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왜 먼저 전화하지 않느냐는 말과 함께.
개명 전의 이름을 부르시길래, "이름을 개명했으니 개명한 이름으로 불러달라."라고 했더니 무척이나 서운해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개명 전의 이름이 아빠가 직접 지어주신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름이 흔한 것은 둘째 치고, 지혜 지(智) 자에 지혜 혜(慧) 자. 남들이 다 은혜 혜(惠) 자를 쓰는 것에 비해 나만 다른 한자가 왠지 싫었다. 개명한 데는 별 이유가 없었다. 이름을 바꾸면 잘 풀리지 않는 일들이 풀린다길래 그래서 그냥 바꾼 거였다. 아빠가 내가 개명한 것에 엄마가 말해서 바꿨을 거라고, 너는 언제나 엄마 편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서운해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아빠는 자주 반대로 말씀하시곤 했다. 혼자 있어 외로울 때면 오지 말라고 하셨고, 좋을 땐 됐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한 번은 할머니한테 화를 내고 집을 나갔는데, 그때 집으로 돌아오고 있던 아빠한테 붙잡혔다. 엄마랑 같이 살지 못하는 것은 둘째치고 할머니가 너무 싫었다. '다른 할머니들은 손자, 손녀를 그렇게 끔찍하게 아낀다는데 우리 할머니만 왜 이런 거야?' 그런 생각에 불같이 화를 내며 집을 나왔으니, 아빠는 나를 버릇이 없다며 나무랄 줄 알았는데 화 한 번 내지 않고 그 길로 치킨집엘 데려갔다. 단 한 마디도 없이 치킨만 먹다가 치킨을 다 먹고 난 즈음에야 그런 말을 하셨다. "아빠한테는 할머니도 엄마니까..."
성인이 되고,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직장에 잘 적응하지 못해 백수인 상태로 분노만 가득했던 시기도 있었다. 힘들어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실 거란 예상과는 달리 내가 어떤 부분에서 힘들어하는지 정확하게 아시고, 나를 위로했다. 아빠는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정이 많거나 표현을 잘하시는 분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벼랑 끝에 몰렸다는 기분이 들 때,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 정말로 신기하게도 그때마다 나를 붙잡았던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 항상 아빠였다.
매일 술을 드시는 분이고, 소맥보다는 온리 소주를, 가끔은 막걸리를 즐겨 드셨다. 왜 그렇게까지 매일 술을 마시는 걸까. 이전엔 그게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왜 항상 그렇게나 가부장적이고, 본인 말만 맞다고 생각하시는 건지. 왜 외로우면서도 외롭다고 말하지 못하고 항상 자식들에게 오지 말라고만 말씀하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 역시 그랬다. 술을 매일 마시진 않았지만 한 번 마실 때 양을 잘 조절하지 못했다. 사람의 공허함이 술을 찾게 만든다. 무엇인가에 취해서 삶을 자꾸만 잊으려고 한다. 외로운데 외롭다고 말하지 못하고 자꾸만 반대로 말한다.
왜 먼저 전화하지 못할까.
왜.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왜 먼저 전화하지 않느냐는 말과 함께. 나는 늘 사느라 바빠서 그렇다고만 말했다. 그때 그렇게 이야기하지 말걸. 어쩌면 외롭다고 외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아빠에 대한 글을 쓰며 다음에는 먼저 전화를 걸어봐야지,라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