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라의 '셰즈 투 부아Chaise Tout Bois'
장 프루베는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건축가이자 금속 기술가, 디자이너다. 지난해 파리 퐁피두에서 그의 전시를 보고 완전히 반해버렸다. 단순하고 명료한 디자인, 원칙 외의 다른 기능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고집스러움 같은 게 엿보였다. 뭘 모르는 내가 봐도 진정 장인의 유산 같았달까.
그는 일평생 그 자신을 공장 노동자라 칭했다고 한다. 겸손의 표현일까? 아니다. 그가 남긴 디자인 명언 중 하나는 “제작할 수 없는 디자인은 하지도 말라”다. 그는 세상 얄짤없이 철두철미한 실용주의자였다. 그는 예술과 감성보다는 공학과 수학으로 사고하고자 했던 것 같다.
실제로 프루베는 1930년 “우리는 논리와 균형, 순수를 지향한다”는 골자의 선언문을 썼던 유럽 내 ‘현대 예술인 연합(Union of Modern Artist)’을 지지했으며, 전쟁 난민을 위해 빠르고 효율적으로 지을 수 있는 조립식 주택과 모듈식 건물 시스템을 설계하는 등 효율과 표준화에 디자인적 열정을 쏟았다.
이런 장 프루베를 대표하는 의자 디자인이 있는데, 바로 ‘스탠더드 체어’다. 효율과 정확성을 주요한 가치로 여기는 나라, 스위스에서 탄생한 비트라와 함께 만들었다. 합리주의자들이 만든 이 의자는 조금 투박한 듯한 느낌이 들 만큼 단조로운 디자인이다. 마치 ‘이것이 의자의 표준’이라 말하는 것만 같다.
이 의자는 특유의 간결함과 견고함 때문에 유럽 내에서 학교 교실 의자로 많이 쓰였다. 1984년 그가 사망한 이후에도 장 프루베는 끊임없이 회자된다. 그가 지향한 지독한 합리주의가 궁극적으로 전쟁 난민, 아이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쓰이곤 했기 때문에.
장 프루베의 디자인적 철학과 이상향에 공감하고, 이를 공유해온 가구 생산자 비트라 역시 장 프루베에 대한 애정이 깊은 듯하다. 비트라는 2002년부터 프루베 가문과의 긴밀한 협조 하에 이 프랑스 건축가의 디자인을 재생산하는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그렇게 탄생한 게 ‘셰즈 투 부아Chaise Tout Bois’. 프랑스어로 ‘전부 나무로 만든 의자’라는 뜻이다.
생긴 건 스탠더드 체어랑 똑같은데, 왜 굳이 나무로 만들어? 라고 물으신다면. 이 의자는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이었다 평가되는 세계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에 출시됐다. 장 프루베는 전쟁으로 인해 금속이 부족해진 상황에서, 전쟁 이후 발생한 난민과 신혼부부들의 삶을 걱정했다. 코로나 시대가 세상을 가장 힘들게 짊어지고 사는 사람의 밥벌이에 가장 큰 타격을 입혔듯, 전쟁 또한 사회적 약자의 일상에 먼저 파고든다.
그는 누구든 아름답고 질 좋은 의자를 썼으면 했다. 돈이 없어도, 집이 비좁아도, 챙길 식솔이 많아도. 적어도 집에 돌아와 의자에 앉아 끼니를 챙길 수는 있어야 하니까. 프루베는 스탠더드 체어와 같은 디자인인 이 의자의 이름 그대로 ‘전부 나무로 만들’기 위해서 나사나 조임새 없이도 견고하도록 꼼꼼히 디자인했고, 대량생산에 적합하게 만들었다. 장식품이 아니라 필수품을 디자인한 셈이다.
전쟁이 끝나고 이 의자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비트라는 코로나가 한창이던 지난 6월 인스타그램 영상을 통해 이 디자인의 재출시를 알렸다. 비트라의 ceo 노라 펠바움은 “이 의자는 재료의 선정뿐 아니라 하나의 디자인이 탄생하는 과정 또한 현대적 사고방식에 걸맞는 제품”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전 지구적 역병으로 모두의 삶이 전쟁통인 요즘 같은 때엔, 인류애의 역사 같은 이 의자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조금 위안이 되는 기분이다.
어쨌든 비트라, 장 프루베의 지향점이 여전히 같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이 깐깐한 합리주의자들은 가장 인간적인 디자인이 가장 논리적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