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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정 Jul 28. 2020

미래 남녀의 섹스 #텔레딜도닉

Covid-19 그 이후, 온택트 시대를 살아갈 우리의 이야기다.

말보다 섹스가 필요한 순간, 내 쪽에서 한 발짝 물러선 경험이 있다면 대개 현실적인 이유 때문일 테다. 너무 먼 거리, 다음날 일정, 성병에 대한 걱정… 언택트 시대를 넘어선 ‘온 택트 시대’는 섹스에 관한 더 복잡한 걸림돌도 한 번에 해결할 통신 기술을 제안한다. 전문가들은 미래의 남녀는 섹스를 위해 콘돔 말고 디바이스를 찾게 될 거라고 예측하는 중이다.
 
 올해 초 코로나 19가 창궐했다. 런던 – 서울 간 장거리 연애를 한 내 경우엔 여름휴가 계획을 바꾸면서부터 일상의 변화가 왔음을 실감했다. 여덟 시간의 시차와 8851 킬로미터라는 거리감을 버티려면 1년에 한두 번쯤은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런 내 사정과는 관계없이 국경이 닫혔다. 지구 반대편에 떨어진 연인과 재회할 날짜도, 방법도 미지수. 나와 그는 몇 달 간이나 허망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연락을 주고받았다. 텍스트로, 전화로, 페이스 타임으로. 날이 갈수록 우리의 미래가 불투명해지는 게 느껴졌다. 우리는 이 사태를 이겨 내기엔 결속력이 부족했다. 몇 달 전 그와 헤어졌다.


내가 JP Saxe의 “If The World Was Ending”의 가사(내일 세상이 무너진다면 우린 함께 하루를 보낼 거야)를 불경처럼 외며 눈물 콧물을 쏟는 동안, 세상은 다음 단계를 향해 빠르게 내달렸다. 언택트의 시대가 도래했고, 휴머니티로 묶이던 사람 간 대면 관계망이 다른 방식을 찾기 시작했다. ‘온라인 속에서 어떻게 상대와 접촉해야 효율적’인 경험을 주느냐가 플랫폼과 통신업 전반의 이슈로 떠올랐다. ‘온 택트의 시대’가 온 거다.


이런 시대적 변화가 내 일상에 적용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건, AI가 찾아 준 광고 때문이다. 근래 내 온라인 행적을 모두 파악하고 있는 유튜브 알고리즘은 내가 장거리 연애를 했다는 사실도, 얼마 전 헤어졌다는 사실도 알았던 것 같다. 유튜브는 내게 매력적인 광고 문구를 가진 업체를 소개했다. “세계 어디서든 당신의 연인을 느껴보세요. 연인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을 때, 그리움의 고통은 훨씬 줄어들 것입니다.”


키루(Kiroo)는 텔레딜도닉(Teledildonic) 기술을 적용한 디바이스를 처음 개발한 영국의 섹스토이(또는 통신 디바이스) 회사다. 텔레, 딜도, 닉이라는 미래지향적이고 망측한 단어 조합이 대체 무쓴 뜻일까? 1975년 미국의 통신 기술 전문가 테드 넬슨이 저서 <컴퓨터 해방/꿈의 기계>에서 처음 사용한 말이다. 그는 50년 전 통신 기술의 발전이 섹스 시장을 움직일 것이라 예측했다. “촉각을 통해 작용하는 감흥을 원격으로 주고받을 수 있게 될 것이며 보디수트, 통신 기계가 나올 것”이라고. 텔레딜도닉은 사이버 세계에서 경험하는 모든 성행위를 말하는 단어고, 키루는 그의 전망을 예언으로 바꾼 예다.

각각 여성용, 남성용 키루 디바이스. 한화로 약 20만 원 돈.
자료 출처 키루Kiroo


설명서를 더 읽어봤다. “우리는 원격 섹스를 지원하는 기기를 판매합니다. 기본적으로는 닌텐도 핑퐁 게임과 같은 작동 원리입니다.” 이 회사가 개발한 ‘리모트 섹스’ 기계는 와이파이와 블루투스로 연결해 사용할 수 있다. 내가 딜도 디바이스를 질에 삽입하면 예민한 센서가 내 질의 수축 정도와 삽입 빠르기를 감지해 상대 남성용 자위기구에 전달한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기계에 삽입된 5~10개의 링이 남성의 페니스의 뿌리부터 귀두까지의 힘과 진동 정도를 감지해 내 쪽의 디바이스에 전송한다. 로맨틱한 분위기가 필요하다면? 이 기기는 스피커 기능도 제공하니 블루투스를 연결해 맘에 드는 음악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키루의 CEO이자 프로그래머인 툰 팀머만스Toon Timmermans는 유튜브 다큐멘터리 그룹 Vice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기술 때문에 생긴 거리를 다시 기술로 해결한다는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시작했습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 자기 배트를 휘두르면 내가 그 진동을 느끼게 되는 거예요. ‘붕’ 울리거나 상하좌우로 운동하는 거죠.” 그래, 휴머니티와 감정적 교류를 제외하면 기본적으로는 실제의 섹스는 핑퐁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서로의 배트가 손이 아니라 다리 사이에 위치에 있는 것뿐이다.
 
 텔레딜도닉이 대중화된다면 섹스라는 개념은 분명히 다른 국면의 이해를 필요로 하게 될 것 같다. 이미 섹스 토이 시장에 나온 산물들만 봐도 그렇다. 텔레딜도닉 디바이스를 만드는 또 다른 회사인 미국의 러브엔스(Lovense)는 기기의 바이브레이션을 프로그램화했다. 유명 포르노 스타가 기구에 펠라치오 하거나, 삽입 후 절정을 맞이하는 순간까지의 과정을 기계에 입력해, 사용자가 원하는 타입에 맞춰 조절할 수 있도록 한 것. 그러니까 안마 의자 기계에서 ‘힐링 마사지’ 또는 ‘승모근 격파’ 같은 프로그램을 고르는 것처럼 ‘친절한 애인과 나누는 주말 오후의 나른한 섹스’와 ‘짐승 같은 애인과의 격정적 한판’을 골라 자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소비자 반응은 뜨겁다. 나 역시 ‘젊은 브래드 피트와의 첫날밤’ 또는 ‘티모시 샬라메와의 해변가 섹스’ 같은 프로그램이 있다면 이 기계를 사기 위해 무슨 수라도 썼을 것 같다.


섹스의 변화를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2019년 영국에서 방영한 <이어스 앤 이어스Years&Years>는 가까운 미래를 사는 한 가족이 시대의 변화와 함께 겪는 일상적 갈등 들을 적당히 버무린 드라마다. 여기에 텔레딜도닉에 대한 씬이 몇 개 등장한다. 즐거운 데이트를 나눈 남자의 집에서 AI 섹스 로봇을 발견해 도망쳐 나온다거나, 화목했던 부부 사이가 원격 바람을 피우는 남편 때문에 파탄 난다. 영화 <허Her>에서는 AI와 사랑을 하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역시 가까운 미래에 살고 있다. 그는 여느 남녀가 만나는 과정처럼 AI인 사만다와 일상적 대화에서 관계를 시작해 침대에서 사랑을 나눈다. 영국의 유명 인공지능 학자 데이비드 레비는 이런 방식의 섹스가 곧 대중화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로봇이 새로운 섹스 파트너가 될 것이며 2050년에는 로봇과 결혼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이런 그의 말은 기술적 발달이 어떻게 진화할 것이라는 예견이 아니다. 신체적 감각이나 인간의 사회적 관계, 생물학적 재생산, 그리고 욕망을 충족하는 행동이 아주 다양해지고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함의다.

영드 이어스 앤 이어스Years&Years에 등장한 섹스 로봇. 친근한 외모는 아닙니다.


코로나 19가 창궐하기 전에도 우리는 이미 ‘사회적 거리 두기’ 상태에 있었다. 기술과 통신의 발전이 휴머니티에 악영향을 준다는 경종은 수 만개의 연구결과와 공익 광고물, 심지어 스마트 디바이스 안에서도 울리고 있지 않았던가. 기술로 망가진 사람 간 관계를 기술로 다시 복구해보고자 하는 노력은 어쩌면 작은 희망일 수도 있다. 물론 직관적으로 그에 대한 이견이 생각난다. 휴머니티의 종말, 윤리적 가치 훼손, 듣지도 보지도 못한 악랄한 사이버 성범죄….


가장 텔레딜도닉한 인스타그래머인 엘라 달링Ela Darling은 얼마 전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런 걱정을 불식시키는 말을 남겼다. (그는 고프로 카메라 두 개를 이어 붙여 촬영하는 방식으로 ‘생생하게 즐길 수 있는’ VR 포르노를 만든다.) ‘버추얼 섹스가 현실 구분을 어렵게 만든다고요? 오 제발요, 어떤 기술이 나올 때마다 우리는 그게 아이들과 사회를 망칠 거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괜찮잖아요. 우리 괜찮을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게 실제의 섹스보다 훨씬 못한 경험을 줄 거란 걸 알아요.” 그녀의 말대로 종이가 발명되고 사람들이 글을 적기 시작하자 ‘요즘 애들은 도무지 기억을 하려고 들지 않는다’며 불평했다던 소크라테스처럼, 우리도 너무 쓸 데 없는 걱정을 하는 걸까?


지금까지 통신 기술의 발달은 대체로 인간 간 연대와 화합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조선시대엔 전쟁을 알리려 봉화에 불을 지폈고, 모스 부호는 알베르 카뮈가 ‘양로원으로부터 전보 한 통을 받았다’라는 문장을 쓰게 했으며, 5G는 여러 대의 카메라가 동시에 촬영한 초고해상도 영상을 즉각 심사위원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데 도움을 줬다. 통신은 뭐든 정확하게, 사람은 놓치는 것을 잡아낸다는 면에서 이롭다. 대규모 화합을 위할 뿐 아니라 개인 간의 연결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여긴 이들이 만든 게 닌텐도의 핑퐁게임이나 키루, 러브엔스일 뿐. 머지않아 나도 이용하게 되지 않을까? 란 인상은 지울 수 없다. 스마트폰 같은 건 줘도 안 쓰겠다고 일갈하던 2010년대 초반을 지나 2020년 스마트 폰이 내 머리의 반쪽이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지금 텔레딜도닉스 시장에서 가장 화두는 ‘어떤 데이팅 앱이 이 기술을 가장 빨리 적용할 것이냐’다. 각각의 디바이스에 접속하는 패스워드만 있다면, 원나잇에 따르는 신체적 감정적 부산물에 대한 걱정도 정리될 터다. 텔레딜도닉스는 확실히 가까운 미래의 적절한 섹스 대체제로 사용될 확률이 높다. 다시 내 문제로 돌아가자. 어떤 선택지이든 최고가 무엇인지 알지만 결국 최선을 택하게 되듯, 런던에 사는 내 전 남자 친구와 나도 현실적인 방안들을 고려하다 헤어졌다. 만약 내가 그와 헤어지기로 결정하기 전 텔레딜도닉스를 알았다면? 우리는 아직 만나고 있었을까? 아니면, 디바이스를 가지고 섹스하다 환멸을 느끼고 다시 헤어짐을 결정했을까? 아무도 모를 일이다. 섹스와 텔레도닉스의 미래처럼.




* <더블유 코리아> 매거진 8월 호 기사  '접촉이 아니라면 접속을'에 게재된 글입니다. 링크를 따라 들어가면 전 지구적 역병에도 좌절 않고 사는 여섯 가지 방식과 재미있는 예측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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