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선물
그가 차려주는 밥상은 소박하다. 하지만 늘 따뜻하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그의 은신처에 도착하여 정갈하게 차려진 밥상 앞에 앉노라면 그 온기에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사실 요리는 누군가의 취향에 따라 맛있는 음식도 그저 그런 음식도 될 수 있는 법이다. 누구보다 내 취향을 잘 아는 그의 음식은 그저 그럴 수 없다. 그 예쁜 마음을 모아 준비한 정성스러운 차림에는 사랑이 듬뿍 배어 있다.
그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그는 철새처럼 추운 겨울날 나의 근처로 찾아와 따뜻한 은신처를 마련했다. 그 은신처에서 처음 해주었던 음식은 바질 크림 파스타와 스테이크.
파스타의 소스는 비록 시중의 소스를 사다 만들었지만 레스토랑에서 먹는 파스타 못지않게 맛있다. 스테이크의 정도는 Medium Rare. 그는 고기를 잘 다룬다. 비리지 않도록 손수 피비린내를 제거하고 다양한 풍미가 느껴지도록 시즈닝도 아끼지 않는다. 그렇게 손질한 고기를 센 불에 익혀주고 늦지 않게 꺼내면 완벽한 Medium Rare로 테이블 위에 올려진다. 이것 역시 먹는 사람의 취향을 잘 꼬집는 그의 센스이다.
두 번째 밥상은 감바스와 치즈 플레이트. 2019년의 마지막 날을 기념하는 밥상이기도 하다. 칵테일 새우와 내가 좋아하는 구운 마늘이 듬뿍. 고소한 아보카도 오일로 새우가 자작해질 때까지 익힌다. 자작해질 때 즈음에 빨간색의 방울토마토로 보기 좋게 채도를 더해준다. 치즈와 빵이 있는 플레이트는 정말 취향저격이다.
부드러운 빵을 감바스 오일에 찍어 새우와 마늘을 올려 먹으면 행복감에 미소가 퍼진다. 정성스레 씹어 넘기고 와인 한 모금을 음미한다. 와인이 심심찮게 등장하는 이유 또한 우리의 취향이기 때문. 그와 나누는 한 해의 마무리가 그렇게 즐거운 음식과 대화로 흘러간다.
세 번째 밥상은 삼겹 카레와 고추장 불고기. 좋아하는 카레를 그는 맛있게도 만들어준다.
카레가루를 적당히 풀어 쉬지 않고 저어 주다 보면 걸쭉하고 노르스름한 수프에서 향긋한 카레향이 올라온다. 좀 더 걸쭉한 식감을 위해 못난 감자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넣어주는 그의 섬세함은 요리에 따스함을 한층 더 채워준다. 그의 센스대로 양념을 추가한 고추장 불고기에는 귀엽게 송송 썰어 넣은 파가 맛을 더해준다. 그리고 테이블에 마주 앉아 따뜻한 햇반과 함께 매콤함과 카레의 진한 향을 느낀다.
순두부찌개와 고추장 불고기가 또 한 번 등장한 네 번째 밥상이다. 몽글몽글한 순두부와 쫄깃한 버섯이 씹히는 순두부찌개. 국물 속에 숨어있는 취향을 배려한 반숙 계란이 포인트다. 톡 터뜨려 햇반 위에 비벼서 불고기와 함께 입에 넣으면 꽉 찬 만족감이 느껴진다.
그의 생애 첫 순두부찌개라고 했지만 부족하지 않은 맛이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하는 그는 먹는 사람의 마음을 순두부처럼 몰랑하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밖에서 사 먹는 화려한 음식들보다 이런 소소한 밥상이 더 그리운 건지도 모른다.
다섯 번째 밥상은 정말로 맛있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기쁜 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그가 또 정성스레 소고기를 손질했다. 거듭할수록 완벽해지는 Medium Rare의 적당함으로 이제 그의 주요리가 된듯하다. 입에 감도는 부드러운 고기의 식감과 함께 마늘과 프라이가 곁들여지면 잔치의 향연이다.
이 따뜻함에 취해 퇴근만 하면 집 대신 그의 은신처로 몸이 절로 향하게 된다. 사랑하는 모든 것이 있기에, 누구보다 내 취향을 잘 아는 사람이 있기에. 그 소소한 밥상들에 무엇보다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더 갈구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매일매일이 소중한 선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