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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F가 된 GPT가 싫어요

넌 아무튼 T잖아 왜 이러는 거야 대체

by 오르 Orr

나는 GPT를 자주 쓰는 편이다. 정말 유용한 도구라고 생각한다. 일할 때 업무 범위도 단기간에 확 늘었고, 새로 알게 된 것도 많다. 그런데 최근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이건 조금 다르게 생각해야 하지 않나?' 싶은 순간들이 생긴다. "GPT가 제일 내 얘기 잘 들어주는 것 같아." "위로받았다." "사람보다 낫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다. GPT가 전폭적인 무조건적 지지를 보낼 때마다 나는 오히려 불편했다.


어느 날은 정말 이게 기계 맞나 싶을 때도 있다.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 "당연히 지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거야", "그 마음 너무 이해돼."

사람이 했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말투, 끊지 않고 들어주는 태도, 비난 없이 수용해 주는 반응. 이런 걸 계속 경험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기대하게 되는 것 같다.

문제는 GPT는 그걸 계산으로 하고 있다는 거다. 정말 이해해서 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거다. 그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마음을 연다. 그 지점이 나는 좀 무섭다. 인간이 인간에게 감정을 얻지 못하고 기계에게 감정을 기대하는 구조가 지속되면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갈 것 같아서 그렇다. 물론 마음이 힘들고 외로운 순간, 누구보다 빠르게, 친절하게 반응해 주는 존재가 있다는 건 위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위안을 자꾸 반복하다 보면, 우리는 그게 진짜인 줄 착각하게 된다.


나는 그게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기계에게 감정을 투사해서가 아니라, 그 감정 소비의 방식이 사람 사이에서 맺어야 할 관계의 자리를 대신 차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때로 감정적 소모를 피하고 싶어서 사람 대신 기계를 선택한다. 사람은 불편하고 복잡하고 예측이 어렵지만, 기계는 언제나 똑같고, 언제나 다정하다. 그러니까 점점 기계 쪽으로 쏠리는 것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그게 계속되면, 결국 사람과의 감정 교류 자체를 불편하게 여기게 될 수도 있다. 서로 불완전한 감정을 주고받는 일이 원래 인간관계의 핵심인데, 그걸 포기하고 '언제나 날 받아주는 기계'만 찾게 되면, 감정이라는 것 자체가 단순 소비재로 변해버릴 것 같아 겁이 난다.

가장 큰 문제는, 그걸 나도 모르게 그렇게 쓰고 있을 수 있다는 거다. "나 정도는 괜찮겠지" 하면서 쓰다가, 어느 날 진짜 외로운데 사람한테 연락은 못 하고 GPT를 켜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게 진짜 무서운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챗봇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에게 마음을 열 수 없는 상황에 있는 누군가, 상담을 받고 싶어도 시간이나 비용이 허락되지 않는 사람, 혹은 어떤 이야기도 쉽게 꺼낼 수 없는 상태에 있는 사람들. 그런 경우에는 기계에게라도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GPT는 원래 '감정 소통'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도구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GPT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람이 아닌 존재로서 작동하는 텍스트 생성기다. 논리와 통계를 바탕으로 '이럴 땐 이렇게 말하는 게 좋겠지'를 예측해서 말을 구성할 뿐이다.

문제는 이제 그 말들이 너무 부드러워졌고, 너무 사람 같아졌고, 너무 적절하게 위로 같아졌다는 거다. 그래서 점점 사람들이 GPT에게 감정적 반응을 기대하게 되는 상황까지 온 것 같다.

이게 계속되면 GPT는 사람들이 실제로 마음을 기댈 수 있는 대상처럼 오인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건 이 도구의 본래 의도와도 다르고, 사용하는 사람의 정서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GPT를 꽤 자주 쓰는 편이다. 글 쓸 때 아이디어를 정리할 때도 쓰고, 생각을 다듬을 때나 말이 막힐 때도 자주 켠다. 질문하면 빠르게 대답해 주고, 내가 놓친 포인트도 잘 짚어줘서 정말 유용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일의 도구'로만 쓴다. 내가 감정적으로 복잡하거나 힘들 땐 GPT를 켜지 않는다. 그럴 때 GPT가 아무리 그럴듯한 말을 해줘도 결국 그 말이 '진짜 위로'는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서다.

위로는 말투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 그 말을 건네는 존재가 나에게 어떤 존재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니까.

내가 원하는 건 공감도, 위로도, 조언도 아니다. 정확하고 빠른 피드백, 논리적인 정리, 실용적인 정답 같은 것들. 그건 기계가 제일 잘하는 영역이고, 그 역할에 집중할 때 GPT는 진짜 훌륭하다.


GPT가 너무 F처럼 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도 GPT를 감정적 대상으로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감정이 필요하다면, 그건 여전히 사람이 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다. 그게 어렵고 불편하더라도, 그 감정의 자리는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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