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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골 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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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울연 Feb 17. 2020

잘 먹고, 잘 쓰고

글의 수다스러움




 집에서 잘 차려진 밥상 사진 컬렉션들을 보면 새삼 생각이 든다, 정말 잘 먹고 있구나 라고. 아니, 그저 '잘 먹었다'라고만 표현하기엔 부족하다. 식사 때마다 오고 가는 그저 그런 대화들과 익숙해지는 공기, 따스함에 높아진 체온으로 전보다 편안함이 늘었고 그만큼 더 소중해지는 추억들이 쌓여있다. 그래서 얼마 전에 먹었던 양갈비의 기억이라던지, 앞으로도 잃고 싶지 않은 바로 지금, 그 순간들.


양갈비와 곱창찌개


글을 쓴다는 


 평소엔 생각지 못하고 있던 이러한 당연한 일상의 상호작용들이 글을 쓸 때면 다시 그때로 돌아가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당시에는 발견할 참이 없었던 그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기록했던 사진들을 보며 다시 곱씹는 일련의 과정들이-글을 쓰는 과정들이- '그래 그랬었지.'라는 일반적인 사실을 넘어서서 평소엔 자극받지 않던 감정선을 자극한다. 그 감정선이란 나름의 방식대로 내 삶을 디자인해 나가고 있다는 어떤 확신일 수도, 기분 좋은 추억에 취한 감성일 수도 있다. 둘 다 일수도 있고. 하지만 확실한 것은 다시 글로 써 내려가는 행위만으로 현재의 나 스스로가 크진 않지만 적지 않은 안식과 위로를 받게 된다는 사실이다.


버섯들과 소고기



글의 수다스러움


 잘 익은 고기들은 침샘을 자극한다. 소고기에 버섯과 브로콜리는 어울리는 짝꿍들이다. 잘 어우러진 음식은 우리의 오감에 만족감을 준다. 이렇게 내 시신경을 거쳐 생각의 회로에서 다시 태어난 묘사들.

 그러니까, 글을 써 내려가노라면 본인의 이야기임에도 마치 제삼자가 되어 묘사를 하게 된다. 좀 더 나은 표현은 없을까? 그냥 좋았고, 맛있었다 이상의. 여기서 어떤 의미를 또 발견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지며 말이다. 밥상 사진을 보고 먹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어떤 의미를 찾다니, 뭐 조금 억지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나의 글의 시작은 공간이나 사물에 대한 묘사에서부터 였다. 간단한 묘사에서부터 내 의식의 흐름은 자유자재로 흘러간다. 절대 이어질 수 없을 것 같은 덩어리들끼리의 연결고리가 글의 수다스러움으로 이어진다. 시선을 통해 보고 느낀 것들이 소화되어 나만의 언어로 타인들에게 전달된다. 나로서는 글 쓰는 것에 흥미를 붙이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글을 보며 누군가는 그들만의 나무에서 새 가지들을 펼쳐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 이런 재밌는 놀이를 멈출 수 없다. 이를테면 지금은 요리법에 대해 수다를 떨어보는 것이다.



면발의 적당함을 유지하려면


요리를 하다 보면 쉽지 않은 것 중 한 가지가 양 조절이다. 특히나 파스타 같은 면요리는 불어나기 때문에 통 크게 인심 썼다가 되려 음식물 쓰레기가 되어버리기 일쑤다.

치즈크림 페투치니, 푸실리

또 다른 점은 면의 익는 점. 너무 익히면 다른 재료들, 소스와 함께 2차 조리를 할 때 역시 불어나고, 너무 덜 익히면 입안에서 딱딱한 면을 씹게 된다. 면이 완전히 익기 전 단계에서 꺼내 조리해야 식감이 좋은 면발을 맛볼 수 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말하고자 하는 것 한 가지이면 충분하다. 글을 마칠 때까지 본연의 흐름을 잃지 않기 위해 되뇌며 한 문장, 한 문단이 더해질 때마다 다시 훑고 덧붙이거나 고친다. 꼭 유려하지 않아도 된다. 나의 글도 일상에서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심을 나름의 의견을 곁들여 담담하게 전할 뿐이다. 잘 쓴 글이란 그런 것 같다. 읽는 이로 하여금 읽는 이만의 감정선을 느끼도록 하는 것. 내 글이 그 정도까지의 영향력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많은 이들이 읽지 않아도 머무름에 그치지 않고 싶다. 이렇게 세상 밖으로 내뱉은 이 글자들은 곧, 나만의 지양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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