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폴센 모노스토어 성수 취재 뒷 이야기
써둔 글.
루이스 폴센의 첫번째 국내 스토어가 문을 열었다고 해서 취재 갔다. 성수동까지 가는 택시 안에서 루이스 폴센이라는 덴마크 조명 브랜드를 처음 알았을 때의 이미지를 다시 떠올렸다. #집스타그램. 희고 반짝이는 벽과 바닥에 깨끗한 디자인의 다이닝 테이블 위에 똑 떨어진 예쁜 조명 하나. 그런 이미지가 몇 개 떠올랐다.
미니멀하고, 쿨하고, 멀끔한 집에서의 한 때를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 리빙 선구자들 덕에 루이스 폴센의 조명등은 국내에서 대 유행했다. 이제 한국은 전세계에서 루이스 폴센의 조명등을 많이 소비하는 국가 중 top10 안에 든다. 제품의 정가는 약 100~130만 원 선. 아예 꿈도 못 꿀 것은 아니지만, 평범한 2030 월급쟁이는 이 조명을 사고나면 필연히 몇 달정도는 술자리와 택시를 멀리해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게 아니란 점은 온/오프라인 시장에 널린, 가짜 루이스폴센이 증명한다.
"청담동에 있는 유명한 자동차 브랜드 쇼룸에서도 가품을 쓰는 걸요. 그게 이 브랜드의 오리지널리티를 위해하는 것이란 생각은 안들어요. 어쨌든 누군가에겐 지향점이 되어줄 수 있는 거겠죠? 내가 지금은 진짜 루이스 폴센을 못사서 가품을 샀지만, 내 취향은 이렇고, 언젠간 갖고 말거다. 뭐 이런."
국내 마케팅, 영업을 총괄하는 루이스 폴센 코리아 박성제 대표는 가짜를 가짜라고 나무라지 않았다. (이 조명등의 핵심 디자인인 조명갓은 사람 손으로 만든다. 그러니 갓 모양은 외려 완벽한 동그라미일 수 없다. 혹시 사려는 조명이 진짜인지 아닌지 알아보고 싶다면 유념하길.)
이 조명 브랜드의 역사는 126년이나 됐다. (한국에 들어온 건 2006년 부터.) 이 브랜드가 출시한 디자인은 백 여가지나 된다. 백년을 이어 왔고 백년을 이어 나갈 브랜드 입장에선 전에도 너무 많았고, 앞으로도 너무 많을 것이니 가품 생산자를 하나하나 붙들고 '왜 그러셨어요! 왜!' 쏘아붙이기를 포기한지도 모른다. 내가 이런 얘길 하며 '그런가요?' 하고 물었더니 대표님 쪽에서는 다른 답변이 돌아왔다. "조명등의 디자인 보다는 섬세하게 조율한 빛이 주는 편안함에 대해 말하고 싶어요. 내게 꼭 맞는 좋은 빛의 가치요. 그때 비로소 여유를 찾게 되고,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일테니까요.”
나는 진품?!명품?! 같은 얄팍한 이야기를 던졌는데, 갑자기 삶의 질에 대한 이야기가 훅 들어와서 가슴이 다 설렜다. 조명 디자인은 거들 뿐. 따라해볼테면 그렇게 해요. 근데 우리는 조명등 디자인이 아니라 좋은 빛을 파는 겁니다. 좋은 빛, 그거 뭔지 알아요? 뭐 이런 플렉스.
루이스 폴센이 어떤 브랜드인지 설명하려면 조명의 역사를 조금 설명해야 한다. 1920년 대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했다. 그 덕에 미국과 유럽인들은 밤에도 대낮처럼 훤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환한 빛은 일할 때 편리했으나 쉴 때는 적합치 않았다. 과하게 밝은 빛은 자꾸 눈에 잔상을 남기고, 그게 사람을 피로하게 한다. "덴마크는 6개월은 밤이고 6개월은 낮인 국가예요. 오후3시 쯤 해가지면, 낮처럼 자연스러운 빛을 지닌 조명아래서 생활을 더 해야하는데 인공 조명은 너무 밝은 게 문제였죠."
너무 밝은 조명을 너무 오래 보고 있는 사람들은 인공 조명의 피곤함을 더 빨리 느꼈다. 더군다나 세계 어느 나라보다 '휴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덴마크 사람들이었다. 이때 덴마크의 디자이너 포울 헤닝센이 혜안을 냈다. 전구 위에 갓을 세개 씌워서 눈 부심을 줄이기로 한 거다.
"공간을 비추는 첫번째 방법은 디퓨징(Defusing)의 원리 입니다. 직접 빛을 쬐지 않고 간접적으로 내도록 반사시키는 거죠. 강한 빛 위에 필터나 커튼을 올려서 부드러운 빛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건 1800년 대 이전에 느끼던 조명이에요. 자연의 빛과 가장 가까운 빛을 냅니다." 루이스 폴센 측의 설명이다.
루이스 폴센의 창립자이자, 세 개의 셰이드가 광원을 감싼 조명등 PH5를 디자인한 포울 헤닝센은 ‘기능적인 조명등만이 아름답다’는 철학을 지닌 이였다. 그러니까 예쁘게 만드려고 한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고민하다가 기왕 디자인도 좀 더 예쁘게 만든 거다. 포울 헤닝센이 디자인한 조명은 지금도 루이스 폴센의 매출 70%를 차지한다.
이 조명 디자인을 시작으로 시작한 루이스 폴센이라는 브랜드의 역사는 아까 언급했듯 자그마치 126년. 그간 디자이너 베르너 판톤, 아르네 야콥센 처럼 대단하고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루이스 폴센을 거쳤다.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 동안이나 디자이너와 회사, 엔지니어가 무수한 담론을 나누고 나서야 제품을 생산한다는 이 브랜드에서 나온 조명들은 이런 게 있다. 전등갓이 볼록한 판텔라 조명, 식물 아티초크를 닮은 PH 아티초크, 겸손하게 고개 숙인 AJ 램프까지. 이렇게 만든 조명은 형태도 만든 사람도 제 각각이나, 포울 헤닝센의 철학은 변곡점을 지날 때마다 견고해졌다. 루이스 폴센은 여전히 포울 헤닝센이 주창한 제품 계발 단계를 지킨다.
"제품 기획은 아주 오랜 시간을 거쳐 이뤄집니다. 가장 최근에 올라퍼 엘리아슨과 협업해 만든 조명 'QE'는 5년간 연구했어요. 2년 동안은 인문학 이야기만 합니다. 어떤 철학적 기준점과 디자인이 사람들과 무얼 공유할지 결정하는 과정입니다. 그 다음에 조도에 관해서 이야기 합니다. 어떤 소재를 쓸지, 어떤 아이디어를 가져올지 생각하죠. 저희는 이게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가격이 아니라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하죠. 중요한 건 이거예요. 사람들은 빛을 어떻게 가지고 놀지?"
유리, 스틸 등 다양한 소재로 만든 루이스 폴센 조명등 아래에 손바닥을 대보면 알 수 있다. 제품마다 손바닥에 닿는 빛의 광량이 조금씩 다르다. 세 개의 셰이드가 있어 눈에 부담을 주지 않는 빛, 반구 형태의 전등갓이 빛을 부드럽게 발산해 휴식을 돕는 빛…. 루이스 폴센이 이유 없이 만든 빛은 하나도 없다.
루이스 폴센이 출시하는 조명등의 궁극적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기획했다. 70~80년대에는 봉제 공장, 근래에는 창고로 쓰이던 오래된 1층 건물에 루이스 폴센 성수 갤러리가 자리 잡았다. 이 곳에선 오롯이 빛에 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녹이 슨 철제 간판을 지나, 커다란 문을 열고 들어서면 공사 중 발견한 노란 플라스틱 물탱크, 천장을 따라 난 철제 골조 등을 그대로 살려둔 넓고 층고 높은 공간이 등장하고. 동선을 따라 걸린 PH 아티초크와 창가에 설치한 신제품 ‘OE 콰시 라이트’가 빛을 받아 반짝이며 한편에는 루이스폴센이 출시한 모든 제품군을 볼 수 있는 부스도 있다. 볕이 잘 드는 창가 곁에는 긴 테이블 위로 걸린 PH 조명등을 줄지어 걸었다.
“루이스 폴센의 중심에는 겸손, 기능주의, 실용이라는 키워드가 있습니다. 브랜드가 탄생한 코펜하겐 역시 그런 정서를 지닌 도시이지요. 2/3차 산업이 태동하던 시기 많은 이들이 땀 흘리던 공장이었고, 지금은 문화의 중심지가 된 성수동의 결이 같습니다.” 저녁 어스름이 내리면 루이스 폴센 성수 갤러리의 조명등 하나하나에 불이 켜진다. 은은한 조명등이 있어 낮보다 더욱 포근해 진다. 루이스 폴센 성수 갤러리는 앞으로 빛의 가치를 가까이서 느끼기 위한 관객들을 위한 갤러리이자, 모임 장소, 공연과 강연을 위한 공간으로 폭 넓게 쓰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