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바로 나야 나
개발팀과 일하게 된 건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개발자와 직접 협업하면서 프로덕트를 계속 만져가는 일은 그 당시 나에게도, 개발팀에게도 처음이었다.
우리 팀 개발자들은 그전까지만 해도 기획이나 비즈니스 쪽과 별말 없이 조용히 일하는 문화였다. 대부분은 "기획서 주시면 만들게요"라는 방식에 익숙했고, 중간중간 뭐가 잘못되든 그냥 '되는 선까지' 구현하면서 넘어가는 흐름이 반복됐다.
그러다가 내가 등장했다. 그리고 꽤 많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 부분은 왜 이렇게 되어 있어요?" "데이터가 여기랑 여기랑 안 맞는데, 이거 기준이 뭐죠?" "이거 수정 가능할까요? 오늘 안에?" "로그도 안 찍히는데요?"
한참 그렇게 일하던 어느 날, 나중에 들은 얘긴데, 회식 자리에서 개발자들끼리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오르님은… 좀 피곤해요." 분위기는 웃겼다고 했지만, 그 말이 그냥 농담만은 아니라는 걸 듣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그 얘기를 전해 듣고 나서 좀 멈칫했다. 나는 그냥 일하려고 했을 뿐인데, 그게 누군가에게는 피곤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제야 조금씩 실감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그냥 굴러만 가게끔 만들어놓은 코드나, 사람들이 디버깅하지 않은 문제들을 하나하나 다 찾아낸 적이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오류 몇 개겠거니 했는데, 막상 뜯어보니까 생각보다 자잘한 문제가 너무 많았다. 그걸 하나하나 잡아야만 다음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문제들을 끝까지 붙잡고 있었고, 솔직히 좀 공격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 같다.
나는 당장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했고, 제품에 문제가 생긴 상태로 두는 건 프로답지 못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나도 오류를 찾는 게 점점 스트레스로 느껴졌고, 개발팀 입장에서는 내가 계속 지적하는 사람처럼 보였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데이터 정합성이 맞지 않는 부분을 두고는 정말 많이 부딪혔다.
그때는 솔직히 화도 났고, 지쳤다. 왜 이런 기초적인 게 안 돼 있나 싶었고, 저 사람들은 왜 이렇게 책임감이 없지?라는 생각까지 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그게 당연한 감정이라고 여겼고, 나만 열심히 하는 것 같다는 피해의식도 좀 있었다.
근데 나중에 알게 됐다. 우리 앱 구조 자체가 되게 복잡하고, 뭐 하나 수정하려면 그게 여러 기능을 다 건드려야 하는 구조라는 걸. 내가 보기엔 단순한 버그 같아 보여도, 개발자 입장에선 완전 새로 짜야하는 수준의 일일 수도 있었던 거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지적을 하면, 그게 단순히 나와의 이슈에 그치는 게 아니라, 다른 팀들한테까지 압박으로 이어진다는 것도 뒤늦게 들었다.
개발팀은 재택 중심의 문화였고, 비즈니스팀이랑은 직접 대면할 일이 거의 없었다. 그 말은, 내가 전달하는 피드백이 거의 유일한 '외부'의 목소리였다는 얘기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계속 부정적인 이야기만 전달하니, 팀 분위기 전체가 위축되고 방어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 이후로 나도 방식을 바꿨다. 우선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어떤 문제인지, 그걸 해결해야 하는 이유, 구현 중 발생하는 오류의 증빙까지 전부 정리해서 보냈다. 일정도 최대한 구체적으로 맞췄고, 급하지 않은 건 아예 다음 스프린트로 넘기기도 했다. 그리고 인간적으로는, 정말 별 거 아니지만 과자 같은 거라도 들고 가서 "이거 잠깐만 봐줄 수 있어요?" 하고 시작했다. 그런 사소한 변화들이 생각보다 많은 걸 바꿨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니, 모든 팀은 각자의 리듬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내 속도가 빠르다고 해서 그 속도를 그대로 요구할 수 없고, 반대로 누군가 느리다고 해서 비난할 수도 없는 일이다. 결국 협업은 서로 다른 속도를 하나의 박자로 맞춰가는 과정에 가깝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지금도 빠르고 정확하게 일하려고 노력한다. 다만 그 안에서 '전달하는 방식'을 조금 더 신경 쓰게 됐다. 요청할 땐 감정을 빼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명확하게 정리하는 것. 말보다는 문서로, 막연함보단 구체적으로. 그리고 피드백을 줄 땐, 그 내용이 어떤 압박이 될 수 있는지를 조금 더 고려하려고 한다.
프로는 일을 잘해야 하는 사람이 맞다. 하지만 일은 결국 사람을 통해서 완성되는 거니까. 서로를 덜 피곤하게 만드는 방식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것도, 결국 일을 잘하는 방법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