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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씩씩 Oct 03. 2019

김사월의 공연을 보고 쓰는 편지

<먼데이서울> 김사월 편을 보고 왔습니다

있지, 아주 슬프고 아름다운 공연을 보고 왔어.


내가 처음으로 혼자 공연을 보러 갔던 곳. 건물 밖까지 길게 늘어선 줄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던 곳. 단번에 사랑에 빠진 뮤지션의 라이브를 처음으로 들었던 곳. 첫 연인과 처음으로 나란히 앉아 맥주를 마셨던 곳. 처음으로 저녁에 혼자 밖에서 맥주를 마셨던 곳. 마음이 맞고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아예 갈 생각을 않았던 곳. 더 빨리 가는 길을 알고 있어도 괜히 반짝이는 불빛을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그 앞으로 돌아가던 곳. 갈 때마다 선곡이 너무 좋아서 음악 검색을 몇 번이고 하게 되던 곳. 어쩌면 사라져서 더 그립고 아름다운 곳. 옆에 거대한 쇼핑몰이 들어서고 월세가 비싸지고 지난 시간이 무색하게 자리를 비워달라는 말 한 마디에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었던 곳.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바뀌었는지도 모르는 곳.


그 공간에서 오래도록 하던 기획 공연을, 멀고 새로운 장소에서 보고 왔어. 그 공간을 너무나 사랑했고 너무나 긴 시간을 그 공간에서 보냈던 뮤지션의 공연이었고, 그 공간에서 라이브를 듣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 이토록 열렬하게 좋아하지 않았을 뮤지션의 공연이었어.


마지막을 마주한 슬프고 아름다운 공연을 봤던 만큼, 시작을 마주한 아름다운 공연도 오랜만에 보고 싶었어. 아름다울 줄은 알았는데, 슬플 줄은 몰라서 아름답기보다는 슬픔이 더 컸긴 했지만. 노래 중간에 숨죽여 터진 울음, 그리고 반주만 남은 노래에, 누군가 한 명이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그렇게 다같이 불렀던 노래의 후렴구를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아. 새 시작을 응원하려 왔는데 옛 생각이 났다고, 부활이 참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눈물을 그친 얼굴로 말했지. 노래가 끝나지 않으면 이 공간도 끝나지 않을 거라면서, 열두시가 넘도록 오래오래 노래를 부르던 날을 아직 기억해. 그런 마음을 어떻게 쉽게 잊겠어. 그렇게 쉽지 않은 마음들이 수없이 많아도,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게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논리라면, 슬플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어. 그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싶었고.


그래도 이렇게 새로운 시작이 있잖아. 그래서 슬프면서도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었어. 처음 만난 공간도 충분히 좋았고, 거리만 가까웠더라면 자주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곳이 그립지 않은 건 아니더라. 자꾸 생각이 났어. 공간에 대한 추억 말고도 노래에 대한 기억의 조각들도 자꾸 밀려오는 이상한 공연이었어. 이 뮤지션의 공연을 처음 본 것도 아니고, 보통은 라이브 너무 좋다,,너무 황홀하다,,, 혼을 빼고 보는 편인데 오늘은 이상하게, 자꾸 지나간 순간들이 생각나더라. 어떤 건 좋고, 어떤 건 슬프고, 어떤 건 아름답고. 그리고 앞으로 또 새로운 기억을 쌓을 게 분명한 노래와 이야기들도 건져 왔어. 그런 면에서도 슬프고 아름다웠어, 이 공연은.


 슬프고 아름다운 기분에 더 오래 젖어 있고 싶었는데, 불이 켜진 공연장은 너무 밝더라. 그리고 뮤지션의 노래 대신 본래 공간에 어울릴 법한 세련된 음악을 틀어줘서, 금방 카톡창과 인스타가 있는 휴대폰 세상으로 돌아오기 쉽더라고. 그리고 자그마한 대화를 나누고 귀여운 싸인을 받고 난 이후에는, 행복감이 절대적으로 커져서 슬픔과 아름다움을 잊고 말았지. 그래도 그 모든 감정이 휘발되기 전에, 들었던 노래들을 다시 들으며 글을 쓰는 중이야. 영상을 찍으면 앞사람 머리가 더 크게 나왔던 내 자리에서는, 영상이 크게 의미가 없어 보여서 아예 사진도, 영상도 남기지 않았거든. 이 글마저 없으면, 오늘의 슬픔과 아름다움은 영영 휘발되고 말 거야. 원래 아름다운 순간은 너무 짧으니까.


그냥, 너무 아름답고 슬픈 걸 보니까, 편지를 쓰고 싶었어. 슬프고 아름다운 편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간직하는 편지로 놔 둘까 하다가, 함께 아름답고 슬펐으면 하는 마음에 충동적으로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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