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뜻대로
민수는 반기는 쓰레기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다 무언가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처음에는 그저 이상하다는 느낌이었는데 점점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가장 요란스럽게 맞으러 나와야 할 케이시와 파올라가 보이지 않았다. 민수의 표정을 눈치챈 안젤라가 에이미에게 케이시의 안부를 물었다. 민수는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카팜팡안어 사투리가 안젤라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케이시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다 말고 결국 말문을 열었다.
「며칠 전에 그 집 아이들 둘이 사라졌어요.」
「네? 그게 언제인데요?」
「한 삼일쯤 됐나. 어디 구걸이라도 하러 갔을 거라고 했는데도 케이시가 일도 안 가고 계속 울기만 해요.」
「경찰에 신고는 했어요?」
「에이, 안젤라. 경찰에 신고한다고 우리 같은 사람들 찾으러 나설 리가 없잖아요. 그 집이 애들이 여덟이나 되니까 먹을 게 없어서 뭐라도 구하러 갔겠죠. 그치만… 그치만 안젤라도 파인애플 살인마 얘기, 들어봤죠?」
파인애플 살인마Pineapple Murderer.
민수도 이 단어는 알아들었다.
파인애플 살인마는 수년 전, 타끌라반이 태풍으로 무너졌을 때 처음 등장했다. 이후 세부에서 봤다는 사람도 있고 파나이에서 봤다는 사람도 있었다. 점차 북쪽으로 거처를 옮기는 것은 분명하지만, 필리핀 워낙 섬이 많고 지역 간 교류가 어려워 이 섬에서 저 섬으로 옮겨 다니며 날뛰는 그를 잡지 못했다.
한 손에는 도끼를 들고 머리엔 파인애플 탈을 써서 '파인애플 살인마'라고 이름 붙였다고 하는데 매번 분장을 바꾸는 건지, 아니면 모방범이라도 등장한 건지 점점 바나나 살인마나 망고 살인마를 봤다고 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사람들은 키득거렸고 키득거리는 사이 파인애플 살인마는 어느새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민수는 언젠가 뉴스에 나온 생존자의 인터뷰도 보았다.
「제 옆에 있던 사람을 산 채로 썰었어요, 산채로….」
생존자는 말을 더 잇지 못하고 구역질했다. 앙상한 온몸이 땀에 젖어 비 오듯 눈물을 쏟아냈다. 악몽을 버틸 수 없다는 듯 쪼그려 앉아 앞뒤로 몸을 흔드는 그녀의 앞에 떨어지는 것이 토사물인지, 눈물인지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곁에서 뉴스를 함께 보던 안젤라는 버티기가 어려웠다. 안젤라 역시 생존자를 따라 구토가 올라와 채널을 돌리려는데 민수가 못하게 했다. 상상을 자극하는 보도의 소리조차 견디기 어려워 결국 그녀는 귀를 막았다.
안젤라는 자신이 그런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을, 민수를 통해 알게 되었다.
국가의 방향이 어디에 있어야 시민이 좀 더 안전하고 행복한지 길게 보지 못하는 나라, 있는 국가들이 자본이며 자원을 모두 뽑아먹어도 오색으로 치장하는 나라, 오늘이 즐겁고 내일이 무사하면 된다며 행복지수가 1위인 나라, 그녀는 그런 나라에서 살고 있었다는 걸 민수를 만나기 전까지는 깨닫지 못했다.
그녀가 속한 나라에선 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많은 사람이 게이가 될지 말지, 비키니 바에서 일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는 있어도 내일 뭘 먹을지를 결정할 수 없는데도 말이다.
민수는 그녀가 증언한 곳에서 발견한 토막 시체 더미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그가 그걸 보고 있다는 것만으로 안젤라는 괴로웠다. 하지만, 민수는 그런 나라에서 왔다. 잔인함과 폭력 앞에서 더욱 눈을 부릅뜨는 나라에서. 그게 한 나라의 지도자로부터 자행된 일일지라도. 그 지도자를 반드시 재판정에 세우는 나라에서.
하지만 그날의 소동은 두 사람만의 불화로 끝나지 않았다. 민수는 토막시체를 보며 딸을 불러댔다.
「수지! 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