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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정 Oct 06. 2020

나는 가구에 투자합니다

언젠가는 떠날지 모를 집 대신, 평생 쓸 가구에 투자하는 남자의 집

*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30%가 넘은 시대입니다. 혼자 사는 사람 그리고 혼자 살고 싶은 사람을 위해 혼자살이에 필요한 정보를 공유합니다.

단 한 시간을 머물더라도 그곳에서 온전히 쉬고 싶은 공간. 어쩌면 그게 집이 본질일지 모른다. 가구 편집숍 ‘보블릭’을 운영하는 박래원 대표는 집을 편안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선택과 집중을 감행했다. 정해진 예산 안에서 언젠가는 떠날지 모를 집 대신 그가 평생 쓸 가구에 투자하는 일. 그는 오랜 시간 공들여 취향을 기르고, 그로 말미암아 그가 좋아하는 미감을 내는 집을 완성했다. 그래서 바쁜 하루 중 단 몇 시간을 휴식할 지라도, 집에서 ‘쉬었다’고 표현할 수 있게 됐다.


가구 편집숍 ‘보블릭’은 독일어로 ‘선견지명’이라는 뜻이다. 홈 스타일링 서비스를 기반으로, 오리지널 디자인 가구를 제안하고 클라이언트가 집 안에서 편안한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돕는다. “미술보다는 미술관을, 영화보다는 영화관을 좋아합니다. 제 삶의 낙은 갤러리, 호텔, 디자인 카페 등 아이코닉한 공간을 둘러보는 거예요.” 박래원 대표는 가구, 소리, 냄새, 빛, 그곳을 찾은 사람들의 태도가 어우러져 공간의 분위기를 완성한다고 생각한다.


공간을 만드는 요소들 중 가장 덩치 크고 잘 알아볼 수 있는 건 아무래도 가구다. 어떤 무드를 포착하고 그 안에서 휴식하길 즐겼던 그가 가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가구에 관심을 두기 전 그는 음악을 만드는 프로듀서였다. 가구에 대한 관심을 살려 사업을 시작한 뒤에도 그는 여전히 ‘음악 하는 이’의 재질을 가진 사람. 그에겐 아름다운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제가 좋아하는 공간이나 분위기를 지닌 곳에 가야 비로소 제가 효율적으로 기능해요. 무언가를 표현할 때는 추상적으로 ‘좋다’고 느끼는 편이지만, 주변 분위기에 굉장히 민감하거든요.”



부모님과 함께 사는 동안 잠시나마 머리를 식히고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좋은’ 카페, ‘좋은’ 갤러리 등 상공간을 찾아다니며 좋은 공간이 가진 조건들에 대한 나름의 기준이 섰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오리지널 가구가 있는 공간에서 그 가구를 향유하며 느끼는 공간에 대한 무드가 좋았다. 브랜드가 가진 철학, 디자이너가 예리하게 다듬은 가구의 선 하나하나가 공간과 사람의 기분을 좌우한다는 걸 깨달은 것. 게다가 되팔 때 그 가치를 보존할 수 있기에 투자 목적으로도 좋았다.


그는 6개월 전 본가에서 나왔다. 운 좋게 쉬이 맘에 드는 전셋집을 얻었다. 그가 이 집을 고른 이유는 무척 직관적이다. 가슴이 뻥 뚫리는 전망을 가진 점, 본가와 일터 사이의 중간 지점에 있는 것, 인테리어 공사가 크게 필요치 않은 새 집인 점 등. 구조변경이나 시공은 전혀 하지 않았다. 가지고 있는 예산 안에서 가장 큰 금액을 가구에 투자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공간을 다니면서, 결국은 어떤 가구가 놓여있는 곳이냐에 따라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느꼈어요. 공간과의 어울림을 첫 번째로, 내가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가구여야 한다는 것이 두 번째였죠. 제대로 만든 가구를 갖는 것이 제겐 가장 중요했어요.” 그의 거실엔 이런 가구가 생겼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디자인한 싱글 암체어 ‘LC2’, 미국인 디자이너 부부 찰스&레이 임스가 디자인한 ‘임스 체어’, 바우하우스의 수장이던 발터 그로피우스가 디자인한 ‘F51’.



이 공간을 가만 살펴보니 외려 그는 집에서 쉴 시간이 별로 없는 사람 같았다. 주방엔 식기 대신 영양제가 있고, 음악 작업을 위해 만든 방은 너무 깨끗하다. 제 사업을 꾸린지 오래지 않은 30대 남자가 집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제게 생활법이 있나? 싶은 생각도 들어요. 쉼을 위한 시간이 많지 않거든요. 그래서  집은 제게  호텔 같아요.  정리해두고, 짧은 시간 동안  쉬기 위해서 여러 선택을 하는 거죠.” 나에게 최적화시켜서 에너지를 비축할 수 있는 집. 그에겐 그런 공간이 필요했던 거다. 


사람들이 호텔을 좋아하는 이유가, 규모가 커서는 아니잖아요. 그냥 거기 가면 내가   해도   같은 느낌을 받죠. 저는 집에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솔직한 이야기다.



집을 이렇게 꾸며 두니 그는 점점 물건과 집에 애착을 지닌 사람이 되어간다. 퇴근 후, 종일 어깨 위에 올려두었던 근심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몸에 꼭 맞는 암체어, 무드를 완성할 패브릭 하나. 허투루 고른 것 하나 없는 그의 집이 그에게 꼭 맞춘 호스피털리티를 제공한다.


“전세를 살거나 1인 가구로 살면 왠지, ‘돈 쓰면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지금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삶을 향유하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매장에서 관심받지 못하던 가구 일부를 제 집에 들여놨기 때문에 더욱 호사스러워 보일 수 있어요. 저의 직업이 가구와 관련이 없었다면, 이 정도까지는 힘들겠지요. 하지만 여전히 추천하고 싶어요. 가구에 힘줘보세요.” 그는 매일 오로지 나를 위한 공간에서, 번뇌 없이 하루를 마감한다.







사진 이주연 | 일러스트 정하연
행복이 가득한 집 2020년 9월호에 쓴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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