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님 둘 다 올려? 둘 다 내려? 뭐가 맞는 건데?
올해 열린 Modern Growth Stack 2025를 다녀왔다. AB180에서 주최하는 오프라인 행사로, 나는 아마 이번이 세 번째 참석이었던 것 같다. 그로스 마케터를 기반으로 PM도 오고 퍼포먼스 마케터도 오고 DA도 오는, 다양한 세션이 동시에 열리는 MGS는 다녀오면 진이 다 빠지는 행사이긴 하지만 늘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곤 한다.
특히 이번에는 세션의 80%가 AI를 언급하는 세션이었다. 메인 주제가 되었든 언급이 되었든 모든 세션에 AI가 빠지지 않았고, 트렌드에 편승하든 실무 기술을 이야기하든 이제는 필수적인 요소가 된 듯하다. 그것은 AI가 얼마만큼 발전했는가를 떠나서 얼마나 빨리 발전하고 있는가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MGS는 20-25분 정도 되는 세션 총 12타임을 듣는 방식이었는데, 이런저런 흥미가 가는 주제들을 듣다 보니 신기한 경험을 했다. 왜인지 세션이 번갈아가면서 "AI가 최고다!"와 "여전히 사람이 최고다!"라는 말들을 섞어 반복한다는 것이다.
어떤 스피커는 빠르게 능률을 올려주는 AI 뒤에는 사람이 있고, 그들의 문화와 정서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한다. 어떤 스피커는 AI를 통해 1-2개월이 걸릴 만한 일을 15분 내로 단축했다고도 한다. 인간의 판단 대신 AI의 통계 분석력을 믿어야 한다고 했다가, 사람이 마지막으로 검증하는 것이 가장 크리티컬 한 효과를 내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무슨 청기 올려 백기 내려가냥 "AI 최고!"와 "인간 최고!"를 양쪽으로 외치는 것 같아 조금 어지러웠다.
다만 몇 가지 공통적인 인사이트들이 있었다. 다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몇 가지 나열해 보자면 아래와 같다.
의견을 구하고 일을 시키고 결정을 하는 요인을 분석시킬지언정 청기와 백기처럼 동선에 있는 요소는 아니다. GPT는 시키지 않으면 사고하지 못하고, GPT의 인사이트가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맞다. 그러니까 이제 뭐가 우선이고 이기고 미래를 이끌어가느냐는 논란은 가치가 없어졌다.
하다 하다 마케터 입에서 '바이브 코딩'이라는 말이 나오다니... 이런 AI의 발전을 통해 기본적인 개발 스크립트는 마케터가 직접 할 수 있게 되었다. HTML이나 CSS는 기본이고 브레이즈의 리퀴드 문, SQL 쿼리 등 기본적인 원리만 알면 모두가 GPT를 통해 코드를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작년과 다르게 마케터들 입에서 개발 지식이 나오는 비중이 매우 높아졌다.
공통적으로 AI와 인간의 가장 큰 차별점이 창의성이다.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건 인간만이 가능하고, 인간이 만들어야만 AI가 학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여기서 약간의 반문이 들었는데, 우리의 창의력과 AI의 (방대한 정보를 기반으로 한) 응용력 중 뭐가 더 '새로워 보일' 것인가?라고 하면 사실 확신이 들지는 않았다.
성공은 잘하는 것이 아니라 하기만 해도 이어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동안은 시작하기 위해 누군가의 조언이나 피드백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옆에서 누군가 '될 것 같다'거나 '이런 방법이 있다'라고 말해줘야만 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그것을 무한으로 해줄 동료가 생겼다. 이제는 정말 '잘'해야 성공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사실 AI를 넘으면 사람이 있다는 말은 여기서 오는 것 같다. AI를 통해 시작하는 건 쉬워졌지만 잘하는 건 어려워졌다. 어느 정도 수준까지 모두가 쉽고 빠르게 도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넘어서는 것은 분명 사람이 사고방식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제공된 정보를 넘어 생각하는 것은 특히나 어렵다. 정답 같아 보이는 것을 피해 해답을 찾는 것은 앞으로도 중요한 가치가 될 것이다.
MGS를 들으면서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된 것도 있고, 이러저러 실무에 적용하고 싶은 것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작년보다 실무와는 살짝 떨어진 세션들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AI가 아직 그만큼 실무에 일상처럼 투입되지는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또 한 해가 지난 내년은 어떨까? 그때는 AI를 말하는 게 구닥다리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