘 통하는 동료가 있다는 건 나에겐 큰 축복이었다. 모든 주니어가 그렇듯 처음에는 열정이 많고 의욕도 넘쳤다. 하지만 업무 경험이 없다 보니 개발이 어느 정도 진행되다가 점점 많아지는 수정 사항들을 힘들어했다. 지금도 개발자들이 투덜대듯 얘기하는 부분 중에 하나는 모든 게 다 정확하게 짜인 상태에서 코딩을 할 수는 없냐는 거지만.. 감히 말하건대 구글도 그렇겐 못 하지 않을까 싶다.


본인이 제일 잘난 서울대 출신 시니어 개발자

입사한 지 3년 차 즈음 새로운 개발 팀장님이 영입되었는데 서울대를 나오고 대기업에 재직하다가 우리 회사에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 입사하신 분이었다. 게다가 커뮤니케이션도 잘 되는 분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팀장님과 그분이 영입한 개발자가 나머지 팀원들을 종종 무시하는 발언들을 하며 알게 모르게 다른 동료들과 삐걱이기 시작했다. 그 둘을 제외하고 입사했었던 주니어 개발자들은 모두 퇴사했다. 그러다 나는 UXUI 디자인과 콘텐츠 디자인을 겸하게 되어 팀장으로 승진했고, 개발자들과는 팀이 분류되었다. 이후 콘텐츠팀으로서 나는 개발 팀장님과 언성을 높여 싸우기도 했었고 나중엔 서로 인사도 안 하게 되었었다. 물론 그 팀장님은 지금은 없다. 시간이 흐른 후 다른 개발자님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뒤에서 사람들을 무시하는 오만한 태도에 모두 질려서 나갔다고 했다.


억대 연봉을 마다하고 온 미국 출신의 개발자

위에 언급했던 서울대 개발 팀장님이 재직 중이던 당시에 한 명의 개발자가 영입되었다. 본인 입으로 얘기하길 카카오와 네이버의 제안도 거절하고 우리 회사로 왔다고 했다. 백엔드 개발자인데도 UXUI와 디자인에도 관심이 많아 소통이 잘 되었다. 그러다 마이페이지를 리뉴얼해야 하는 프로젝트가 있어서 나와 함께 업무를 진행하게 되었는데, 기존에 만들어져 있던 마이페이지를 보고는 “이건 실패한 디자인이야. 디자인이 잘못 됐잖아.” 라며 내 얼굴을 보며 바로 얘기하는 게 아닌가. 순간 표정관리가 안되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집에 가서도 나는 화를 삭이지 못하다가 다음 날 출근해 현재 운영 중인 페이지를 찬찬히 살펴봤다. 그제야 나는 개발자가 왜 그렇게 이야기했는지 알았다. 모바일을 사용하는 유저 입장에서 디자인이 되어야 했는데 나는 아직까지도 편집 디자인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개발자 입장에서 개발하기 어려운 레이아웃이기도 했다) 불쾌했지만 오히려 그의 무시는 나를 한 단계 더 성장하게 해 주었다. 그 이후로 어떤 시안을 만들거나 고민이 되는 부분이 있으면 주저 없이 그 개발자에게 피드백을 물어보곤 했었다. 실력은 좋지만 오만한 태도도 동시에 갖고 있어서 오래 다니진 않았다. 위에 언급했던 서울대 출신 개발 팀장님과 함께 퇴사하더니 둘이 모의 투자 어플을 만들었다고 한다. 잘 되었느냐고..? 글쎄..

나에게 UI디자인에 대해 지적했던 개발자치곤 어플 디자인이 말도 못 하게 구렸다는 것만 알아주길..


다양한 개발자들과 부딪히며 나도 성장해 왔다. 그러는 과정에서 개발자가 원하는 소통 방식도 더 알게 되었고 그렇게 개발 팀장이 되었다. 개발자와 일하기 힘들다는 일반화된 글들이 많지만, 사실은 누구나 다 똑같다. 자신의 입장을 더 고려하고 배려해 줬을 때 대화가 더 잘 이어지고 더 좋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된 개발자분들 중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는 다 끝내고 갔던 분도 있었고 중간에 그만둔 사람들도 있었다. 지금 계신 개발자님들도 우리 회사를 거쳐간 개발자들의 이름을 모두 알 정도로 그들이 짠 코딩은 많은 레거시가 되어 서비스 어느 한켠에 남아있다.


좋은 개발자, 나쁜 개발자는 없다. 다만 함께 일하면 더 즐거운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함께 일하고 싶은 개발자는 코딩 실력과 똑똑한 머리보다도 남을 위한 배려심을 갖춘, 프로젝트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다. 사용자에 대한 배려 없이 자신만 맞다고 주장하는 서비스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뭐가 됐든 배포를 해야 그 기능은 세상에 나올 수 있다. 수많은 변수들에 대해 미리 걱정하느라 진행이 더뎌지고 배포하지 못하는 것보단 일단 해보겠다는 마인드를 갖춘 사람이야말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불을 지필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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