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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연 Mar 19. 2018

가장 사적인 공간, 화장실

한 칸이 주는 안도감과 프라이버시



화장실, 가장 원초적인 배설 욕구를 해소하는 공간인 동시에 절대적인 프라이버시를 요구하는 공간이다.

우리가 수세기를 걸쳐 다른 형태로 진화하지 않는 이상 누구에게나 독립적인 공간은 필요할 것이다.




하루 평균 화장실에 머무는 시간은 여성이 1분 33초, 남성이 32.7초라고 한다. 즉, 우리 인생의 적어도 1년은 화장실에서 보낸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이는 한 장소의 공중 화장실에서 측정된 결과이니 개인의 활동 범위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다.


독일 극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화장실을 '지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장소'로 칭송했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 칸막이 벽과 눈을 맞추고 있자면 온갖 생각들이 몰려든다.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려 할 때보다 더 많은 생각이 찾아오는 건 왜일까. 화장실과 창의성이 가지는 상관관계라도 있는 것일까.


샤이닝 (The Shining, 1980)


세계적인 괴짜 감독,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에는 화장실이 다양한 연출을 통해 등장한다. 그는 화장실을 영화적 기호로 사용한다.  영화 <샤이닝>의 잭 토렌스와 같이 사람들에게 상처 입고 사회에서 배제된 인물은 혼자만의 공간으로 도피한다. 그 도피처란 현대 서구 가정 내에서 유일하게 허락된 개인 전용 공간, 화장실이다. <시계태엽 오렌지>의 알렉스도 경찰들로부터 지독한 린치를 당한 후 화장실에서 목욕을 하며 상처를 치유한다. 스탠리 큐브릭의 다수의 영화에서 화장실은 소외된 이들의 도피처이자 치유의 공간으로 은유된다. 특히 <로리타>에서는 샬롯이 낯선 이방인 사내 앞에서 좌변기의 물을 내리는 장면을 통해 문란한 성적 관계가 이어질 것임을 암시하였다. 이후 스탠리 큐브릭은 화장실의 원형적 의미인 배설과 해소, 그리고 현실도피를 위한 개인적인 장소라는 두 가지 기호로서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풀 메탈 자켓 (Full Metal Jacket, 1987)    /     샤이닝 (The Shining, 1980)


화장실이라는 기호는 선명한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풀 메탈 재킷>에서 리퍼 장군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라고 불렀던 물이 있는 장소임과 동시에, 하트만 상사가 어린 병사들을 비하하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 '똥'을 위해 마련된 장소이기도 하다. 가장 절실하고 아름다운 것과 가장 쓸모없고 흉한 것이 공존하는 공간으로서 화장실은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cristina.guggeri


이탈리아 아티스트인 Cristina Guggeri는 포토샵을 이용해 세계적인 유명 정치 지도자들이 화장실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생각에 잠긴 모습을 작품으로 표현하였다. 가장 인간다운 모습에서 가장 심각한 표정이 담긴 사진은 정말 흥미롭다.


개인과 타인이 완전히 분리될 수 있는 공간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 주이상스의 공간에서 오롯이 사색하는 공간까지, 이 한 칸이 주는 안정감은 무엇일까.







참고 자료

한양대학교 현대영화연구소 박수미, <스탠리 큐브릭 영화의 기호와 심리>,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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