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골 밥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울연 Jan 10. 2020

단골 밥집

소중한 선물





그가 차려주는 밥상은 소박하다. 하지만 늘 따뜻하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그의 은신처에 도착하여 정갈하게 차려진 밥상 앞에 앉노라면 그 온기에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사실 요리는 누군가의 취향에 따라 맛있는 음식도 그저 그런 음식도 될 수 있는 법이다. 누구보다 내 취향을 잘 아는 그의 음식은 그저 그럴 수 없다. 그 예쁜 마음을 모아 준비한 정성스러운 차림에는 사랑이 듬뿍 배어 있다.


그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그는 철새처럼 추운 겨울날 나의 근처로 찾아와 따뜻한 은신처를 마련했다. 그 은신처에서 처음 해주었던 음식은 바질 크림 파스타와 스테이크.

바질크림파스타와 스테이크


파스타의 소스는 비록 시중의 소스를 사다 만들었지만 레스토랑에서 먹는 파스타 못지않게 맛있다. 스테이크의 정도는 Medium Rare. 그는 고기를 잘 다룬다. 비리지 않도록 손수 피비린내를 제거하고 다양한 풍미가 느껴지도록 시즈닝도 아끼지 않는다. 그렇게 손질한 고기를 센 불에 익혀주고 늦지 않게 꺼내면 완벽한 Medium Rare로 테이블 위에 올려진다. 이것 역시 먹는 사람의 취향을 잘 꼬집는 그의 센스이다.



두 번째 밥상은 감바스와 치즈 플레이트. 2019년의 마지막 날을 기념하는 밥상이기도 하다. 칵테일 새우와 내가 좋아하는 구운 마늘이 듬뿍. 고소한 아보카도 오일로 새우가 자작해질 때까지 익힌다. 자작해질 때 즈음에 빨간색의 방울토마토로 보기 좋게 채도를 더해준다. 치즈와 빵이 있는 플레이트는 정말 취향저격이다.

감바스와 치즈 플레이트


부드러운 빵을 감바스 오일에 찍어 새우와 마늘을 올려 먹으면 행복감에 미소가 퍼진다. 정성스레 씹어 넘기고 와인 한 모금을 음미한다. 와인이 심심찮게 등장하는 이유 또한 우리의 취향이기 때문. 그와 나누는 한 해의 마무리가 그렇게 즐거운 음식과 대화로 흘러간다.



세 번째 밥상은 삼겹 카레와 고추장 불고기. 좋아하는 카레를 그는 맛있게도 만들어준다.

삼겹카레와 고추장 불고기

카레가루를 적당히 풀어 쉬지 않고 저어 주다 보면 걸쭉하고 노르스름한 수프에서 향긋한 카레향이 올라온다. 좀 더 걸쭉한 식감을 위해 못난 감자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넣어주는 그의 섬세함은 요리에 따스함을 한층 더 채워준다. 그의 센스대로 양념을 추가한 고추장 불고기에는 귀엽게 송송 썰어 넣은 파가 맛을 더해준다. 그리고 테이블에 마주 앉아 따뜻한 햇반과 함께 매콤함과 카레의 진한 향을 느낀다.



순두부찌개와 고추장 불고기가 또 한 번 등장한 네 번째 밥상이다. 몽글몽글한 순두부와 쫄깃한 버섯이 씹히는 순두부찌개. 국물 속에 숨어있는 취향을 배려한 반숙 계란이 포인트다. 톡 터뜨려 햇반 위에 비벼서 불고기와 함께 입에 넣으면 꽉 찬 만족감이 느껴진다.

순두부찌개와 고추장불고기

그의 생애 첫 순두부찌개라고 했지만 부족하지 않은 맛이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하는 그는 먹는 사람의 마음을 순두부처럼 몰랑하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밖에서 사 먹는 화려한 음식들보다 이런 소소한 밥상이 더 그리운 건지도 모른다.



다섯 번째 밥상은 정말로 맛있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스테이크 Medium Rare

기쁜 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그가 또 정성스레 소고기를 손질했다. 거듭할수록 완벽해지는 Medium Rare의 적당함으로 이제 그의 주요리가 된듯하다. 입에 감도는 부드러운 고기의 식감과 함께 마늘과 프라이가 곁들여지면 잔치의 향연이다.


이 따뜻함에 취해 퇴근만 하면 집 대신 그의 은신처로 몸이 절로 향하게 된다. 사랑하는 모든 것이 있기에, 누구보다 내 취향을 잘 아는 사람이 있기에. 그 소소한 밥상들에 무엇보다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더 갈구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매일매일이 소중한 선물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와 저녁메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