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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울연 Sep 10. 2019

갱년기

그날의 대화


그 완연함이 마음을 간질였던 걸지도 모른다.
링링 Ling Ling 이 올지도 모른다.



완연함

얼마 전, 집 근처 공원에서 엄마와 산책을 했다.  산책 중 보게 된 한 장면이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다. 그 장면이라 함은 어느 삼대가 모여 산책하는 광경.



흰머리 희끗한 노부부의 무르익은 모습을 찍어주는 손녀, 그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 아빠. 그 아이는 연날리기를 하며 넓디넓은 잔디밭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뛰어다녔다. 노부부의 표정은 흐뭇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은 아이를 둘러싸고 소중한 순간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가깝지 않은 시선에서도 노부부에게서는 긴 세월의 노련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작은 아이에게서는 맑은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노부부의 노련함과 아이의 깨끗함, 삼대가 모인 완연함은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고 있는 듯했다.



손바닥

엄마는 뛰노는 아이를 보며 말했다. 너도 어렸을 때 저 아이처럼 온 마당을 누비며 뛰어다녔다고. 네 피부가 까만 이유는 햇볕 아래에서 노는걸 잠시 쉬지 않은 탓이라고. 한 때 그랬던 적이 있었지, 하며 옛 시절을 회상하는 엄마는 왠지 슬퍼 보였다. 그리고는 또 이렇게 말했다.

손바닥 뒤집듯이 세월이 흘렀어, 그때는 정말 힘든 시절이었지만 견디고 나니 너는 이렇게 예쁘게 자라 있고 나는 이렇게 나이 들어 있어. 너도 엄마 나이쯤 되면 느끼는 날이 올 거야. 정말 손바닥 뒤집듯 세월이 갔구나, 하고.



갱년기

사실 삼대의 평화로운 광경을 볼 때도, 세월의 무심함을 말하는 엄마의 말을 들을 때도, 조금은 슬펐다. 나도 곧 그 세월을 맞게 될 것 같아서. 그러나 두려움은 아니었다. 삼대의 무르익은 완연함이 마음을 간질였던 걸지도 모른다. 어쨌든 해가 갈수록 알 수 없는 슬픔의 감정은 더 자라난 것 같다.

누군가 그랬다. 요즘 갱년기가 왔다고, 그저 눈물을 흘릴 때가 많이 생겼다고. -사실 이 말을 듣고 많이 웃었지만- 아마 내 감정 또한 그 엇비슷한 것이 아니었을지.


그 슬픔(?)에 대한 동질감은 마음에 뭔가를 그려냈다. 그 대가로 링링 Ling Ling 이 올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두려움을 잠시 접어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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