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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년이 되어서야 써보는 직대딩 라이프

두번 다시 못 해, 그래도 해보길 잘했어

by 오르 Orr

입학 첫 주의 기억은 아직도 묘하게 선명하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던 '입학식' 같은 걸 내 인생에서 다시 겪게 될 줄이야. 그때는 그냥 신기하고, 약간 웃기고, 솔직히 좀 설레기까지 했다. 딱히 대학생을 동경하진 않았지만, 내 이름 옆에 학번이 생긴다는 사실만으로도 뭐랄까, 나도 어디엔가 소속된 느낌이 들었다.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재직자 전형으로 갈 수 있는 조건이 되던 해, 시작은 단순했다. 회사만 다니다가는 계속 같은 일만 반복하게 될 것 같았고, 어쩌면 내가 더 넘어서야 할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 돌아보면 아마도 또래가 필요했던 것 같다. 워낙 어릴 때 직장생활을 하긴 했으니까, 주변에 다 너무 (그때는) 어른뿐이였다.


막상 학교를 다녀보니까, 이게 진짜 '사는 거'더라. 주 5일 근무에 주 3일 수업이면 사실상 하루도 쉰다는 느낌이 없다. 토요일 1교시 수업이 있을 땐 금요일 밤도 없고, 수업 없는 날은 야근, 수업 있는 날을 위해 연차 아껴놓기, 그리고 필사적인 수강신청... 아무튼 뭘 하든 미안하거나 피곤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 사이에 가족 행사가 껴 있으면 어김없이 눈치가 보였다. 물론 내가 자발적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모든 걸 조율하고 책임지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 삶의 방식이 나름의 리듬을 갖게 됐다. 등교는 되도록 주 2회 안 넘기고, 수업 몰아서 듣고, 토요일 수업엔 꼭 커피 한 잔 챙기는 것. 그 와중에 생긴 빈 시간은 그냥 흘려보내지 않으려고 했다. 코인노래방에서 소리 지르듯 노래 부르고, 날씨 좋은 날엔 학교 근처 카페 테라스에서 멍 때리다 집까지 걸어오기도 했다. 공부만 하기엔 너무 아까운 순간들이었고, 그걸 알기에 더 애써 놀았던 것 같다. '놀기 위해 조율된 노력'이라는 말이 이상하지만, 진짜 그런 시기였다.


학생회나 동아리 같은 활동은 물리적으로 어려웠지만, 그래서 더 사소한 일상에 집중했던 것 같다. 수업 끝나고 "우리 뭐 먹을래?"라는 말로 시작되는 대화, 편의점에서 하나씩 골라 먹는 군것질, 축제 구경하며 타코 사 먹던 날들. 잔나비 공연을 멀찍이서 듣던 그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다. 이런 순간들이 모여서 나에게도 '대학생 같은 기억'이 생겼다. 아니 대학생이긴 하지.. 아무튼.


수업은 생각보다 내게 많은 걸 줬다. 공부도 했고, 커리어 고민도 했다. 어떻게 하면 필요한 걸 더 잘 알아낼 수 있을까, 그 생각을 진짜 많이 했다. 학교는 어쩌면 그런 연습을 위한 공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조건 다 열심히 하려던 마음에서 점점 '어떤 걸 더 집중해야 하나'를 고민하는 쪽으로 바뀌어갔다. 그 변화가 나름의 성장 같다.


졸업이 다가오면서 감정이 많이 엉킨다. 한편으론 해방감이 있지만, 또 한편으론 이 루틴이 끝나는 게 아쉽기도 하다. 나름 이 생활에 정 붙이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물론 후회도 있다. 성적 좀 더 챙길걸, 친구 좀 더 만나볼걸 하는 마음들. 근데 그 후회들 사이에 '그래도 재밌었다'는 말은 분명히 있다. 회사도 학교도 참 열심히 다녔고, 틈틈이 잘 놀기도 했다.


그래서 또 이걸 하겠냐고 하면.. 하긴 할 것 같다. 물론 두 번은 못(안) 하겠지만, 한 번은 해보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해봤어야하는 일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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