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하나 생기기 시작하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쏟아지는 모래알의 시대. 매일 한 움큼씩 모래를 쥐는데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들이 더 많아. 그래서 물을 부었지. 물을 부어 진흙으로 만들어 꽁꽁 동그랗게 빚어냈고 그게 맘에 들었어. 내가 만든 게 맘에 들었어도 고개를 들어보면 내 앞에는 끝도 안 보이는 모래사장. 수평선도 보이지 않는 큰 바다. 뭘 하고 있어도 내가 뭘 놓치고 있나 전전긍긍하는 기분은 아주 최상의 컨디션에서도 떠나질 않지. 내 쇼핑중독의 핵심은 여기에. 나처럼 나 자신을 맘에 들어하지 않는 사람은 시장에서 호구되기 딱 좋으니까. 나는 애처로운 탄탈로스. 그래서 책을 읽으면 영화를 봐야 할 것 같고 영화를 보면 일을 해야 할 것 같고 일을 하면 더 잘해야 할 것 같고 뭔가 판도를 뒤엎어야 할 것 같고 그러다 보면 신발을 사고 싶지. 의미를 찾지 않으면 되는데 그건 저절로 무의미한 기분에 빠지는 것보다 더 어렵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